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28] ‘동의보감’ 손에 든 조선여인 ‘미라’의 정체는?

제6부 동업 그리고 조선여인 2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화물은 도자기, 목적지는 멕시코의 아카풀코Acapulco de Juarez항이다. 오리엔트 호의 소유지분은 헬리 20%, 헬리의 오랜 부하이자 주방장인 페냐 10%, 애드문 20%, 크리스전 20%, 유다양 30% 로 합의되었다. 애드문과 크리스전은 유다양이 그들보다 지분을 많이 갖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투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 갓 사업을 시작하는 유다양의 의지가 대단하여 그를 격려해주기 위해서였다. 젊은이에게 성취감을 이끌어주고 그가 성공하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도 즐거운 낙이라고 생각했다.

오리엔트 호는 주방장 페냐를 제외한 네 사람의 동업자가 공동 관리하고 공동 운항하기로 했으며, 당시 고용되어 승선하고 있던 선원들도 그대로 고용하여 승계하기로 했다.

페냐는 늙고 뚱뚱한 데다 항상 낡아 빠진 뱃사람용 외투를 입고 다녀서 가슴이 섬뜩할 정도로 보기 흉한 사람이었다. 크리스전이 페냐의 지분을 매입하고 승선자 명단에서 제외시키자고 애드문에게 제안했지만 애드문은 걱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귀담아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방장은 항해사가 아닌 하급선원인데다가 항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선박 안에서 권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마닐라에서 아카풀코 항까지의 거리는 약 8700마일(海里)이어서 평균속도 6노트로 계산하면 60여 일이 걸린다. 하지만 항해하는 도중에 괌에 들러 보름이나 한 달 정도 체류하면서 좋은 이윤이 예상되는 화물을 더 싣고 식수와 식량을 추가로 구입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폭풍우나 항해를 방해하는 요소들까지 감안하여 총 항해기간을 4개월로 예상할 수 있었다. 네 명의 동업자들은 도자기 구입비용뿐만 아니라 오리엔트 호 관리비와 항해경비까지 계산했다. 모든 경비는 동업자 네 사람이 각자의 지분비율로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애드문은 시장의 한 청과상점에서 망고스틴과 바나나를 한 자루 사서 들고는 바삐 걸음을 재촉했다. 다른 손에도 보자기가 들려 있었다. 여관에 투숙중인 크리스전의 병문안을 가는 길이었다.

키가 크고 머리칼이 짙은 갈색인 크리스전은 외모가 주는 풍채는 당당했지만 나이가 들어 쇠약해진 장기腸器는 어찌할 수 없었던지 가끔 앓아누웠다. 그럴 때마다 여관 주인이 수녀원에 있는 의녀醫女를 모셔왔는데, 놀랍게도 미라라고 불리는 중년의 조선여자였다.

여관 주인과 수녀들에게서 얻어들은 그녀에 대한 얘기를 짜 맞추어보면 이러했다.

30여년 전 (1592년) 조선 땅에서 임진왜란 전쟁이 한창일 때 불타고 있는 조선 궁궐 안에서 의서醫書 한 묶음을 품에 안고 울고 있는 어린 처녀가 있었다. 그녀를 일본 장수가 납치하여 일본으로 데려갔는데 그 때 그녀의 나이 고작 18세였다. 어찌 어찌하여 어린나이임에도 일본 내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의술을 지녔음이 알려지게 되자 오사카 성안에 머물면서 성주城主와 성주의 가족 그리고 사무라이들을 치료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로마 교황청에서 일본에 파견한 선교사 프란체스코를 운명처럼 만났다. 그는 처음에는 미라의 피폐한 삶을 동정하였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재주와 미모 그리고 정숙한 몸가짐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가톨릭을 전도한다는 핑계로 그는 거의 매일 미라를 찾아가 그녀에게 스페인 언어와 서양의술 그리고 서양식 장부작성법을 가르쳐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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