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27] 유다양의 동업자 설득 이유 2가지
제6부 동업 그리고 조선여인 1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네 사람은 동업하여 무역을 하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가장 젊은 유다양의 얘기를 들으며, 키가 훤칠하지만 몇 올 남아있지 않은 머리칼을 볼품없이 뒤로 빗어 올린 헬리는 커피를 홀짝거리고 있었고, 애드문과 크리스전은 연신 망고스틴을 까먹고 있었다. 커피는 이미 필리핀에서도 재배되고 있어서 마닐라의 어느 여관이나 선술집에서도 값싸고 흔하게 즐길 수 있었다. 망고스틴은 붉고 두꺼운 껍질을 까면 흰 속살이 마늘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열대 과일이다. 달콤한 망고도 좋아했지만 그와 달리 신듯 달콤한 망고스틴의 맛을 두 사람이 무척 좋아했다.
크리스전은 조용하고 꼿꼿한 귀족타입의 노인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애드문은 옷차림도 그렇고 말과 태도가 지극히 평범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온갖 경험을 해본 사람 같은 차분함이 배어 있었고, 낮은 구름사이로 언뜻 보이는 밝은 별처럼 가끔씩 번쩍거리는 눈만이 타고난 야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왼손 중지에 끼고 있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두툼한 싸구려 반지가 평범해 보이는 애드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유일한 장신구여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유다양이 적극적으로 다른 세 사람을 설득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계약되어 있는 포르티 호에 실을 화물이 조만간 모두 도착하게 되면 마닐라를 떠나 다른 나라의 항구로 항해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지난 한달 보름동안 세 사람의 마음에 들게끔 작업해 놓은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톰슨이 그를 의심하는 눈치를 보이기 시작하니 이제 오래지 않아 톰슨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그의 배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세 사람과 달리 유다양은 그동안 사업을 해 본적이 없지만 사업자금을 착실히 모아 왔었다. 절도와 밀수를 통해서였다. 선주나 선장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소량 화물을 슬쩍 상인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고, 부피가 작아 숨겨 다니기가 좋고 거래 마진이 큰 금괴나 은괴를 밀거래했다.
거의 25년 동안이나 아주 소량씩 취급했고, 선장이나 다른 선원들에게 꼬리가 밟히기 전에 다른 배로 갈아타곤 했다. 돈을 펑펑 쓰는 보통의 뱃사람들하고는 다르게 급여와 절도와 밀수로 번 돈을 낭비하지 않고 알뜰살뜰 모았다.
어쩌다 선술집에서 부하 선원들을 조우하게 되면 흔히 사관들이 한턱내어 부하들을 격려하고 그들로부터 복종심과 존경심을 얻는 것이 관례였지만 유다양은 모르는 체 쌩 까거나 슬그머니 다른 선술집으로 피해 버리곤 했다.
그래서 그를 경험했던 선원들로부터 쩨쩨하고 옹졸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들어왔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해서 모은 재산이 은화 200냥 가까이 되었고, 거의 대부분 절도와 밀수로 모았음을 감추고 물 타기 하기위해 유능한 주식 투자가로 행세하고 있었다.
지난 보름 동안의 협상이 거의 마무리 되어, 네 사람은 1616년 1월까지 투자계약서에 서명하기로 약속했다. 네 사람은 동업관계이지만 오리엔트 호와 그 배에 실릴 화물에 투자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투자계약서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