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연애·결혼·이혼 그리고 가족법

필리핀에서는 법적으로 이혼이 허용되지 않는다. 부부가 법적으로 헤어지는 방법은 3가지인데, 혼인 무효(nullity), 혼인 취소(annulment) 또는 법적 별거(legal separation)다. 세 가지 모두 법정절차를 거쳐야만 하는데, 기각률이 95%를 상회한다. 물론, 거액을 들이면 세 가지 중 한 가지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그것은 거의 대부분 상류층들 사이에서나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심각한 성격 차이나 외도, 배우자의 폭력으로 결혼 생활을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필리핀 서민들의 대부분은 단순 별거(merely separate)에 들어가고, 별거인 상태에서 서로 새로운 동거인을 만나곤 한다. 별거에 들어갈 때 애들을 떠안는 확률이 현저히 높은(95% 이상) 필리핀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심각한 경제적인 불안정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혼이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중복 혼인(bigamy)과 일부다처, 일처다부(polygamy)가 많다.

이혼을 반대하는 견해 : 헌법에는 가족을 지켜야한다고(protects the family) 명시되어 있는데, 이혼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break the family)이므로 헌법에 위배된다.

이혼을 찬성하는 견해 : 헌법에는 행복추구권(pursuit of happiness)과 믿음에 대한 자유(freedom of belief or disbelief)가 명시되어 있으므로 헤어지고자 하는 두 사람을 계속 묶어두는(구속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

사랑하는 연인 또는 부부가 결별하면 대부분의 필리핀인들은 상처에서 회복하고자 노력한다. 소수만이 폭력이나 보복으로 반응한다. 치정사건이나 치정살인의 경우 스페인 식민 시절부터 1930년대까지는 무죄 판결이 대세를 이루었다. 격노 또는 혼미 상태(passion or obfuscation)가 자연스럽게 충동적인 행동을 유발시켰기 때문이라는 고려가 적용되어 처벌을 완화(mitigate)시킨 것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중년 여자의 사랑은 젊은 여자의 경우처럼 꿈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절망에서 태어난다. 들키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2012년 2월 19일 오후 1시경, 마닐라의 Quezon 지역에서 44살의 여성이 괴한이 발사한 여러 발의 총격을 받아 살해되었다. 피해자의 남자친구는 그녀의 전 남편이 살인 청부업자를 보내 살해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9월 21일, Pampanga 주에 있는 쇼핑몰 안에서 여자 친구 문제로 13세의 소년이 16세 소년을 총을 쏘아 살해한 후 자신의 머리에도 총을 발사하여 자살했다.

-2011년 9월 14일, 마닐라 시내의 쇼핑몰 안에서 남편의 불륜을 의심하고 있던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려고 시도하다가 말리던 경비원에게 총을 쏘아 살해하고, 스스로에게도 총을 쏘아 자살하려 했으나 제지당하여 경찰에 체포되었다.

-2012년 3월 31일, 세부에서 이혼 소송 중이던 47세의 남편이 여러 발의 총을 아내에게 발사하여 살해하고 자신도 머리에 총을 쏴서 자살하였다.

필리핀 형법 247항에는 치정살인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은 조항이 있다. “불륜 현장에서 발각된 아내를 즉시 살해하거나 중상을 입힌 남편은 25km 밖으로 추방하는 유형에 처한다. 18세 이하(미성년)의 딸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상태에서, 딸에게 성관계 유혹을 하는 남자와 딸에 대해 부모가 어떠한 신체적 손상을 가하더라도 딸의 부모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2010년, 하원의원들 중 일부가 이 조항의 개정을 요구하는 개정안을 하원에 상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부모나 배우자가 치정, 혼미 그리고 심리적 상처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고통과 치정이 결코 살인 면허가 될 수는 없다.”

필리핀 사람들에게서 들은 충고들 중에 낯선 여자들에게 접근하려할 때, 반드시 먼저 남편이나 애인(boyfriend)이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는 것이 있다. 만일 그녀가 있다고 대답하면 더 이상 치근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1)정말로 결혼했거나 남자친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는 2)‘당신에게 관심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계속 집적대면, 그녀는 그녀의 남편, 남자친구, 오빠 또는 남동생, 심지어 삼촌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청할지 모른다. 필리핀의 문화는 여성존중 문화다.

