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 바로알기] 정부군 압도하는 사병(私兵)···경찰이 ‘인질극’도
1986년 3월29일 아퀴노 정부의 라모스 참모 총장. 4만여명에 해당하는 사병(Civilian Home Defense Force)을 해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아퀴노 정부에 반대하는 무장한 정치 세력들과 공산 반군들의 존재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로 인해 다른 정치인들이 거느리고 있는 사병들의 무장해제도 시도하지 못했다.
“총과 폭력 조직이 없는 필리핀 정치는 상상하기 어렵다.”
2010년 1월 국방장관 노베르토 곤잘레스(Norberto Gonzales)는 전국적으로 132개 사병(私兵) 조직이 정치인들에 의해 운용되고 있으며 사병들 수는 1만여명에 이른다고 언급했으나, 실제로는 유력한 정치인들마다 수백 명, 때로는 수천 명의 사병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힘이 약한 정치인들의 작은 규모의 사병 조직까지 포함하면 정치인들의 사병 조직은 500여개 이상, 사병 수는 10만명 이상일 것이다.
사업가들은 정치인들보다 숫자가 많아 이들이 운용하는 사병들은 정치인들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핀에 존재하는 사병들의 전체 규모는 30만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필리핀 거리의 가게마다 입구를 지키고 서있는 무장경비들은 사병 용역업체와의 계약에 의해 가게에 파견된 사병들이다. 2012년 현재 필리핀 경찰 수는 약 14만명이고, 군인 수는 약 10만명이다. 즉 경찰과 군인을 다 합쳐도 사병을 다 합친 숫자보다 적다. 누군가 한 사람의 독재 지도자가 나타나 필리핀을 개혁하려고 하더라도 그 외의 지배층들이 뭉쳐서 반발하면 사병들 수가 경찰, 군인 병력을 압도하므로 내전이 발발하여 정부군/경찰이 승리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독재자라고 불리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도 필리핀 전역에 걸쳐 확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한다. 2010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경찰은 15만 명으로 인구 대비하여 필리핀은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고, 군인 수는 65만명이니 한국의 15% 정도밖에 안 된다. 부유층들이 지배하고 있는 필리핀은, 부유층 스스로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절세를 하고 있고 가난한 서민들에게도 과중한 세금을 부과할 수 없기에 정부의 재정이 궁핍할 수밖에 없다. 부족한 재정 탓에 충분한 수의 군인(모병제)과 경찰들을 고용할 수 없고 충분한 급여를 지불할 수 없어서 극소수의 고위직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군인과 경찰들이 서민층 생활을 하고 있다.
7100여개 섬 중에서 공산 반군들과 이슬람 반군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섬들에 군인들이 분산되어 있어서 유사시 경찰들을 지원할 군병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해관계 때문에 안전이 우려되는 전국의 모든 정치인들과 사업가들은 경찰과 군인들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자본으로 사병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서 지켜주지 못하니까 스스로 지키겠다”
이것이 필리핀 사람들의 정서다. 마귄다나오(Maguindanao) 학살을 일으킨 Ampatuan family의 예를 들면, 그들이 보유한 사병들 숫자가 수백 명에 이른다고 언론에서 보도하였다. 사병 조직 내의 관리자급 또는 지휘자급들 중에 현역 경찰이나 군인 간부들이 많다. 2010년 7월 3일자 신문 기사에 의하면, 암살, 납치, 마약 관련 범죄를 수행하기 위해 모집된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사병들에게 지불되는 월 급여는 2500 페소(약 6만5천원)인데, 마닐라의 경우 일반적인 경비 업무를 하는 사병들은 월 7000 페소(약 18만 원) 정도이고 청부살인이나 마약 등 목숨이 위험한 범죄 행위에 동원되는 사병들은 월급 이외에 건당 5만~10만 페소(130만 원~260만 원 정도)를 지급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병의 존재는, 가난한 서민들이 지배 권력자에게 의지하는 봉건관계(feudal relation)이며 정치적 또는 사업적인 분쟁을 총구로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장려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모든 사병들은 정치적 또는 사업적 경쟁자들을 위협(intimidate)하기 위해 존재하며 군조직과 경찰조직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되어있어 손쉽게 무기와 탄약을 공급받는다. 2012년 5월 4일 아침 6시, 다음해 시장 출마를 준비 중이었던 카피즈(Capiz)의 부시장 아벨 마르티네즈(Abel Martinez) 집 앞에서 두 명의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경찰이 벌인 인질극에 민간인 8명 사망
2010년 8월 23일, 오전 10시에 마닐라 리잘 공원에서 권총으로 무장한 전직 경찰관 롤란도 멘도자(Rolando Mendoza)가 홍콩 관광객 25명을 실은 관광버스를 탈취, 관광객들을 인질로 삼고 복직 및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였으나, 저녁 9시 필리핀 경찰 특공대의 작전 와중에 8명의 인질들이 사망했으며 인질범은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인질범 Mendoza는 30여 년을 마닐라에서 경찰로 일하면서 1986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외국으로 반출하려던 현금이 가득한 13개의 박스를 실은 차량을 검색하여 국고에 회수한 공로로 최고 경찰관 10명(Ten Outstanding Policemen of the Philippines) 중 한 명으로 선정되어 수상한 것을 포함하여 17번이나 정부로부터 수상과 표창(awards and commendations)을 받았다. 그러나 권력 남용과 마약에 연루된 혐의로 정년 1년을 앞둔 2009년 2월 해고되었었다. 이 해고 조치를 철회하라는 요구를 벌이며 인질극을 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