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끊이지 않는 대형천재 및 인재
최근 25년 동안 일어난 대형 자연재해는 1990년의 대지진, 1991년의 피나투보화산 폭발, 1991년의 Ormoc 사태, 2011년의 Washi 태풍피해 등을 꼽을 수 있다.
바귀오 대지진
1990년 7월 16일 오후 4시 26분, 루손 섬에 진도 7.8의 대지진이 발생하여 162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3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필리핀의 여름 휴양지이자 여름철 수도로 일컬어지는, 루손섬 중북부 해발 1500m 높이의 산꼭대기에 건설된 바귀오 (Baguio)시(한국의 태백산이나 덕유산, 오대산 꼭대기에 건설한 도시로 볼 수 있음)는 이 지진으로 인해 시로 연결되는 모든 도로망이 파손되어 시 전체가 이틀 이상 고립되었다. 바귀오 시내에 있었던 하얏트 호텔과 네바다 호텔을 포함한 80여 크고 작은 호텔들이 무너져 많은 외국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이 도시는 한국에서 시인과 수필가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가 젊은 시절 공부하기 위해 머물러서 한국인에게 친숙하고, 지금도 영어 연수하러 오는 한국 학생들이 많다. 바귀오 대지진 이후 필리핀에 큰 피해를 입힌 지진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진도 5 이하의 지진은 매년 10여 차례 이상 발생하곤 한다. 필자도 지난 22년 간 천정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좌우로 흔들리거나 수영장에 채워놓은 물에 작은 파도가 일어날 정도의 지진을 여러 번 경험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건물들이 내진 설계가 되어 지어졌기 때문에 그 정도의 지진으로는 무너지지 않는다 한다.
Pinatubo 화산 대폭발
피나투보는 미 공군 기지와 해군 기지 사이에 위치한 화산이며 1991년 6월5일 대폭발하여, 20세기에 두 번째로 큰 폭발로 기록되었다(제일 큰 폭발은 1912년 알래스카의 Novarupta 화산 대폭발). 847명이 사망하고 약 8000채의 가옥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7만3000채의 기옥들이 부분 파괴 또는 손상되었다. 당시 25년간의 미군기지 임대 기간이 1991년 9월 만료될 예정이어서 미 정부와 필리핀 정부 간에 임대 기간 연장 협상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 화산의 폭발로 인해 화산 주위 반경 50km 정도가 1m 이상 두께의 화산재에 묻혀버려, 화산과 불과 14km 거리에 있었던 미 공군기지와 37km 거리에 있던 미 해군기지가 큰 손상을 입게 되어 협상이 중단되었다. 화산재를 처리하는 데에만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전문가들과 미군 자체의 판단으로 두 곳의 미군 기지를 포기하고 폐쇄해 버렸다. (그 해 9월 필리핀 상원에서는 미군기지 임대 계약을 폐기했다)
당시 한국 언론 매체들의 엉터리 분석 기사로 인해 필리핀 민족주의자들이 미군을 쫓아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많다. 필리핀에는 민족주의 정치가들이 거의 없으며, 굳이 민족주의자라고 일컬을 수 있는 집단을 꼽으라면 공산 반군 정도일 것이다. 미군기지 주변에는 8만여명의 현지인들이 미군과 관련된 업체들에서 일자리를 제공받고 있었고 연간 4억8000만달러(약 5000억원)의 기지 임대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임대료의 인상에 관심이 집중 되었을 뿐, 미군철수나 미군기지 철폐를 원했던 필리핀인들은 실제로는 (공산 반군 외에는) 거의 없었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관제 데모는 가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필리핀은 연간 5000억 원 이상의 기지사용 대가를 미군으로부터 받고 있었는데 반해, 한국은 연간 8000억 원 이상의 기지사용 대가 (방위비 분담금)를 미군에 제공하고 있는 커다란 차별성이 눈에 띈다.)
필자는 당시 미 공군 기지 바로 옆에 있는 조그마한 공장에 수출품 제작을 주문해 놓고 있었기에 걱정스러워 화산이 대폭발한 후 보름 정도 지나서 그 곳을 직접 둘러본 적이 있었다. 차량들이 지나갈 때마다 흩날리는 화산재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고, 무더운 날씨에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지역이 되어 있었다.
