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사회개혁운동은 먼나라 얘기일 뿐

필리핀 서민층들에게는 충분한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필자가 18년 전에 조그마한 사무실 겸 공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방 청소, 내 옷 빨래 및 직원들과 함께 하는 식사 준비만 담당하는 가정부를 직원의 소개로 채용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한국의 중학교)를 다 마치지 못하고 시골에서 올라온 14세 정도의 소녀였다. 하는 일이 많지 않아 허구한 날 TV 앞에 앉아 있기 일쑤였고 국립학교는 학비가 아주 저렴하다고 알고 있었기에 우리 사무실(숙소) 근처의 학교를 알아보아 학업을 계속하라고 일렀다. 1960~70년대의 한국에서도 시골에서 도회지로 일하러 갔던 청소년들이 가정부나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주인이나 사장의 배려로 틈틈이 학교를 다니는 것을 보고 자란 필자로서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제안이었다. 그런데 두세 달이 지나도 학교를 언제부터 다닐 것인지 전혀 얘기가 없었다. 가끔 학교는 알아보았느냐고 물어보면 빙긋 웃고 마는 것이었다.

그 무렵 필자가 거래하고 있던, 필자 보다는 스무 살 정도 나이가 많은 어느 필리핀 갑부(0.3% 내에 들어갈 것이 분명한 사람)와 저녁식사를 함께 할 기회가 있어서 이러 저러한 담소를 나누다 가볍게 그 가정부 얘기를 꺼냈다. 어떤 식으로 설득을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는 한편으로는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 한국인이지만 가난한 필리핀 사람들에 대해 호의가 있음을 은근히 내세워 칭찬받고자 하는 속셈도 있었다. 그런데 내 얘기를 듣는 동안 그 갑부의 얼굴이 굳어지는가 싶더니 내 얘기가 끝나자 심각하고 냉랭한 어조로 내게 충고를 해왔다.

“문 사장, 당신이 젊은 나이에(당시 필자 나이 30대 초반)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필리핀에서 사업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은 바로 대부분의 필리핀 서민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서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나요? 그 사람들이 제대로 교육 받았다면 당신 같은 외국인이 필리핀에서 일하거나 사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 같나요? 그리고 그 가정부가 학업을 마치고 나면 당신 집에서 계속 가정부로 일해 줄 것이라고 믿나요? 왜 당신 스스로에게 불편함을 초래시키고, 당신의 장래 경쟁자로 교육시키려는 어리석은 일을 하는가요?”

당시의 대화에서 필자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는, 서민들이 불충분한 교육을 받게 하여 항상 열등하고 불안하게 느끼도록 함으로써 삶과 안전에 관해 지배층에게 계속 의지하고 복종하게?유도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지배층인 그들이 오랜 세월 수립하여 관리하고 있는 필리핀 사회 구조를 외국인은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후 필리핀에도 한국의 새마을운동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한국인들을 만날 때마다, 이 나라 지배층들은 새마을운동이 자칫 1960년대 말 남미를 휩쓴 해방신학 운동 또는 의식 개조 운동으로 변질될까 두려워하여 방해할 것이므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준다. 필리핀에서 노숙자와 빈민 구제 활동을 벌였던 PREDA(People’s Recovery Empowerment Development Assistance Foundation, Inc., Philippines)의 설립자 Fr. Shay Cullen씨는 미 의회에서, 필리핀에서 활동하던 중 (지배층들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생명의 위협과 국외추방 위협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 We have been harassed, threatened?with death and brought to court to be deported for working to protect the street children and defend their rights to experience childhood and not to be abused.)

