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역사인물 7인···③ 미스마닐라 출신 영부인 이멜다

수백켤레 ‘호화구두’의 주인···남편 마르코스 정적들과도 한때 사귀어

수백 켤레 호화구두의 주인공으로 한국인들에게 알려진 이멜다 마르코스의 처녀 때 이름은 이메다 레메디오스 비시타시온 로무알데스(Imeda Remedios Visitasion Romualdez). 필리핀 제10대 대통령 페르디난도 마르코스(Ferdinand Marcos)의 부인으로 필리핀 역사상 처음으로 마닐라(Manila), 레이테(Leyte), 일로코스 노르테(Ilocos Norte) 3곳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정치인이다. 철의 나비(Steel Butterfly 또는 Iron Butterfly)로 불리기도 한다. 조상은 레이테 지역의 부유한 스페인인 로페즈(Lopez) 가문이다. 로페즈 가문은 현재까지도 필리핀에서 10대 거부 중의 하나다. 부친은 법대교수였고, 삼촌 노베르토 로무알데즈(Norberto Romualdez)는 대법원판사였다.

어린 시절 대통령궁 인근에 살다 가족이 레이테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18세 때 레이테 미인대회에서 우승했고 마닐라에 돌아와서는 가요무대에서 가수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필리핀 중앙은행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미스마닐라 선발대회에서 우승은 못했지만 ‘마닐라 예술의 신’(Muse of Manila)상을 받았으며 여러 잡지의 표지모델로 활약했다. 처녀 시절 마르코스를 만나기 전에 청년 베니그노 아퀴노 주니어(Benigno Aquino Jr, 코라손 아퀴노 전 대통령의 남편, 전 상원의원), 페드로 코후안코(Pedro Cojuanco, 아퀴노 대통령의 큰 오빠), 아리스톤 낙필(Ariston Nakpil) 등과 만나곤 했다.

이멜다는 24살 때인 1953년 당시 Ilocos Norte 지역의 하원의원이었던 36살의 마르코스를 만나 결혼하여 1남3녀를 두었다. 1960년부터 1965년까지 그녀의 남편 마르코스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전국 각지의 수많은 정치인들을 만나러 다니는 한편 많은 잡지의 표지인물로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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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스 사망 후에도 허영심 여전···뉴욕 여행에?500만불 ‘펑펑’

1966년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1972년 계엄령 선포 이후 이멜다의 공식활동과 정치활동이 두드러졌다. 메트로 마닐라의 지사, 특임대사, 장관에 임명되었고 국회의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특사로서 개인 전용기를 이용하여 중국, 소련, 동유럽, 중동, 쿠바 등을 여행하면서 수백만달러의 여행경비를 쓰기도 했다.

이멜다의 허영심 많은 습관은 1983년 뉴욕에서 500만달러 어치의 관광여행과 새로운 해변 리조트를 조성한다며 호주산 모래를 비행기로 실어 나른 것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뿐 아니라 맨해튼에 있는 건물들을 사들이는데 1억2천만달러를 쓰기도 하였다.

인류 역사적으로 독재자들이 항상 그래왔듯이, 수도 마닐라의 곳곳에 기념비적인 대형건축물들을 지어 마르코스의 역량을 과시하였다. 그중에는 포크 아트극장(Fork Arts Theater, 관람객 1만명 수용), 필리핀문화센터(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 필리핀심장센터(Philippine Heart Center), 필리핀폐센터(Lung Center of the Philippines), 필리핀신장연구소(Kidney Institure of the Philippines), 나용필리핀(Nayong Pilipino),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Philippine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 코코넛궁전(Coconut Palace), 마닐라필름센터(Manila Film Center) 등이 있다.

1980년 마르코스가 홍반성낭창(lupus erythematosus) 염증성 피부질환으로 앓기 시작하자 이멜다의 활동은 더욱 두드러져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까지 했으며, 마르코스가 가장 신임했던 파비안 베르(Fabian Ver) 참모총장 등 측근들과 함께 필리핀의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EDSA 시민혁명(1986년)에 의해 필리핀을 떠나 하와이에 도착한 마르코스 일가는 마르코스 사망(1989년, 72세) 이후 필리핀 대법원의 판결(1991년)로 귀국이 허용되고 사면되었다.

1992년 대선 실패 후?2010년 81살로?하원의원 당선···외아들도 상원의원?

1992년 대통령선거에 이멜다가 출마하여 낙선했으나 234만표를 득표하며 건재를 과시했으며, 1995년도(66살) 총선에서는 외아들 봉봉 마르코스(Bongbong Marcos)와 함께 출마하여 이멜다는 자신의 고향에서, 아들은 남편(마르코스)의 고향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각각 당선되었다. 2010년(81살) 총선에서는 남편의 고향에서 아들 대신 출마하여, 이멜다는 경쟁자보다 4배나 많은 압도적인 득표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외아들 봉봉 마르코스도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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