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평균수명···서민층 65세, 지배층 80세

필리핀 서민들은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으면 우월감을 느낀다. 마틴 자크(Martin Jacques)에 의하면, “하얀색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집단을 내포하며, 검은 피부는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낮은 신분의 사람임을 내포하는데, 특히 근대화와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러한 편견은 더욱 강화되었다. 즉 흰색은 도시의 번영을, 검정색은 농촌과 가난을 상징했다.” 필리핀 서민들은 일을 서두르지 않고, 몸에서 땀 냄새 나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일 년 내내 무더운 날씨이기에 땀을 흘려서 주위 사람들에게 악취를 풍기지 않으려면 빨리 걸어서는 안 되고, 100m 이상의 먼(?) 거리는 지프니를 타고 이동하는 게 보통이다.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일하거나 노출되어 피부가 검게 그을리는 것을 싫어한다. 서민들이 노동의 대가로 받는 급여가 너무 적고, 거기에 20~30% 더 보태준다 해도 그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역시 부족하므로, 어느 순간 신의 부름을 받아 천당 갈지 모르는데 스트레스 받아가며 애써 일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서 필리핀 서민들을 게으르다고 느낄 수 있겠으나 여태까지 해왔던 대로, 시키는 일만은 착실히 하므로, 게으른 것이 아니라 욕심이나 열의가 부족하다 해야 보다 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실제로 서민들에게 일을 독려하기 위해 얼마간 급여를 올려주면 처음에는 생산성이 좀 더 올라간다. 그러나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대체로 한 달 이내) 급여만 올랐을 뿐 생산성이 예전과 같은 수준이 되어버린다. 한 번 올린 급여를 생산성이 예전과 비슷해졌다고 다시 예전 급여로 되돌리면 노동자들이 (거의 무조건 노동자들 편인) 노동부에 제소할 수 있고, 서민들에게 기분 나쁜 감정만 심어주게 되기에, 그런 식으로 생산성을 독려하지 않는다. 신의 축복으로써만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을 좀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필리핀 서민들이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내용도 깊이 모르고 있으니, 종교(가톨릭)의 영향이 필리핀 서민들의 생활에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필자가 왜곡,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선 시대의 서민들 모두가 사서삼경을 제대로 공부하였고 내용도 깊이 알고 있어서 그 시대를 유교가 사회 이념이었던 시대라고 일컫는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통치의 편의와 질서 유지(사회 안녕)를 위해 이념 또는 종교가 항상 필요했었다. 그것들의 세세한 부분은 전문가(지배층, 성직자)들에게 맡기고 대부분의 피지배층(서민)들은 중요한 사항들만 숙지하도록 반복하여 세뇌시켜 질서와 체계를 단순 안정화 시켜는 것이니 필리핀의 서민들이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성경의 내용을 한국의 기독교인들보다 적게 암기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인보다 덜 종교적인 것이 아니다. 100가지의 교리를 알고서 10가지를 실천하며 산다면 10%의 신앙인이다. 20가지의 교리를 알고서 10가지를 실천하며 산다면 50%의 신앙인이다.

해외 취업 노동자들 중에서 특히 선원들의 소득이 월등히 높은데, 필리핀 선장의 경우 한 달 급여가 평균 5000달러 이상 된다.(월 급여 1만달러 이상 받는 선장들도 많다) 한 달 급여 수준으로만 보면 확실한 중산층인데 실제로 그들의 삶은 서민인 경우가 허다하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들은 서민 출신이었고, 직책이 낮은 선원으로 시작해서 오랜 시일 동안 경력을 쌓아 고소득(중산층) 직책인 선장으로까지 진급하긴 했지만 뼛속 깊숙이에는 서민 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의식 구조인 이기적이고 냉정하고 교리와 다소 동떨어진 삶에 익숙해지지 못한 고소득의 서민 출신들이, 벌어들인 소득을 가족, 친척, 이웃들을 도와주는데 쓰는 것은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은 서민층 내에서 상위에 위치하기는 할망정, 중산층의 삶을 살지 못한다. 즉, 서민층은 소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들로부터 재정적인 도움을 받는 서민들의 숫자도 소득과 비례하여 늘어난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 지수도 그것에 비례하여 늘어날 것이다. “빈곤층에서 중산층이 될 때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삶이 약간의 돈으로 향상되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엄청난 환각에 빠져있는 것이다. 우리의 목사, 랍비, 철학자는 가난이 행복과는 관련이 없다고 확신시키려 들지도 모른다. 돈이 사람들의 삶을 바꿀 때, 안전을 제공할 때, 음식을 줄 때, 쉴 곳을 마련해 줄 때, 다칠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때, 날씨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때,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때, 돈은 커다란 차이를 가져온다.”(Daniel Gilbert)