애꾸눈 왕이 있었다 한다. 마음에 드는 초상화를 그려 주는 사람에게는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지만 만약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숨을 빼앗겠다고 하였다. 먼저 한 화가가 애꾸눈을 가진 왕의 모습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사실을 담았지만 왕의 분노를 사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다. 두 번째 화가는 두 눈을 가진 늠름한 왕의 모습을 그렸으나 사실을 왜곡하였다 하여 그 역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자 아무도 왕의 초상화를 그리겠다는 화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젊은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겠다고 자원하였다. 그는 온전한 눈이 있는 왕의 옆모습을 그렸다. 그 초상화를 본 왕은 감격하여 큰 선물을 하사하였다. 이 우화에서 알 수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지배층들은 그들에게 불리한 진실과 문제점들을 직시하여 그대로 표현하거나 떠들고 다니면 대단히 불쾌해한다. 단점들은 알아서 적절히 감춰주고 장점들만 홍보해주면 ‘감격하여 큰 선물’을 준다. 그러나 지배층들에게 유리한 현재의 사회 시스템을 바꾸거나 개조하려고 시도하는 ‘현명하지 못한’ 존재에 대해서는 민감한 거부 반응을 할 것이며, 사전에 차단하거나 뿌리를 뽑아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려 할 것이다.

예일대 교수 Stanley Milgarm이 1974년에 발표한 <권위에 대한 복종>(Obedience to Authority)에 의하면, 기본적인 조건 하에서 일반인들이 권위에 복종하는 비율은 65% 정도이며 권위자가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이라 하더라도 복종하는 이유를 군중 심리의 영향으로 보았다. 그런데 권위에 대한 반항자가 발생했을 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복종 비율이 10%까지 하락하였다. 이는 군중 심리가 깨지고 일반인들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보았다. 특히, 권위에 대한 반항자가 일반인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을수록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므로 지배층들의 입장에서는 권위(현재의 사회 시스템)에 대해 반항하는 존재들이 있다면 그들이 필리핀인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제거하려 할 것이다. 지배층들에게 반항하였거나 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기에 테러를 당했다고 믿어지는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이 부지기수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20년 간 108명이 살해되었으며, 2004년에는 63명, 2005년에는 179명이 살해되었다. 여기에는 살해 미수, 불법 구금, 고문, 발표되지 않은 실종 사건 등은 포함되지도 않았다.

언론인들에 대한 테러와 증언들 일부를 최근의 신문 기사들 중에서 발췌해 보았다.

-필리핀 주요 일간지의 Zamboanga 지국장인 Julie Alipala(여)의 경우 2007년 9월 지방의 쇼핑몰에서 4명의 군인들이 접근해서 최근 그녀가 기사화했던 해병대 내에서의 군인들 사망사건에 대한 정보 제공자를 알려주지 않으면 곁에 있는 그녀의 6살배기 아들을 데려 갈 것이라고 협박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그녀가 소리를 지르고 시끄럽게 해서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자 군인들이 그녀의 아들을 풀어주고 사라졌다고 한다.

-Cotabato시의 라디오 리포터 Loreto Rosario는 “조심해라, 너의 행동들을 다 알고 있다. 네 삶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어느 군 간부의 메시지를 포함하여 여러 번의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어느 언론인은 이렇게 푸념한다. “우리는 진실의 전달자일 뿐인, 그 진실이 실제로 우리를 다치게 할 수 있다.”

-민다나오섬의 Cotabato시에서 지방 라디오 방송으로 정치적 견해를 피력해왔던 Badrodin Abbas는 2009년 1월 22일 두 명의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2012년 5월 9일, 마약 밀거래 문제를 보도했던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라디오 앵커맨, 귀가하던 중 3명의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2012년 4월 30일 새벽 5시, 민다나오 Koronadal시에서 라디오 리포터 Rommel Palma는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2012년 1월 5일, 아내와 어린 딸과 함께 귀가하던 민다나오 Cotabato 지역의 지방 신문 편집장 Christopher Guarin는 두명의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2012년 5월 9일, 민다나오 Davao 지역의 라디오 진행자 Nestor Libaton는 고속도로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2012년 5월 12일, 민다나오 Davao 지역의 라디오 방송 진행자 Lito Babra(여)는 광산업 관련하여 보도한 것에 대해 문자 메시지로 협박을 받았다. “당신은 xxx다. 착한 사람이었던 Nestor Liabaton가 아니라 당신이 죽었어야 했다. 당신은 General Santos시에 있는 당신 친구보다 먼저 죽었어야 했다. (우리가 당신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계속 광산에 대해 지껄이고 있는데, 당신을 죽이지 못한다면 당신 가족을 죽이고야 말 것이다.”

