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생각] 필리핀 교민 잇단 피살사건, 정부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강신명 경찰청장이 11월초 필리핀을 방문할 예정이다. 강신명 청장은 필리핀 경찰청장과 이민청장을 만나 한국인 피살 사건에 대한 대책과 함께 철저한 수사를 요청할 예정이다.
강 청장은 특히 현재 마닐라·앙헬레스에 있는 코리안 데스크를 3개 지역으로 늘리고, 기존에 배치된 현지 경찰도 증원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다.
현직 경찰수장이 해외 교민 안전을 챙기기 위해 직접 해외를 방문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앞서 정부는 8일 서울 외교부청사에서 이명렬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 주재로 ‘필리핀 우리 국민 보호 대책을 위한 민관 합동회의’를 개최하고 폐쇄회로(CCTV), 차량용 블랙박스 등 범죄예방 인프라를 지원하기로 했다. 필리핀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한국인 9명이 피살됐다.
필리핀에는 불법 총기유통이 많고 현지경찰의 수사력 부족 등으로 한국 국민이 해외에서 피살되는 사건 가운데 약 40%가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앞서 2013년 12명, 2014년에는 10명의 한국인이 피살됐다.
정부는 필리핀 마닐라와 앙헬레스 등 한인밀집지역에 셉테드(CPTED, 범죄예방환경설계)를 적용해 CCTV를 대폭 증설하기로 했다. 앙헬레스 한인타운에는 17대의 CCTV가 설치돼 있다.
정부는 CCTV의 효과적 설치ㆍ운영을 위해 경찰청 내 셉테드 전문가를 현지에 파견하기로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셉테드 전문가가 직접 마닐라와 앙헬레스 등에 현지 상황을 확인한 후 설치 대수와 위치 등을 정하기로 했다”며 “현장 확인 후 CCTV 외에 범죄를 줄인만한 다른 셉테드 요소 적용도 검토할 계획”라고 했다. 셉테드는 지역이나 아파트ㆍ학교ㆍ공원 등 공간을 설계할 때 디자인을 통해 범죄 심리를 위축시켜 범죄 발생을 차단하고 예방하는 기법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 8월에 이어 지난 2일에도 한인 피살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카비테 지역에는 한인 자율방범대 신설을 위한 예산을 지원키로 했다. 정부는 또 범죄 예방과 증거수집을 위해 한국 국민들의 차량에 블랙박스 200개 분량의 설치 예산도 지원하기로 했다.
사건사고 예방 및 처리 인력도 보강한다. 주필리핀 한국대사관과 세부 분관에 영사협력원과 사건사고 보조 인력 증원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퇴직 필리핀 경찰 고위간부를 주필리핀 대사관 사건ㆍ사고 처리 자문관으로 고용하는 것도 검토하기로 했다.
필리핀 경찰청 내에 설치된 코리안데스크(한인사건 전담반) 설치 지역을 확대하고,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에 경찰 주재관을 추가로 파견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현재 주필리핀 한국대사관과 세부분관에는 △경찰주재관 4명 △영사협력원 12명 △사건사고 담당영사 보조인력 3명 등이 근무하고 있다. 코리안데스크에는 2명의 한국 경찰관이 파견돼 필리핀 경찰을 돕고 있다.
법무부와 경찰청은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한 수배자 송환 노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도피 수배자들이 한국 관광객 등을 상대로 2차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필리핀 경찰의 국내 초청을 확대하고 국내 치안전문가를 현지에 파견해 ‘순회 방법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최근 필리핀 교민 피살사건이 잇따르자 정부가 민관합동회의를 열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1. CCTV 설치 지원=필리핀에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외국인 상대로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전국의 그 많은 섬과 우범지역에 설치할 것도 아니고 생색내기에 그칠 우려가 든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접근하지 않은 채, 예산(돈)지원 형식으로 가게 되면 필리핀 정부나 경찰이 한국을 더욱 더 봉으로 여길 수 있다.
2. 일부 우범지역에 코리안 데스크 충원=단순 강도 및 살인사건은 한국인을 타깃으로 삼지 않는다. 이같은 단순 강도 및 살인 범죄자들은 필리핀인,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미국인, 유럽인을 가리지 않는다. 돈 많고 허술해 보이는 사람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물론 CCTV나 코리안 데스크는 그같은 단순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정부가 CCTV를 설치하고 코리안 데스크를 확충한다고 하여 단순범죄자들이 한국인은 제외하고 타국인만 노려 범행을 할까, 의문이 남는다.
3. 필리핀에서의 한국인 대상 살인사건의 본질=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이해관계에 얽혀있는 범죄들이다. 그런 범죄에는 CCTV나 코리안 데스크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4. 이해관계 있는 범죄 유형들=가장 심각한 것이 더미문제다. 필리핀에서 소매업을 하는 교민의 경우 95% 이상 더미를 쓰고 있다. 필리핀인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돈 빌려준 사람은 목숨이 위험하다.” 빌린 사람이 빌려준 사람을 죽이면 안 갚아도 되기 때문이다. 현지인 명의(더미)로 가게를 차렸는데 실제 투자한 사람을 죽여버리면
가게는 현지인 것이 된다. 회사의 현지인 명의가 60%이상인데 실제 투자자를 죽여버리면(혹은 투자자가 죽으면) 회사는 현지인 소유가 된다.
5. 10월2일 피살된 이모씨 같은 은퇴자의 경우=필리핀에서 생활하기 위해 집을 사거나 조그마한 사업을 차릴 경우 아파트(필리핀에서는 콘도라고 부른다)를 제외한 모든 집들은 한국인 명의로 살 수 없다. 회사 명의로 사는 경우, 그 회사의 지분은 반드시 현지인이 60% 이상이어야 한다. 따라서 외국인을 죽여버리면, 회사와 그 회사명의로 산 집이나 건물은 현지인(더미) 것이 된다. 이같은 현실을 모르고 이민 오는 은퇴자들이 범행 타깃에 되기 쉽다.
6. 현지 한국인 사업가와 필리핀 더미와의 관계=한국 교민들의 90% 이상이 더미들에게 지분을 60% 이상 신탁해 놓고 있다. 어떤 교민은 100% 지분 모두 더미가 소유하고 있다. 한국 교민들의 생명과 재산은 더미들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수많은 필리핀 더미들(거의 모두 착한 서민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어 사건사고가 이 정도에 그치는 것으로 현지 교민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의 빈부격차가 해마다 크게 벌어지고 있고, 서민생활이 날로 열악해지고 있어, 더미들에게 만족할 만한 대우를 해주지 않을 경우, 또는 악한 마음을 품고 있는 한국인들이 더미들을 뒤에서 사주하는 경우, 앞으로 더 많은 사건사고가 우려된다.
7. 한국인 사업가들의 딜레마=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려면 더미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고, 더미를 활용하다 문제가 생기면 필리핀에서도 한국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그같은 법과 현실의 불일치로 인해 교민들 가운데는 사업을 접고 한국으로 철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8. 10.8정부합동 대책의 문제점=근본적인 해결의지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생색내기용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정확한 현지상황 및 실태조사와 교민들 여론수렴 없이 탁상에서 결정한 듯한 인상이다. 이같은 사전조사 및 준비 없이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을 필리핀 현지의 치안유지를 위해 쓰고서도 교민들 피해가 줄지 않을 경우 받게 불신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기회에 한국정부와 대사관이 교민들과 문제점들을 진솔하게 상의하고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특히 자기 사업에 더미를 활용하고 있으니 “그 문제는 덮자”는 일부 교민 및 교민단체들을 분별해 내는 혜안도 정부당국에게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