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29] 수녀복 차림의 조선의녀가 필리핀에 온 연유
제6부 동업 그리고 조선여인 3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프란체스코는 십여 년의 선교활동을 마치고 로마로 떠날 때 (1608년) 아무도 몰래 미라를 배에 태웠다. 그 무렵 미라는 고국에 대한 사정을 일본인들에게서 주워들었다. 적국 일본인들마저 존경하던 류성룡은 한 해 전 (1607년) 에 세상을 떠났다 하고, 일본인들이 ‘쥐새끼 같은 놈’이라고 흉을 보았던 선조 왕이 죽고 그의 아들 광해군이 즉위했다는 소문도 미라가 일본을 탈출하기 직전에 들었다. 하찮은 나라 조선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주위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미라의 바람은 항상 언젠가는 조선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프란체스코는 미라를 로마까지 데려가고 싶었지만 선교사로서의 양심과 책무를 저버릴 수 없었다. 그가 사모하는 미라가 좋은 기회를 만나 조선에 귀환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중간 기항지인 마닐라에서 성당의 신부들과 수녀들에게 미라를 부탁했다. 이미 스페인어가 유창한 미라는 그들의 배려로 성당에서 간호업무와 식량창고 관리를 하며 생활하게 되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미라가 마닐라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 덧 7년이 되었다. 그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마닐라에는 의사로서 숙련된 기술을 갖춘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동양과 서양의 의학 지식과 경험이 풍부했던 미라는 인트라무로스 요새 안에 살고 있는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의녀가 되었다. 그러나 선교 목적으로 응급치료 정도의 간단한 의술을 배워 왔던 스페인 신부들과 수녀들 중에는 그녀의 재주를 질투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대우는 그녀의 유명세에 비하면 극히 소홀했다.
중국인들의 정착촌인 디비소리아에도 의사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나이 많은 중국인 약재상들이 서너 명 있었지만 실력에 비해 돈을 너무 밝혀서 사람들은 그들을 돌팔이라고 비웃었다. 미라가 가끔씩 필요한 약재를 구입하기 위해 약재상에 들를 때마다 그들은 비록 그녀보다 연장자였지만 머리를 조아리며 존경을 표시했고 공손했다. 프로를 인정하고 대접하는 자세만큼은 중국인 아마추어들이 스페인 아마추어들보다 한 수 위였다.
애드문이 방안에 들어서자 크리스전과 미라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그날의 치료가 이제 막 끝났다고 했다. 미라는 자루를 건네받아 과일을 정성껏 씻어 탁자위에 올려놓으며 두 사람을 향해 포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들이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애드문 쪽을 자주 바라보았다. 크리스전을 대하는, 겸손하면서도 자신에 넘치는 애드문의 의젓한 태도가 그녀에게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총명하고, 밝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야생의 느낌이 나는 그의 얼굴과 인상에서 독특한 매력을 느꼈다. 한 마디로 그의 얼굴과 태도에는 부드러움과 강인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
애드문의 눈에 비친 미라는 유럽의 여인들에 비하면 키가 작았지만 가느다란 팔다리에 날씬하고 자태가 아름다웠다. 나이는 어찌할 수 없었는지 주름이 눈가에 많이 띄었으나 그다지 늙어 보이지 않았다. 소문에 듣던 바대로 어딘지 모르게 지식이 풍부하고 고생도 많이 해 본 사람 같은 차분함이 배어 있었다. 반듯한 용모와 투명한 피부에 짙은 눈썹과 총명해 보이는 검은 눈동자가 도드라져 그녀의 얼굴은 그날따라 더없이 우아하고 기품 있는 귀부인처럼 보였다. 게다가 깔끔하게 다림질한 하얀 수녀복 차림과 고귀한 의술을 지녔다는 점이 그녀를 더욱 순결하고 지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꾸밈 따위는 전혀 없는 그녀의 영혼은 맑고 자연스러워 보였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