세계언론인협회에서는 2003년도 이후 2011년까지 세계에서 언론인들에게 가장 위험한 나라가 이라크 다음으로 필리핀이라고 지목하였다. 필리핀의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은 ‘완전한 눈이 있는 왕의 옆모습을 그릴 줄 아는’ 현명한 화가의 마음가짐을 갖도록 스스로 세뇌하고 훈련해야만 ‘지배층의 선물’을 받고 長壽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전직 필리핀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든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자유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역설적으로는, ‘누구든 자유롭게 (함부로) 말했다가는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즉 ‘죽고 싶지 않으면 언론의 자유를 현명하게 사용하라’는 경고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지배층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현명하지 못한’ 노조 지도자들과 노조 활동가들에 대한 테러도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는데, 언론에 보도된 것들 중 일부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2005년 9월 23일, 네슬레 필리핀 공장의 노조 위원장 Diosdado Fortuna는 여러 명의 무장 괴한들에게 피살되었다. 2005년 9월 30일, 여성 노조 활동가 Mansueta Sanchez는 괴한에게 피살되었다.

-2005년 11월, 레이떼섬의 Palo 마을에서 47명의 농민들이 공청회를 하는 장소에 수십 명의 군인들이 포위 공격, 9명이 사망하고 18명이 실종되었다. 실종된 사람들은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Leyte섬 Palo마을 학살현장 <자료사진=ph.news.yahoo.com>

-2006년 1월 25일, 1000여 명의 노조원 해고에 대한 재판 와중에 노조지도자 Roberto de la Cruz는 4명의 무장 괴한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2006년 3월 6일, Bulacan 소재 면직 공장 노조 위원장 Rogelio Concepcion가 실종되었다.

-2006년 9월 30일, 노조를 설립하려고 준비하던 공장 노동자 6명이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 며칠 후 시체로 발견되었다. 2007년 8월 11일, 버스회사 노조 지도자 Jimmy Rosios는 회사 차고에서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되었다.

-2001~2008년 사이 800명 이상의 노동운동가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되었으나 사건이 해결되거나 범인이 체포되지 않았다 한다. 그 이유는 국가 권력기관인 군이나 경찰 등이 자주 용의자와 연루 되어 있기 때문이며, 인권운동가들은 군이 법정 밖에서의 살상 사건들의 배후라면서, (피해자들은) 노동 활동가뿐만 아니라 정치 운동가와 언론인들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필리핀군과 경찰에서는 노조 활동가들이 공산 반군과 관련되어 있다고 의심하고 있으나, 살해되거나 실종된 노조 활동가들의 대부분은 그들의 직장에서 진행 중인 노사 분쟁의 와중 또는 파업 준비 중에 희생되었다.

-서민들은 노조 활동가들의 죽음과 실종에 (기득권층의 사주에 의한) 필리핀군과 경찰이 관련되어 있음을 상식(common belief)으로 여기고 있다.

중세 시대의 어느 저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먹고 사는 데 충분한 것을 갖고 있는데도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고, 나중에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것을 가지려고, 자식들을 부유하고 중요한 인물로 만들려고 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은 사악한 탐욕, 육욕, 자기 과시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언제나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세계를 지배해 왔다. 약육강식의 자연 법칙은 인간 사회에서도 적용되는 현실이다. 강자(지배층)를 제대로 파악하여 이해하고, 언제 어디서든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만 잡아먹히는 비극을 피할 수 있다. 현실을 무시하는 사람은 모험주의자이거나 몽상가 또는 바보라고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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