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따갈로그’ 대신 ‘영어’ 잘해야 필리핀서 성공한다

많은 한국인들은 필리핀 사람들이 누구나 영어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것은 착각이다. 영어실력은 부의 크기와 거의 비례해서 차이가 난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영어수준이 떨어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가난한 학생들은 국립학교에 다닌다. 국립학교 교사들의 급여는 사립학교 교사 및 일반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보다 훨씬 적다.
2)가난한 서민들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서민층 학생들이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국가의 재정이 빈약하여 교실과 교사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3)교실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두번 활용하거나 세번 활용하는 국립학교들이 늘어나고 있고, 교실의 학생 수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서민들이 사는 동네에서는 새벽 6시경 등교하기 위해 거리에 나와 있는 많은 어린 학생들을 볼 수 있다.
3)학생들은 많고, 업무는 크게 늘고, 급여는 적어서 국립학교 교사들의 수업에 대한 열의가 부족하고 실력도 부족하다. 실력 있는 교사들이 근무조건이나 급여가 훨씬 많은 사립학교로 옮기거나 일반 회사로 이직한다.
4)영어수업을 현지어(따갈로그어 또는 지방어)로 진행한다. 한국에서 영어수업을 한국어로 진행하는 것과 동일하다. 다른 과목들은 교재도 현지어 교재이고 수업도 현지어로 진행한다. 쉬는 시간과 학교 내의 거의 모든 활동들이 따갈로그어 위주로 진행된다.
5)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외국인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제대로 익힐 기회가 부족하다. 가족 및 친구들과 따갈로그(또는 지방어)로 대화한다.

한편, 부자일수록 영어실력이 훌륭한 이유는 위의 경우와 정반대다. 사립학교의 수준은 천차만별인데, 부모의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사립학교를 선택한다. 학급당 학생 수, 교사 급여, 교육시설 등이 학교마다 차이가 난다. 부자들일수록 조건이 좋은 학교에서 자녀들을 공부시킨다.

국립학교 교사들은 공무원 신분이므로 실력이나 학업의지가 부족하고 불성실해도 해고하기 힘든데 비해, 사립학교 교사들은 대부분 계약직인데다가 급여수준이 높고 근무여건이 좋기 때문에 해고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공립학교 교사보다 대부분 실력이 우수하고 성실하며, 수업에 대한 열의가 높다. 수준이 높고 비싼 학비를 내는 사립학교일수록 학교에서 영어를 쓰는 비중이 높다. 특히 1년 학비가 500만원이 넘는 고급 사립학교와 외국인학교에서는 모든 과목을 영어교재와 영어로만 수업을 진행하고, 쉬는 시간 및 학교 내 활동들을 영어로만 진행하도록 하는 학교들도 있다.

모국어가 영어인 급우들도 있을 수 있고, 부모의 친구나 사업 관련 동료 혹은 외국여행을 통해 학교에서나 집에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다. 일부 부유층들은 가족들 사이에서도 영어로 대화하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 자란다. 이렇듯 가난한 사람들의 학업환경이 열악한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을 쌓은 서민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필리핀의 최고 명문대학인 국립필리핀대학(University of the Philippines, 케손 시의 Diliman 캠퍼스)이다. 이 대학교에는 전국에서 가난한 수재들이 모여드는데, 입학보다 졸업이 훨씬 힘들다. 교수들도 필리핀에서 최고권위자라는 자부심이 대단하여, 그들의 제자들이 만족할 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학점을 주지 않아 4년 만에 졸업해야 할 학생들이 5년, 6년 이상 낙제한 과목들을 계속 공부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3~4개의 명문 사립대의 졸업생들도 UP 졸업생들과 실력이 비슷하지만,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비슷한 실력을 갖췄음을 고려한다면 UP 출신들이 몇 배 훌륭한 수재들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주위의 한국인 사업가들에게 UP 출신을 우선 채용하여 회사의 장래 임원으로 육성하도록 하고, 다른 직원들보다 2~3배 급여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권하곤 한다. 영어교사 또는 가정교사도 UP 출신이 가장 훌륭하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다른 대학 출신 직원들이나 교사들이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겠느냐고 우려할 수도 있는데, 필자의 경험으로는, UP 출신은 필리핀 사람들 모두가 인정하는 수재들이기에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필리핀에서 중·상류층을 상대로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따갈로그보다는 영어를 잘해야 한다. 영어는 서툴게 하면서 따갈로그어를 유창하게 하는 한국인들을 간혹 보는데, 중·상류층 사람들은 이 한국인이 원래 (한국에서도) 하층민 출신이거나 필리핀에서 주로 상대하는 사람들이 서민층일 것이라고 간주하고 업신여긴다. 따갈로그어는 기초적인 수준의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만 익히고 영어실력을 꾸준히 향상시켜야 중·상류층으로부터 그들과 함께 대화하고 거래가 가능한 수준으로 인정받는다.

자기 나라 언어를 천시하고 영어를 우대하는 중·상류층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언어에 관한 한 그들과 비슷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프랭클린은 “나는 햄버거를 좋아하는 데 물고기들은 지렁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물고기를 낚으려면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 대신 그들이 좋아하는 지렁이를 낚시 바늘에 꿴다”고 했다.

언젠가 어느 필리핀 중산층에게 당신의 모국은 어디인가라고 물어보았더니 웃으면서, 자신의 국적은 필리핀이지만 모국은 스페인 30%, 미국 30%, 중국 20%, 필리핀 20%라고 대답했다. 스페인, 미국, 중국, 필리핀 원주민의 피가 적당히 섞여 있다는 뜻이다. 민족의식이 빈약하고 영어의 가치를 우대하는 필리핀 중·상류층들에게 자꾸 한국인이 나서서 민족주의와 모국어 사랑 캠페인을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들(중·상류층)이 좋아하고 존중해주길 바란다면, 현지어보다는 영어의 수준을 높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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