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17] 교황청·드레이크해적단 추격 뿌리치고 자메이카로

<3부> 리카르도와 애드문 7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엔젤호의 일등 항해사는 급히 글로브 극장으로 달려갔다. 공연은 이미 끝나 있었고 극장 앞에 있는 커피점에서 리카르도 선장을 발견했다. 습격 받은 사실과 교황청의 비밀 결정에 대해 보고를 받은 리카르도는 셰익스피어에게 정중히 작별인사를 하고 커피점을 나섰다.

리카르도 선장은 일등 항해사에게 엔젤호의 항해권한을 위임한다는 서류를 작성해 준 후 수습 항해사만을 대동하고 북쪽으로 이동했다. 사흘 만에 리버풀항에 도착한 후 수습 항해사를 시켜 엔젤호에 실을 새로운 돛 포를 여러 장 구입했다.

그 동안 엔젤호는 런던에서의 작업을 마치고 리버풀항으로 항해했다. 리카르도 선장이 런던을 떠난 지 정확히 10일 후 새벽, 엔젤호가 리버풀항 근처의 해역에 도착했다. 그러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돛 포를 잔뜩 실은 작은 어선이 엔젤호에 바짝 접근했다.

그로부터 한 달 하고도 보름 후, 리카르도와 엔젤호는 교황청과 드레이크 졸개 해적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서양에서 멀리 달아나기는커녕, 과감하게도 해적들이 득실거리는 캐리비안 해역으로 들어갔다.

항해 중에 선원들은 두 개의 널찍한 판재에 엔젤호의 선명船名을 새겼고, 여러 개의 비어있는 식품 저장 통에도 엔젤호 표식을 새겼다. 그러고 나서 ‘셀로나’라는 선명을 새긴 판재를 제작했다. 리처드 선장이 리버풀항에서 구매했던 새로운 돛 포에도 선원들은 셀로나호를 상징하는 커다란 문양을 노련하게 새겨 넣었다.

1599년 11월 15일 정오 경, 캐리비안해에서 해적들의 본거지로 가장 악명 높던 자메이카의 포트로얄항 인근까지 접근한 엔젤호는 해적선들의 눈길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잠시 후 리카르도 선장이 기대했던 대로 다섯 척의 해적선이 엔젤호를 뒤쫓기 시작했다. 엔젤호는 자메이카 섬의 남서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하늘을 살피고 있던 리카르도 선장이 먼 수평선에서 피어오르는 먹구름을 관찰한 후 명령했다.

“우현 변침!”

조타수가 “우현 변침!”이라고 큰 소리로 복창하며 조타휠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침로 고정!”

우현 쪽으로 선수를 돌리더니 북쪽방향으로 침로를 고정시키라는 명령이었다.

엔젤호는 육지 쪽으로 더욱 가까워지면서 뒤쫓아오는 해적선들을 그레이트고트 섬 근처까지 유인했다. 사방이 어둑해지는 것이 해가 저물어가기 때문인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서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리카르도 선장만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미풍微風이 서서히 약풍弱風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동안 해적선 5척이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섬 가까이에 도달하자 엔젤호가 다시 방향을 돌려 이번에는 남쪽을 향했다. 해적선들과 엔젤호는 서로 마주보게 되었다. 사방은 어두워오기 시작했지만 엔젤호는 바닥이 다 보일 정도로 맑은 바다 위를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5미터!”

수심을 재고 있던 선원이 보고했다. 엔젤호의 흘수(吃水: 수면에서 배 밑바닥까지의 깊이)가 3미터이니 배의 밑바닥과 바다 속 산호초까지는 아직 2미터의 여유가 있었다. 선원들을 나누어 삼분의 일은 대포 앞에 정렬시키고 삼분의 일은 돛대 앞에, 나머지 삼분의 일은 노잡이로 대기시켰다.

배는 리처드 선장의 명령대로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어 다가오고 있는 해적선들과 마주보고 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육지 쪽으로 후진하고 있었다. 30분쯤 흘렀을까, 모든 선원들이 300여미터까지 다가오는 해적선을 노려보며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강풍이 불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열대성 폭우와 돌풍이었다. 바람 방향은 육지에서 바다 쪽이었다. 그 때, 리카르도 선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돛을 올려라! 노를 힘껏 저어라! 전속력으로 전진!”

스무 개의 크고 작은 돛이 일제히 돛대를 쳐오르며 강풍을 받아 활짝 펼쳐졌다. 동시에 좌우 스무명의 노잡이들이 힘차게 노를 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섬 모래톱에 얹힐 듯 말듯 망설이고 있던 엔젤호가 갑자기 그들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오자 해적들이 깜짝 놀라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발포! 발포! 발포!”

다섯 척의 해적선이 쏘아대는 포탄은 엔젤호가 떠나버린 찰나의 지점에 집중적으로 떨어져 엄청난 크기의 물기둥과 산호 조각과 모래를 하늘로 치솟게 했다. 순식간에 해적선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엔젤호의 좌우 포신에서 굉음과 함께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해적 몇 명이 불화살을 쏘아대었지만 폭우로 젖어버린 엔젤호의 돛폭과 선체에 불을 붙이지 못하고 금세 사그라졌다.

엔젤호가 해적선들의 포위를 빠져 나오면서 두 척은 거의 파괴되어 침몰하기 시작했고, 세 척은 방향을 돌리느라 허둥대고 있었다. 리카르도 선장의 명령이 울려 퍼졌다.

“돛을 내려라! 우현 변침!”

엔젤호가 해적선들의 뒤쪽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더니 오른쪽에 있는 8문의 포신들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해적들도 엔젤호가 있음직한 방향과 지점의 폭우 속과 어둠 속으로 끊임없이 포탄을 날렸지만 단 한 발도 엔젤호를 명중시키지 못했다.

10여 분만에 나머지 세 척의 해적선도 엔젤호가 쏘아대는 대포알에 부서져 기울어지면서 항해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렸고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서 사방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해적들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로 미루어 그들이 처한 상황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포성이 멈춘 후 해적선들은 그레이트고트 섬 쪽으로 밀려 돌처럼 단단하고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산호초에 강하게 부딪치면서 결국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그 때 엔젤호 선원들은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바다에 내던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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