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가정부는 여주인 하기 나름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더미> 저자] 한국인이 필리핀 생활에서 가장 유용하고 혜택을 누리는 것이 가정부와 운전기사 도움을 받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들의 급여는 지역과 동네마다 차이가 나는데, 이웃들과 비슷한 급여와 대우를 하지 않으면 오해와 말썽의 소지가 된다. 대체로 메트로 마닐라에서 가정부는 월 3000~5000페소(1페소는 한화 약 24원), 운전기사는 7000~1만2000페소 정도다. 가정에서 고용하는 가정부와 운전기사들은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계약서를 쓸 필요는 없지만, 급여를 지불할 때마다 반드시 날짜와 금액 및 서명을 받아서 보관해 두어야 한다. 가끔 주인과 문제가 생겼을 때 급여를 받지 못하고 학대를 당했다고 고소하는 경우가 있는데, 증빙자료가 없으면 큰 곤욕을 치를 수 있다.

노동법 테두리 밖에서 일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해마다 12월 지급되는 13번째 월급여를 지급할 의무는 없지만 대부분 가정에서 크리스마스 시즌 때 가정부에게는 2000페소, 운전기사에게는 5000페소 정도를 보너스로 준다.

일부 한국인들이 가정부로부터 너무 심하다는 원성을 듣곤 한다. 가정부가 설거지를 마친 후 잠시 TV를 보고 있으면 나무라며 다른 일을 시키거나, 잠자는 시간 외에는 온종일 청소하고 빨래하기를 원하는 한국인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가정부를 포함하여 거의 모든 서민들에게는 식사 후에 30분 정도 휴식시간을 허용하고, 오전과 오후에 각각 30분~1시간 정도 휴식을 허용하니 너무 심하게 닦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서민들(특히 가정부들)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가족, 친척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주고자 일하고 있고 인내심이 부족하므로, 스트레스를 많이 주거나 고향에 경조사가 생기면 언제든지 가족, 친척 곁으로 돌아가 버린다.

어떤 한국 주부들은 한국에 잠시 다녀오는 동안 가정부를 시골집으로 휴가 보내곤 한다. 주부가 없는 동안 남편 혼자 생활하려면 가정부가 더 필요할 텐데 왜 시골집으로 보내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필리핀 사람들이 있다. 한국속담에 ‘하녀는 누운 소 타기’라 하며 주인이 여종을 건드리는 것이 누워있는 소를 타는 것보다 쉽게 생각하고, 외간 여자가 집안에 남편과 단둘이 있게 되는 상황을 용납하지 못하는 한국주부들 정서를 필리핀의 중·상류층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가정부를 하등인간으로 취급하고, 가정부와의 불륜관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아주 못 생기고 몸매도 형편없는 여성-살갗이 검고, 키가 작으며, 코가 납작하고, 다소 뚱뚱한, 필리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여성들을 비하하여 chimay라 표현한다-을 가정부로 고용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가정부에게 신체적 접촉을 시도한다거나 불미스러운 행위를 저질러 법정에 서게 되면 변태성욕자로 간주될 뿐더러 아주 저급한 인간취급을 받게 되어 경제적, 정신적 손실이 막대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인 정서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필리핀 정서가 그러하니 한국인들도 어쩔 수 없이 가정부는 하등인간으로 간주하고 관심을 주지도, 농담을 주고받지도 말고, 신체접촉은 절대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며 살아야 한다. 가끔 손버릇이 나쁜 가정부도 있으니 귀중품과 돈은 항상 안방에 두고, 가정부는 안방 출입을 금지시키는 게 좋다. 청소하기 위해 안방에 들어올 때는 주인이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외출할 때에도 반드시 안방 문은 잠가 두어야 한다. 못생기고 보수적이며 정직하고 성실한 가정부를 만나는 것은 필리핀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복 중의 하나이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가정부를 한국으로 보낼 수 있는지 가끔 문의를 받곤 한다. 우선 불법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모든 필리핀 노동자들은 한국산업인력공단과 필리핀의 해외취업청(POEA) 계약에 의해서만 선발되어 한국으로 갈 수 있는데, 가정부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외무부 소속인 대사관을 설득하여 관광비자를 받아서 간다 하더라도 입국하는 공항에서 법무부 소속인 출입국관리국 직원들이 필리핀 사람을 심사할 때 관광목적이 아니라 취업을 위해서 입국하는 것으로 판단하면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다시 필리핀으로 돌려보내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가정부는 계약서가 없다 하더라도 반드시 보수를 지불해야 한다. 채무관계 때문에 누군가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한다 하더라도 정당한 보수를 지불하여야 하며, 채무의 변제는 별도로 처리되어야 한다. 만일 가정부에게 정당하고 합법적인 사유 없이 보수를 지불하지 않거나, 가정부가 아닌 사람에게 가정부 업무를 강요하는 경우 노예범죄(crime of slavery)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되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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