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⑬] 교활한 눈빛의 신부 “성폭행이라니? 여인들 스스로 몸 바쳤을 뿐”
<3부>?리카르도와 애드문 3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리카르도 선장이 명령하자 엔젤호의 선원들은 생포된 해적선 두목의 사지(四肢)를 찢어 몸통과 함께 바다에 던져 수장시켰다. 해적선 선장에게는 아무런 발언권도 주지 않았고 회개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런 다음, 리카르도 선장이 신부의 복장을 하고 있는 사내에게 갑판에 꿇어앉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목줄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를 쳐들어 보이며 신부가 대들었다.
“일개 선장이 감히 신부인 나에게 명령한단 말인가? 나는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그분의 말씀을 전하는 신부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리인이신 교황님의 사제다! 당신은 내가 입고 있는 이 옷과 십자가 증표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리카르도 선장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걸렸고,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추상같은 꾸짖음이 바다와 하늘에 쩌렁쩌렁 울렸다.
“너 같은 추악한 자가 있기에 신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이다! 바다에서 강도짓을 하는 죄인들과 작당하여 재물을 쌓고, 가련한 여인들을 학대한 죄 용서할 수 없으니, 너는 내가 신의 이름으로 처단해야겠다!”
리카르도의 분노에 찬 눈빛과 발언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신부가 얼른 말꼬리를 낮추었다.
“리카르도 선장님, 저 여인들은 정신적으로 헌신하고자 나에게 자발적으로 몸을 바쳤습니다. 내가 성폭행한 것이 아니고요.”
리카르도가 여인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인들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수차례 가로저었다. 신부의 말이 거짓이라는 뜻이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신에게 선택받은 성스러운 몸이라고 거짓 믿음을 전하는 성직자들에게 자발적으로 육체를 바침으로써 그들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어리석은 여인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여인들에게서는 그런 어리석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리카르도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 녀석! 감히 이 자리에서까지 사람을 속이려 드느냐!”
그제야 신부가 갑판 바닥에 바짝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선장님! 제가 본의 아니게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려 용서를 구했으니 선장님께서도 부디 참작해 주십시오.”
“당신은 저 여인들에게 용서를 구했는가? 저 여인들이 당신을 용서해 주었던가?”
“신부인 제가 저지른 죄는 신과 교황님만 심판할 수 있고 그분들만이 처벌하거나 용서할 수 있습니다.”
신부가 교활한 눈빛을 사방으로 흘리며 또 다시 신과 교황의 이름을 들먹이자 리카르도는 화가 나서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것은 모두 너희 일당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다. 네가 저지른 죄는 신이나 교황하고 아무런 상관없다. 피해를 입은 저 여인들이 처벌할 수 있고 그 피해를 목격한 내가 심판할 수 있다!”
신부는 어떻게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급히 잔머리를 굴렸다. 아직도 그의 목소리에는 신부로서의 위엄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흔적이 묻어 나왔다.
“선장님! 요한복음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선장님이나 저 여인들에게 진정 죄가 하나도 없지는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