그리고 명예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여성이 도움을 청할 때 즉시 달려가서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크나큰 수치로 여기며, 그 여성과 사회로부터 겁쟁이라고 매도당한다. 그래서 연락받은 남성은 보통 총을 들고 달려 나온다. 그리고는 치근대는 낯선 남자에게 총을 겨눌 것이다.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마도 팔이나 다리를 쏘아 그 남자를 불구로 만들지 모른다. 여성의 도움 요청에 응하여 총을 쏜 남성은 거의 대부분 정당방위 판결을 받아 풀려나거나 경미한 처벌을 받는다. 낯선 남자가 그녀와 그녀의 남성에게 얼마나 크나 큰 심리적 고통 가했는지 유능한 변호사가 법정에 호소할 것이고, 필리핀 문화는 여성의 정조를 보호하려다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무조건 원인을 제공한 남성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몇 가지 판례를 참고해 볼 필요가 있겠다. 민다나오 섬의 어느 부락에 남편 Rashid와 젊은 아내 Minda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Rashid가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Minda를 인근에 사는 Nario라는 남성이 겁탈하려 하였고, 아내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남편이 도망치는 Nario를 따라잡아 정글 칼로 살해했다. 재판관은 Rashid에게 유형(destierro)을 선고했다.(1990년 5월 25일)

그러나 과잉방어에 대한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Lina라는 매력적인 여성을 짝사랑하던 청년 Amado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Lima를 수차례에 걸쳐 억지로 손을 잡기도 하고 껴안고 키스를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번번이 Lima의 강한 반발을 사곤 했다. 그 이후부터 Lima는 언젠가는 Amado가 겁탈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으로 작은 칼을 품에 지니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Amado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참석하는 성당의 예배시간에 Lima의 옆자리로 옮겨 와 허벅지를 만지자, 소지하고 있던 칼로 Amado의 목을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Lima는 정당방위(in defense of honor)임을 주장하였으나 재판관은 그 장소와 상황에서 성폭행의 가능성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살인죄를 선고했다. (1990년 5월 19일)

또한, 성행위(carnal intercourse)의 명백한 증거 또는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사정이 다르다. 결혼 4년차인 David와 Riza는 1987년 6월 어느 날, David가 평소보다 일찍 집에 들어와 보니 아내 Riza가 회사 동료인 Reynald와 부엌에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때 Riza는 깜짝 놀라며 일어섰고, Reynald는 누워있는 상태에서 바지 지퍼를 올리며 후다닥 일어났다. David가 도망치는 Reynald를 부엌칼을 들고 뒤쫓았으나 놓치고 집으로 돌아와 당황해 하고 있는 아내 Riza를 찔러 살해했다. 법원에서 David의 변호사는 유형(destierro)를 청원했으나 대법원은 현장에서의 그때 상황과 자세(position)만으로는 성행위(canal intercourse)를 단정 지을 수 없다고 결론짓고 존속살해죄(crime of parricide)를 선고했다. (1990년 1월 6일)

DOM(Dirty Old ?Man)

50세가 넘은 남성들이 젊은 부인들과 같이 사는 경우 거의 대부분 장수했다는 연구 결과를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발표했다고 한다. 성경에도 늙은 다비드왕의 몸이 쇠약해지자 슈나미인의 나이 어린 딸로 하여금 임금과 동침하게 했다 하기도 하고, 로마 황제 크라우디우스도 어린 소녀와의 동침으로 장수했다는 설이 있었다고도 한다. 1596년 중국의 이시진이 간행한 <본초강목>에 14살 이전의 어린 소년(소녀)과 동침하면, 그 기운을 흡수하여(양생) 장수에 이른다고 적었다 하고, 한국에서도 노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해 그 방법을 오래도록 (일제시대 때까지) 써왔다는 설까지 있다. 동침까지는 아니더라도 젊은 마사지사의 손길을 통해서도 기운을 흡수할 수 있다고 믿기에 예나 지금이나 마사지업이 유행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러한 슈나미티즘이 필리핀의 사회에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위에서 서술한 첩을 통한 오랜 전통의 방식이고, 두 번째는 DOM이라는 명칭으로 대변되는 천박한 사교의 방식이다. DOM은 젊은 여자를 선호(penchant)하여 비신사적인 방법으로 구애하는(wooing) 40세 이상의 남자를 일컫는다. 대체로 잘 교육받고 단정하고 우아한, 나이 지긋한 부인(matron)들은 남편의 행위(dalliance)에 대해 눈감아 줌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지킨다.