그 지역 전체가 1m 이상의 화산재로 뒤덮여 있었고, 전투기 격납고의 모든 지붕들은 화산재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폭삭 내려앉아 있었다. 거래처 공장 지붕도 내려앉았고, 모든 기계들이 2~3m의 화산재에 묻혀 있었으며, 그 공장안에 사장과 직원들 아무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은 유령도시가 되어 있었다. 대폭발 당시 피나투보 화산과 인근 산악 지대에 100~200m 높이의 화산재가 쌓인 것으로 보고되었는데, 폭발 이후 시작된 우기철을 맞아 (우기철은 6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5개월 간 지속됨) 거의 매일 쏟아지는 소나기로 인해 화산재가 밀려 내려와 인근과 먼 곳의 강바닥을 상승시키고 홍수를 야기해 마을들이 묻혔고 광활한 농경지들은 수년간 활용할 수 없을 정도로 덮여 버렸다. 대폭발이 일어났던 1991년에는 106억 페소(당시 환율로 약 3600억원), 1992년도에는 12억 페소(약 415억원)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Ormoc 사태
1991년 11월, 태풍 Thelma가 필리핀 중부 Leyte 섬에 있는 Ormoc시를 지나가면서 내린 폭우가 산사태를 유발하고 강을 범람시키면서 강가와 저지대에 살고 있던 서민들 약 8000명이 일시에 사망하였고, 시 전체의 70%가량이 파괴되었다. 당시 강가와 바닷가에 떠다니던 시신들이 뉴스위크지의 표지에 실릴 정도였고, 시신들이 너무 많아 중장비와 트럭을 이용하여 단체로 매장하는 장면들도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섬 전체에 울창했었던 열대우림들을 수십 년에 걸쳐 외국의 목재업자들에게 팔고 그 자리에 야자수(coconut tree)를 대단위로 심었었는데, 야자수들은 뿌리가 땅속에 얕고 좁게 내려서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에는 야자수와 지반이 함께 쉽게 휩쓸려 내려가는 산사태 현상을 빚곤 한다. 그러나 야자수로부터 얻는 코코넛 오일과 야자박(copra)등을 외국에 수출하기 위해 대단위 임야를 소유하고 있는 부유층/기득권층들은 열대우림을 팔고난 후에 야자수를 심어 왔었다. Ormoc 사태라고 사람들이 일컫는 까닭은 탐욕에 기인한 벌목과 야자수 조림 사업 때문에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2011년 12월 17일, 태풍 Washi가 민다나오 섬 북부의 Cagayan De Oro 시와 Iligan 시 및 인근 10개 마을을 지나가면서 폭우로 인한 홍수와 산사태를 일으켜 1600여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하였다. Ormoc 사태에서처럼, 민다나오 섬 전역에서 열대우림들은 벌목되어지고 난 후 야자수를 심고, 특히 Cagayan De Oro 인근 산악 지대에는 대단위 파인애플 농장들이 조성되어있어서 폭우가 내리는 경우 강가와 저지대에 사는 서민들은 계속 홍수와 산사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사망자들 중에 한국인이 포함되어 있어서 한국의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는 재해이다.
필리핀에서는 1990년도 이후 벌목을 강력히 규제하고 있지만 이미 그 이전에 너무 많은 산림을 훼손해 버렸고, 그 후로도 불법벌목이 끊이지 않아 이로 인한 재해가 계속되고 있다. 1900년에는 산림 지역이 전국토의 70%가량이었으나, 백년 후 2000년도에는 18%로 급감하였다.
최근 필리핀에서 발생한 대형인재를 살펴보자.
Ozone Disco Club 화재 사건
1996년 3월18일 마닐라 시내 북쪽의 Quezon 지역에 있는 디스코클럽에서 자정 무렵 발생한 화재로 고등학교 졸업 축하파티를 하던 350여명의 청소년들 중 162명이 사망하고 95명이 부상당하였다. 1977년 164명이 사망한 Beverly Hills Supper Club사고 이후 최악의 화재 사고로 기록되었다.
여객선 침몰 사고
필리핀은 7000개가 넘는 섬들로 이뤄진 나라여서 섬들을 오가는 교통수단으로 수많은 여객선을 이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형 여객선들은 일본에서 20년 이상 운항한 후 중고로 필리핀에 팔려온 것들이고, 중소형 여객선들은 필리핀의 여러 지역에 있는 산재해있는 기술과 설비가 허술한 조선소(조선소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소규모 공업사)에서 제작한 것들이다. 그래서 정원을 초과해서 손님들을 태우거나 바다 날씨가 거칠어지면 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
1987년 12월 20일, MV Dona Paz, Leyte를 출발하여 마닐라로 향하던 중 연안 탱커선과 충돌하며 폭발과 함께 화재가 나면서 침몰하여 4375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 이 여객선의 정원은 1424명이었으나 3배 가까이 초과하여 승선하였다 한다. 생존자는 겨우 26명이었으며 사고 발생 3일 후, 여객선회사인 Sulpicio Lines에서 사망자 1인당 2만 페소(55만원)의 보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1988년 10월24일, MV Dona Marilyn, 마닐라를 출발하여 Leyte로 향하던 중 태풍의 영향권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침몰하여 254명이 사망했다.
2008년 6월21일, MV Princess of the Stars, 마닐라를 떠나 세부로 향하던 중 태풍 Frank의 영향권에서 거센 풍랑을 만나 침몰하여 825명의 승객 중 52명만 구조되고 나머지는 사망 또는 실종되었다. 여객선 회사인 Sulpicio Lines는 사망자 1인당 20만 페소(550만원)의 보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2009년 9월6일, MV SuperFerry 9 민다나오의 General Santos시에서 Iloilo시로 향하던 중 침몰하여 961명의 승객과 승무원 중 10명이 사망했다. 여객선 회사는 Aboitiz Transport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