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교민사회②···거주지선택 기준은 ‘안전과 질병’
일부 교민들이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거주하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를 가끔 듣는다. 사고의 원인은 대체로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질투심과 생계형 범죄이다.
첫째, 질투심. 서민들이 사는 동네에서 아무리 서민들처럼 생활하려 해도 한국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보다 잘 사는 것이 눈에 띄게 되어 있다. 옷차림이 그렇고, 평소 씀씀이가 그렇고, 그들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그들보다는 여유로운 위치에 있어서 한국인 이웃을 부러워하게 된다. 일부러 서민들이 부러워하게끔, 열등감을 유발하도록 행동하는 한국인들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남을 부러워하는 감정이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심해져서 이웃 간의 사소한 오해나 말다툼이 증오나 적대감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질투심은 불만을 낳고, 불만은 죄를 낳는다 했다. 셰익스피어의 “질투는 없는 결점도 만들어 낸다”는 말이 적확한 표현이다. 누구나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는 게 인간 본성이고, 이러한 본성은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서 종교로 교화한다고 해서 갖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을 질투할 것이 분명한 서민들 동네에 살면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
둘째, 생계형 범죄. 가난한 동네에 외국인이 살고 있다면 평소에 아무리 친하게 지내고 서로 돕고 사는 착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장래의 불행이나 재난에 대한 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는 그 모든 가난한 이웃들을 모두 다 돌봐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100명, 아니 1000명 중 단 한 명이라도 신체에는 손상을 가하지 않고 물건만 가져오기로 마음 먹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도둑이 되는 것이고, 물건만 슬쩍 훔쳐오려 했는데 상황이 돌변하여 인체에 손상을 가하면 강도가 되는 것이고,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의도했던 바가 아니었어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어 어떤 결말이 날지는 인간인 이상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년 전에 유럽인 노부부가 필리핀의 어느 시골 마을에 정착해 살다 살해되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그 노부부는 가난한 필리핀 이웃들을 도와주고 친하게 지내면서 집을 수많은 꽃으로 단장하여 매년 그 마을에서 가장 예쁜 집으로 선정되기고 하고 마을 사람들 모두 노부부를 좋아했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강도가 들어와 집안에 있는 귀금속들을 털면서 노부부와 가정부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범인을 잡고 보니 그 동네에 사는 사람이었다 한다. 병든 자식을 치료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물건만 훔치려 했었는데 집안 식구들이 잠에서 깨어버려 나중에 처벌받을까 두려워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또 언젠가 수빅만에 있는 한진조선소의 하청업체 한국인 직원 가족이 인근의 가난한 동네에서 살다가 강도를 당했다는 기사를 접한 적도 있다. 사랑하는 처자식이 치료를 못 받아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 때, 일을 열심히 해서 치료비를 마련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거나 충분한 수입이 되지 않을 때, 근처 잘 아는 곳에 (그들보다) 부유한 사람이 살고 있다면, 가장인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가족을 살리기 위해 부유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많은 귀중품 중 한 두개를 훔쳐오려 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가족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면서 눈물만 흘리고 있겠는가? 가난한 서민들에게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참고 인내하며 죄를 짓지 말라고 교화할 수 있지만, 사회적인 교화의 힘보다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려는 힘이 더욱 강한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네로 황제 초기(54~62년)에 실질적 통치자였던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는 “가난은 부정한 짓을 가르친다”고 했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빈곤은 범죄의 부모”라고 했다. 그러므로 필리핀의 가난한 동네에서 위험 요소를 안고 생활해서는 안 된다. 지난 수년 간 아무 일 없었다면 그 동네의 가난한 사람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생계형 범죄를 일으킬만한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빈 자루가 똑바로 서기 어려운 것처럼, 가난한 사람의 경우 끊임없이 정직하고 착하게 지낸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Benjamin Franklin, 1706~1790)
생계형 범죄는 빈부 격차가 심한 사회에서 빈발하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하고, 그 사회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면,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제까지의 행운이 앞으로도 계속되리라는 믿음으로 쭉 가난한 동네에서 살겠다는 한국인들은 현실을 직시할 줄 모르는 단순무식한 사람들이거나 가족의 안위에 대해 무책임한 가장들일 것이다.
성균관대 신정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맹자도 사람이 유약하고 변덕스럽다는 점을 알고 있다. 맹자는 안정적인 일자리, 즉 ‘항산(恒産)’이 없으면 사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반면 항산이 보장되면 사람이 ‘항심(恒心)’을 굳게 지킨다고 본다. 따라서 딴 마음을 먹을 정도로 불리한 환경이 아니라면 사람은 성선(性善)을 향한 항심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맹자)는 이를 위해서 사회 정치적인 환경이 성선을 보장해야 하고, 지도자는 이를 위해 인정(仁政)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넘어서 전체의 복지를 우선시 하는 자질을 갖추어야 하고, 공동체는 개인에게 정전(井田)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제공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일하고 싶어도 안정적인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니, 서민들이 항상 선한 마음을 간직하기 힘들다는 것, 즉 그러한 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는 무엇인가 악한 행위와 사건들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맹자에게서도 받을 수 있다. 사람들과 사회를 교화함에 있어서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봉사 활동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요구할 줄 알도록 (물고기를 잡아 먹이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탈무드의 방식) 교화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필리핀 사회의 특성상 지배층이 허용하지 않을 뿐더러 아주 위험한 방식이기에 거론해서는 안 되겠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지배층들을 찾아가 공정한 부의 분배를 역설하고 교화시키자니 이것도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대체로 교화하러 가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지위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높기 때문에 싸구려 음식이나 중고 생활용품의 나눔만으로도 서민들을 모을 수도 있고, 설교하고 훈계할 수 있다. 하지만 교화하러 가는 사람들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지배층들은 우선 수월하게 만나주지도 않을 것이지만, 기부와 지원을 얻어내려면 그들을 상대로 감히 진심어린 설교와 훈계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 주는 자(지배층)가 가르치는 법이다.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톨스토이(1828~1910)도 부자들이 교화되기 힘들 것이라 하며 아래와 같이 한탄을 했다.
“부자라는 사람들은 인정이라곤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그가 정말로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는 곧바로 부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는 부당하고 잘못된 일이 있다. 그것은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와 자선을 베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사실은 부자들이란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으로 배부르게 먹고 고급 옷을 입고 사치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일 따름이다.”
“자기 식구를 먹여 살릴 정도 이상의 많은 땅을 가진 사람은 수많은 가난한 사람을 만든 죄인으로 다루어야 한다.”
현재의 필리핀 현실로서는 앞으로 최소한 수십년 동안은 빈부격차의 간극이 획기적으로 좁혀질 것 같지 않고, 서민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생계형 범죄도 계속 증가할 것 같다.
거주 지역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위에 설명한 사고의 위험성뿐만 아니라 해를 거듭할수록 확산되고 있는 뎅기열(dengue fever) 때문에라도 그렇다.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뎅기열병은 아직까지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이 병에 걸리면 최대한 휴식을 취하면서 환자의 백혈구가 핏속에 침투한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 허약한 청소년들이 병에 걸린 후 1주일 이내에 목숨을 잃는다. (통계에 의하면 감염자 1000명 중 6명 사망) 뎅기열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가 많이 서식하는 곳은 쓰레기가 쌓여있고 위생상태가 불량하며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도시 빈민가나 서민층 마을이라고 한다. 2010년 한 해 동안 총 17만3033명의 필리핀 사람들이 뎅기열병에 걸렸으며, 그 중에서 70% 이상이 20세 이하의 청소년들로? 비가 자주 내리는 7월부터 9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