[문종구의 필리핀 바로알기] 19c 서양지배층에 기생해 ‘목돈’···美에 사탕수수 헐값수출

필자는 지난 번 글에서 16세기 이후 유럽 세력의 필리핀 상륙으로 비롯된?세계사 속의 필리핀역사를 살펴봤다. 그러면 당시 서양인과 필리핀 사이에서, 그리고 한국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잠시 살펴보자.

?1581년 교황청, 마닐라에 주교 파견
?1600년 대주교로 격상, 이 무렵 400여명의 성직자들이 필리핀에서 활동
?1603년 스페인 상인과 중국 상인 충돌로 필리핀 거주 중국인 24,000여명 피살
?1640년 스페인 상인과 중국 상인 충돌로 필리핀 거주 중국인 20,000여명 피살

?1519년 기묘사화
?임진왜란(1592~1598년)
?정묘호란(1627년)
?병자호란(1636년)

17세기 필리핀과 한반도 정세

조선에선 인사문제를 둘러싼 권력의 암투와 유교(주자학)의 도덕이론으로 빈번하게 남의 부정을 가려내는 당쟁이 격화되어 국력을 소모하고 민생을 돌보지 않았다. 보수주의자 퇴계 이황(1501~1570)은 주자학을 확립하여 삼강오륜의 봉건적인 도덕 이론을 체계화하였고, 그의 제자들과 후예들은 조선시대를 보수적(도덕적)으로 이끌어 가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 진보주의자 율곡 이이(1536~1584)는 도덕(윤리)과 예절이라는 이름으로 가장된 위선과 형식(겉치레, 허례허식)을 비판했으며, 병조판서가 되어(1583년) <시무육조>와 10만양병설을 주장하였으나 오히려 보수(도덕)주의자들로부터 탄핵을 받아 사직했다.

보수(도덕)적인 지배층들이 득세한 탓에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한민족 역사상 가장 쓰라린 치욕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치욕에 대해 보복도 하지 못한, 당시 세계를 휘젓고 다니던 진보주의적이던 유럽인들에게는 거의 인상에 남지 않은, 세계사의 흐름에 동참할 수 없었던 무능력한 나라였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와 달리 진보(공격과 정복)와는 거리가 먼 나라였다. 진보가 억눌리고 보수(유교와 도덕주의)가 득세한 시기(15세기부터 일제시대)가 한민족의 역사상 가장 나약한 나라였던 것이다. 보수적인(착하고 온순하며 종교적인) 서민들이 대다수인 현재의 필리핀 같은 사회는 나라를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상태로) 안정시킬 수 있지만, 발전(진보)시키기 힘들다.

미국에 사탕수수?헐값 수출, 비싼 공산품 수입

1755년부터 사탕수수를 아시아 각국에 수출하기 시작하여 1775년부터 1779년까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였으며 1880년대 중·후반기에는 지배층들이 많은 자본을 투자하여 루손 등 주요섬마다 제분소와 정제공장을 건설하였다. 1880년대 미국에 수출한 사탕수수만 해도 연간 20만 톤에 달했다.

필리핀 경제는 스페인 통치가 끝날 때까지 대체로 자급자족 체제를 유지하였으나, 미국은 단 50여년 간의 지배를 통해서 필리핀 경제를 철저히 종속시켜 미국에는 수출용 농업의 생산을 장려하는 한편 필리핀은 미국 공산품의 소비시장으로 전락시켰다.

1916년경 필리핀에서 생산된 사탕수수, 마닐라삼(abaca), 야자박(Copra), 담배 등 작물의 거의 90%는 미국으로 수출되었고, 미국으로부터의 공산품 수입은 전체 수입물량의 60%에 이르렀다. 사탕수수는 미국 기업가와 손잡은 지배층들이 대단위 사탕수수 농장과 제분소를 건설하면서, 1880년도 연간 20만 톤 규모에서 1934년에는 156만 톤을 생산하여 95% 정도까지 미국으로 수출하였다. 1750년(티베트가 청나라에 정복되어 식민지가 되었던 해) 이후 서구에서는 최초의 항해용 위치 측정기인 Sextant(六分儀)를 발명(1759년)하였고, 증기기관을 완성(1765년)했으며, 증기선박을 발명(1787년)하는 등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하였고, 주식회사와 금융산업도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지배층끼린 이해관계도?딱 들어맞다

그 시대의 지식, 정보 및 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서구의 지배층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거래해 온 필리핀 지배층들도 덩달아 부와 권력을 크게 확장하였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어, 필리핀 지배층들과 유럽 지배층들 간의 교류는 한층 수월해지고 빈번해졌다. 특히 프랑스 시민혁명의 영향으로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자결주의가 필리핀 지배층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영국의 간섭으로부터 미국이 독립(1783년)했듯이, 스페인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필리핀 지배층들만으로 나라를 경영하고자 하는 독립운동의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필리핀 지배층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믿어지는 서구 지식인, 경제인 및 사건 가운데 두드러진 사람으로 애덤 스미스(1723~1790년)를 들 수 있다.

그는 1776년 현대경제학의 대표적인 이론서인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출판하였다. 나라의 부를 증진시키는데 영향을 미치는 기술, 고용, 생산, 분배, 화폐, 금융, 무역, 조세 및 시장의 섭리(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서술한 이 책은 서구의 지배층 뿐 아니라 필리핀의 지배층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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