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교민생활①···월 300만원 수입돼야 최소품위 유지

필리핀에서 장사나 사업을 하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특유의 부지런함과 우수한 두뇌를 무기로 필리핀 서민층들과 경쟁하여 그들보다 3~4배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서민층들의 소득이 너무 적어서 그들의 월 평균소득(60만원)보다 3~4배 더 벌어들인다 해도 180만~24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이 정도의 소득이면, 외국인으로서의 리스크 때문에 발생하는 안전비용과 품위유지 비용을 고려했을 때 최저 생활비밖에 안 된다. 서민층보다는 여유롭게 살지만 필리핀 중산층보다는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한국 교민들이 전체의 절반 이상일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 교민들의 실상을 곁에서 경험하며 살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은 계층별로 한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서민층들은 한국인에 대해서 언제나 우호적이고 친절하다. 그러나 중산층과 상류층들은 한국인에 대해 퉁명스럽게 대하고 오히려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한국인들이 1970년대 이전까지 얼마나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으며 한국의 기업인들에게는 ‘졸부’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대한다. 가난하고 천한 것들이 운 좋게 돈을 모아서 이제 자기들처럼 귀족 행세를 하려 든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필리핀에 대해 착각하는 것들 중 하나는, 필리핀 사람들은 대체로 교육 수준이 낮고 게으르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필리핀의 상류층에 쉽고 빠르게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리핀의 상류 사회 사람들은 수백년 전 스페인 식민지시대 때부터의 지배계층 후예들이 대부분이므로 처음부터 경쟁상대가 되지 않고, 외국인 신분으로 필리핀의 정계나 관계에 진출하기도 불가능하다. 자기 나라의 중류층 사람들도 상류층 진입을 힘들게 하기 위해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전문직의 문호를 확대해 버린 지 오래다.

장하준 교수가 언급한 ‘사다리 걷어차기’이다. 상류층 진입이 어렵다면, 중산층이라도 겨냥해 봐야 하는데, 우선 필리핀 중산층의 대표격인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의 전문가들과 비교하여 전문 지식 수준이 비슷하거나 그들보다 뛰어난지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한다. 또는 필리핀의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에 임원으로 취직이 가능한 지식, 경험과 능력을 구비하고 있는지도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것마저도 어려우면, 필리핀 중산층이 운영하고 있는 소기업들의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종업원 50~500명 정도의 회사 또는 공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만 필리핀에서 중산층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어학 연수하러 온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들과 함께 단기간 체류하며 소비만 하는 교민들과 한국 교회의 파송비로 생활하는 선교사들, 그리고 한국 기업들이 파견한 주재원들을 제외하고 나면 2012년도 현재 2만여 가정(6만~7만명) 정도가 순수하게 필리핀에서 벌이를 하며 생활하고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중산층(월 지출 수준 300만원 이상, 자산 3억원 이상)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교민들은 6000여 가정(2만명) 정도 밖에 안 될 것이다. 나머지 1만 4000여(4만~5만명) 가정들은 서민층과 중산층의 중간 정도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교민들 중에 사업이 성공하여 필리핀 상류층의 생활(월 지출 수준 3000만원 이상, 자산 30억원 이상)이 가능한 사람들은 아마도 200여 가정(1000명)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러나 최상류층(월 생활 수준 3억원 이상, 자산 300억원 이상)은 아직 한 명도 없을 것 같고, 앞으로도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참고로, 마닐라에서 생활하는데 드는 생활비를 예로 들어 본다면, 가족의 안전을 위해 필리핀 중산층들이 사는 동네에서 가정부와 운전수는 두고 최소한의 품위유지를 하며 사는 것을 기준으로 아래와 같다.

1)자녀교육비가 들지 않는 가정(4인)의 경우
집 임대료(다소 저렴한 주택 기준, 방3개)? 3만페소
전기료, 수도료, 전화(휴대폰 포함) 1만페소
가정부 급여 5000페소
운전수 급여 1만페소
차량유지/관리비 5000페소
부식비, 연료비 1만5000페소
외식비(월 3회) 6000페소
골프, 운동, 모임 회식(월 2회) 1만페소
비자연장비용 6000페소
병원비, 약값(중병이 아닌, 수술이나 입원 단 한차례) 6000페소
한국 다녀오는 비용(연 1회) 4인 가족 8만4000페소
전체 월 최소생활비 11만 페소(한화 약 286만원)

2)2명의 애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는 경우(4인 가족)
위의 항목에 학비(중산층 사립학교) 추가

사립학교(360만원)/12개월=30만원x2인=60만원
학교 과제물, 준비물, 책, 과외 활동비 5000페소(13만원)
과외비 (영어만 매일 2시간씩) 5000원 x 60시간 x 2인=60만 원
월 최소생활비=자녀교육비가 없는 경우(286만원)+133만원=419만원

위에 예를 들었듯이 한국인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필리핀 생활을 하려면 월 300만원에서 400만원을 지출해야 하는데, 필리핀에서 매월 순수입 400만원 이상을 얻을만한 사업 아이템 찾는 게 아주 어렵다. 두뇌가 우수한 1만4000여 한인가정의 가장들이 매일, 매달, 매년 혈안이 되어 물색해도 찾지 못해 월 200만~300만원 정도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필리핀 서민들보다는 분명 생활수준이 높다. 그러기에 착하고 온순한 그들로부터 대접과 존중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 중산층보다는 생활수준이 낮은 한국 교민들도 꽤 많기에 부의 크기로 인격을 저울질하는 중산층과 상류층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거의 모든 한국 교민들이 필리핀 중산층과 상류층이 소유한 주택, 아파트 또는 건물의 세입자들이다. 필리핀에서 정착하고자 계획하는 한국인들은 필리핀 사회를 쉽게 여기지 말고 깊은 사려와 충분한 조사를 한 후에 결정하여야 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