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교민사회④···지배층 교류의 허와 실

교민 무시하는 모국인 정서는?필리핀 지배층 닮은 꼴 ?

필자가 30대 중반 무렵에 마닐라의 어느 선술집에서 일단의 한국인 관광객들의 옆자리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다들 40대 후반,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이 자꾸 나에게 눈길을 주더니 급기야 내 자리로 와서는 술을 권하였다. 명함을 받고 보니 어느 지방 도시에서 공업사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몇 마디 말을 주고받다가, 그 사람이 필자를 무척이나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형씨는 무슨 사정으로 필리핀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면 지금 이곳에서 보다 훨씬 잘 살 수 있는데, 왜 이런 후진국에서 고생하는가? 도와 줄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면 내게 연락하라. 내가 도움이 되어 주겠다”고 했다.

모국인들은 필리핀에 살고 있는 교민들이 한국보다 후진국에서 살고 있으니 일단 동정심부터 발동하는가 보다. 잘사는 한국에서의 경쟁생활에 적응을 못한 실패자, 혹은 한국에서 뭔가 잘못을 저지르고 온 도피자가 아닐까하는 선입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은 필리핀 중산층과 부유층들이 필리핀에 사는 한국 교민들에게 품고 있는 정서이기도 하다. 우선, 필리핀 중산층과 부유층이 실제적으로 일상생활에서 겪고 있는 한국인들은 대체로 그 사람들의 세입자이거나 뭔가 평소에 그들에게 부탁을 하러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임대료를 제때 못내는 한국인도 만났을 것이고 부채를 다 갚기 전에 야반도주한 한국인들을 직접 겪었거나 그들의 친구 또는 친척들이 겪은 얘기를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죽 형편이 어려웠으면 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이런 후진국에 살러 왔을까? 하고 생각하기 쉽고, 후진국에 공부하러오는 한국 학생들이 그들 눈에도 가난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 관광객들이나 교민들을 보는 필리핀 중산층과 부유층들은 대체로 그들보다 낮은 계층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필리핀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많은 한국인들이 평소에 필리핀의 서민들과 부대끼며 살다보니 자칫 가끔 마주치는 중산층 또는 상류층들도 서민들처럼 한국인들을 부러워하고 우월한 국민으로 대우해 줄 것으로 착각하여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필리핀 인구의 대다수(90%)는 한국인들보다 다소 낮은 경제 수준, 교육 수준, 의식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상위 10%에 해당하는 중산층과 상류층들은 한국의 중산층 및 상류층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경제 수준, 교육 수준, 의식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들과 교제하거나 거래할 때엔 조심하고 신중해야만 불이익을 회피하면서 부드러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필리핀의 중산층과 상류층들은 자국의 서민들(국민의 90%)에게 수백 년 동안 우월적 지위를 행사하면서 생활해 오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모국인들이 그러하듯이, 별로 여유 있어 보이지 않는 교민들에게도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지배층들과 어울리려면

대통령, 장관, 상원/하원 의원, 경찰총장, 군장성 등 필리핀의 고위직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고 식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때로는 지방이나 해외로 함께 여행도 다닐 수 있다. 그 방법은 만나고자 하는 사람의 지위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얼마간의 금액을 기부(donation)할 뜻을 비치고 금액과 만날 시간을 보좌진들과 협의하면 거의 대부분 성사된다. 그러한 자리에서 어떤 청탁이나 부탁을 하더라도 상관없고 그 사람이 서류에 서명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들과 만남을 가지는 동안에 기부자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그리고 끝이다. 단순히 기부금 받고 담소 나누고, 사진 찍고 헤어질 뿐이다. 한국인이든 현지인이든, 어느 나라 국민이든 상관없이 기부하겠다는 사람들을 만나 주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진들을 많이 가지고 다니면서 지배층 정관계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사기치고 다니는 한국인들이 필리핀에 더러 있는 게 사실이다. 기부를 했다 해서, 몇 번 만났다 해서 그들과 친해지는 게 아니다. 그 지배층들은 친구로 생각하지도 않는데, 사기꾼 한국인들은 친구라고 떠벌리고 다니기도 한다.

필리핀의 지배층 사람들은 스스로 중세 봉건 시대의 영주(왕)처럼 생활하고 있다. 왕들에겐 신하(보좌진, 집사)와 노예(직원)들만이 필요할 뿐, 친구는 필요하지 않다. 부와 권력이 비슷한 지배 계층 사람들끼리는 친척은 존재하지만, 친구로서가 아닌 동맹자로서 또는 잠재적인 경쟁자로서 서로를 의식한다. 지배층들의 재산은 거의 토지와 관련되어 있고, 무역이나 제조업을 한다 해도 정확한 매출과 이익을 철저히 감춘다. 즉, 그들이 소유한 토지의 가격을 최대한 낮게 책정하고, 그들의 매출과 이익은 최대한 낮게 발표/신고하여 자신들의 부가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그러므로 언론이나 통계청에 발표된 자료에 발표된 것보다 몇 배나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자신들만의 왕국을 조상 대대로 지배하고 있는 필리핀 지배층들이 한국의 재벌들 앞에서 기죽을 것 같은가? 그들이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친해보고자 얼마간의 금액을 기부한다 하여 친구해 줄 것으로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그래서 지배층들과의 만남, 회식, 여행들 그리고 그들과 찍은 사진들이 실제로 어떤 사업을 추진하려고 할 때에 별 효과가 없음이 드러나게 되고 사기꾼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을 포함하여 유력한 정치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은 웬만한 사업가들의 사무실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으니, 그런 전시하고 과시하는 성격의 사진들과 식사 모임에 현혹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활하는 우리가 참고할 만한 게 2001년 개봉되었던 <친구>라는 영화이다. 폭력조직의 두목을 아버지로 둔 준석(유오성)과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 동수(장동건)이 핵심 인물인데, 오랫동안 유오성의 영향권 아래에서 살던 장동건이 훗날 스스로 세력을 키워 유오성의 조직과 견줄 수 있게 되자 유오성이 장동건을 질타한다. 이에 장동건이 반발하며 말한다, “내가 니 시다바리가!” 훗날 유오성이 보낸 자객에 의해 죽어가면서 하는 장동건의 말,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유오성이 상류층을 대변하고 장동건은 하류층을 대변한다고 보면 자본주의 사회의 계층과 속성을 이해하기 쉽다. 상류층(유오성)은 하류층(장동건)이 평생 그들의 시다바리(집사나 노예)가 되길 기대한다.