DOM들은 자신의 육체나 정신적인 매력으로 관심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그들에겐 너무나 흔한 ‘돈’만으로 미끼삼아 유혹하고는 그들에게 낚이는 젊은 여자들을 (쉽고 가벼운 여자들이기에) 물건 취급하고 존중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젊은 여자들도 DOM들을 존경하지 않고, 돈 이외에는 늙어서 쓸모없지만 해롭지는 않다고 여긴다.

DOM들은 대개 젊은이들이 입는, 야하고 화려한 옷차림에 금팔찌와 금목걸이를 착용한다. 젊고 가난한 여자들 앞에 여러 명의 경호원들을 데리고 나타나기도 하고 고급차를 타고 나타나기도 하면서 권력과 부를 과시한다. 그들의 입가에는 항상 우쭐해하는 미소가 흐르고, 잘난 체하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들을 비하하는 글들 중에는 그들은 ‘승냥이와 같은 눈’을 가지고 있다. 여자들의 몸을 발끝에서 가슴까지 오르내린다. 또는 ‘차량 와이퍼와 같은 눈’을 가지고 있어서 마치 테니스 경기 관람객들처럼 여자들의 가슴을 좌우로 살펴본다. 이 모든 안구 활동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의 눈을 쳐다보는 경우는 없다. 그들의 좌우명은, “내가 상대하는 젊은 여성만큼 나도 젊다”이다.

한국에도 고 장자연 사건에서 보듯이, 젊은 여성들을 이용하여 장수하려는 한국판 DOM들이 많은 모양이다. 또한 그들에게 양생할 수 있는 기운을 팔고 있는 젊은 여성들도 많긴 많은가 보다. 한국 속담에 “효도 중에 으뜸은 윗방아기”라 하여, 젊은 처녀를 품에 안으면 회춘한다는 속설까지 있다고 하지만, 필자는 그러한 설을 믿지 않는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갑부들, 지배층들, 독재자들 그 누구도 100살 이상 사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그들이 슈나미티즘을 하지 못해서 장수를 못했을까? 슈나미티즘보다 더한 짓, 심지어는 젊은 소년(소녀)의 피로 바꿨다는 소문이 돌았던 어느 재벌이나 독재자도 그렇게까지는 장수하지 못했다.

한국에 사는 지인에 의하면, 비아그라가 판매된 이후부터 한약방의 보약 판매가 크게 줄어들었다 한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동안 장수의 목적보다는 성에 대한 욕망을 유지 또는 확대시키려는 목적으로 보약을 복용했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고령자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식 능력이나 판단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니 기력이 떨어져 가는 데 비례하여 강인한 수컷으로서 인정받을 확률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을 즉시 인지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느 과학 잡지에 수록된 글을 옮겨본다.

“고령자의 뇌에서 노화가 빨리 진행되는 부위는 대뇌와 소뇌의 경계에 있는 ‘흑색질(substantia nigra)’이고 젊은이에 비해 ‘통째로 외우기’같은 기억력이 약해지며, 기억을 매끄럽게 떠올리지 못하거나 건망증이 생긴다. 그러나 연합적인 기능을 하는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의 노화는 그다지 진행되지 않으므로 거기에 축적되어 있는 풍부한 경험과 지식, 중요한 기억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One comment

  1. 글 너무 잘읽고 있습니다.
    저도 필리핀 에 투자비자로 와서 사업한지 15년째,
    그동안, 막연하게 느끼던 사항과, 이해되지 못했던 거를 명쾌하게 그리고, 직설적으로 풀어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계속 글이 기다려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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