한편 부유층(지배층)들은 서민에게 혜택이 돌아갈 대표적인 사회 보장(좌파) 제도인 공교육과 의료 지원 시스템을 최저 수준으로만 유지하여 서민들이 중산층으로 신분 상승할 기회를 제도적으로 차단해 버린다. 공교육에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으니,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교실과 교사들 수가 부족하여 서민층 자녀들은 새벽 5시나 6시에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교실을 하루에 2부제 또는 3부제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학급당 학생 수도 늘어나고, 전기료가 비싸서 무더운 날씨에도 에어컨은 상상도 못하고, 너무 많은 학생들과 적은 급여에 교사들은 애들 가르치는데 흥이 나지 않는다. 그러한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고 명문 대학인 국립필리핀 대학(University of the Philippines)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서민층 학생들을 보면 대견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사회보장제도(SSS, Social Security System)는 지원이 너무 미미하여 극단적인 자본주의 국가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눈가림용 좌파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중산층과 부유층들은 형편에 맞게 민간 보험 회사의 의료 보험에 가입해 있으나 서민들은 그럴 여유가 없고 신에게 의지하느라, 한국보다 3배 가까이 비싼 병원비와 약값을 감당할 수 없어서, 가벼운 병들도 제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 그렇게 병을 키웠다가 중병이 들면, 신의 뜻으로 믿고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은 채 임종을 맞는다. 그래서 중산층과 상류층의 평균수명은 75~80세 정도인데 비해, 서민들의 평균수명은 60~65세 정도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문제가 있으면 내일 생각하라.” 서민들은 성실하고 착하기만 할 뿐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를 의식하지 못하면서 살고 있거나, 문제를 인식한다 해도 해결은 항상 ‘내일’로 미뤄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필리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계층에 따라 다른 이유로 다음과 같은 분석을 해보았다.

서민들은 위생 상태가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 지배층들은 대장균이 많은 지하수나 수돗물이 아닌 정수된 물로 음식을 조리해 먹고, 외식할 때에도 정수된 물로 조리하는 고급 식당만 찾는다.

필리핀에는 냉동창고와 냉동차량들이 턱없이 부족하고 무더운 날씨에 노출된 고기와 생선들이 쉽게 상한다. 그래서 서민들은 식중독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약간 상한 고기와 생선들을 고온의 기름에 튀겨서 먹는다. 튀긴 음식을 너무나 많이 자주 먹기 때문에 혈액 속에 콜레스테롤이 증가하여 심장질환을 앓는 서민들이 지배층들보다 훨씬 많다. (한국인들이 필리핀에 오면 섬나라이기에 생선이 다양하고 싱싱할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최고급 식당에서가 아닌 경우 생선회를 주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민들은 먼지와 소음 또는 차량 대기 오염에 노출되어 생활한다.
-서민들은 의료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해서 가벼운 병에 걸리더라도 혼자 힘으로 또는 싸구려 약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 병을 키우거나 합병증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
-지배층들은 안정된 사회 계층의 삶속에서 자신감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사에 서두르지도 않으므로 스트레스 요인이 적어 면역기능이 높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애플사의 임직원들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줬다고들 얘기한다. 많이 가지지 않는 자는 남들에게 많이 줄 수가 없다. 스티브 잡스는 평소에 엄청난 양의 스트레스를 소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스탠포드대학의 로버트 새플스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사회적 경험에서 가장 비참한 측면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사실은 우리를 포함한 동물이 스트레스를 낮추는 정말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다른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드는 일이란 것입니다. 우리의 공격성을 그들에게 옮겨놓는 것이죠.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궤양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자신에게 궤양이 생기는 일을 피하는 것입니다.”

보약이나 양생 기법보다는, 위생적인 생활과 적절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역(나라)에서 사는 것, 스트레스를 줄여 유쾌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 성공에 목말라 서두르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것 등이 장수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굵고 짧은 인생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고 그들 곁에 얼씬거리다간 그들이 나눠주는 스트레스를 (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받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니, 그들과 함께 짧은 인생으로 마감하고 싶지 않다면 조심해야 하고 가급적이면 피해야 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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