그 기대를 저버리고 경쟁상대가 되려는 순간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하류층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든지 운이 좋든지 어찌어찌해 상류층과 비슷한 위치가 되어도 인정해주지 않고, ‘한번 시다바리는 영원한 시다바리’여야 상류층의 정서에 부합한다. 하류층이 “그만큼 먹었으면 충분할 테니 그만 먹고 나도 좀 먹게 해 달라”고 애원해도 소용 없다. 상류층은 항상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부란 바닷물과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10억을 가진 사람은 20억짜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니 10억이 부족하고, 100억을 가진 사람은 200억짜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니 100억이 부족한 것이다.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거대한 사업을 구상하고, 그래서 부족한 자금은 더욱 커진다. 재산이 많으면 신규 사업 기획능력이 떨어져도 주위에서 대박 아이템이라며 들고 와서 유혹한다. 나무는 쉬고 싶어도 바람이 가만히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듯이. 상류층들은 배가 부르다는 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거나 주위 사람들이 그만 먹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게 자본주의다.

영화의 제목이 <친구>인 것이 아주 적절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충분히 많이 먹었으니 이제는 장동건에게 먹을 차례를 주거나 먹을 것을 나눠줄 수 있어야 ‘친구’일 것이다. 장동건은 유오성을 ‘친구’로 착각했던 것이다. 아니면, 노력해서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면 시다바리가 아닌 ‘친구’로 인정해줄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류층에게는 친구가 필요하지 않고 집사와 하인들 조직만 필요하다는 것이다. 외부인들에게는 이용할 가치가 있을 때까지만 호의를 베풀어 준다. 동맹 수준의 동업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지분을 많이 가질지, 누가 경영권 또는 주도권을 가질지를 두고 항상 경쟁하고 다툰다. 동업 파트너라 해서 서로 ‘동격’이거나 ‘친구’인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의 상류층과 필리핀의 상류층도 다를 바 없으니, 필리핀 상류층은 느끼지도 못하는 ‘친구’라는 단어를 함부로 떠벌리는 어리석은 한국인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인이 필리핀 지배층과 함께 사업을 하는 경우, 그들이 도움을줄 수도 있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가 크나큰 재앙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만일 그들과 동업을 하였을 경우 사업이 성공하여 이득이 많이 발생한다면 그들은 애초의 계약이나 합의에 상관없이 더 많이 가져가려 할 수도 있다. 사업이 실패하여 손해가 발생한다면 한국인은 그들의 손실 보전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고 노력하든지 아니면 필리핀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 그들과 마찰이나 분쟁이 생기면 법에 호소하더라도 그들의 힘(부와 권력)이 셀수록 그들이 의도하는 방식대로 진행된다. 사병들을 거느린 필리핀 지배층을 맨몸으로 상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 또한 어리석은 사람인 것이다.

스페인 식민 시절부터 무역과 사업을 하면서 부를 축적해온 필리핀 지배층들의 자본주의 역사가 400년 이상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이후 중상주의가 황금기를 맞이하던 300~400년 동안 필리핀을 지배했던 식민 정부 관리들의 후손들이 필리핀 독립 후에도 스페인이나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직도 필리핀의 지배층으로 남아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중상주의를 경험했고, 자유 무역주의, 산업혁명, 유럽과 미국의 대공항등을 경험하면서 엄청난 자본주의 지식과 편법을 축적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겨우 50여년의 한국인 자본주의 역사는 필리핀 지배층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수백 년 동안 노예처럼 살아오고 있는 서민들을 보고서 지배층들도 그러하려니 착각해서는 크게 당한다. 필리핀 국민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서민들이야 식민지 시절이나 지금이나 사업을 해 볼 기회가 없고 노예, 소작농, 직원으로만 살아왔으니 한국인들의 경쟁상대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외국인들(경쟁자들)의 진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해 가면서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는 지배층들의 힘(부와 권력)을 인정하고 각별히 조심해야 한국인들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현재의 필리핀 지배층들은 현재의 유럽, 미국, 중국의 상류층들과 인종적으로나 사업 스타일, 자본주의 경험과 지식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더욱이 현재의 유럽, 미국, 중국의 상류층들이 갖고 있지 못한 중세 봉건시대의 야만적인 문제 해결 방식도 갖추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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