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 (16)] 두손 맞잡은 셰익스피어와 리카르도 “공화파를 지지합니다”

<3부>리카르도와 애드문 6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공연이 끝나자마자 그는 극장주인을 찾아가 셰익스피어와의 만남을 요청했다. 극장주인은 관람석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그를 소개해 주었다. 겸손한 셰익스피어는 그의 초대를 선뜻 받아들여 공연이 끝나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극장을 벗어나 근처에 있는 커피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의 유럽에서는 상선 선장이라는 직함이 상류층 귀족과 동등한 존경과 대접을 받았다. 리카르도는 영국식 이름인 리처드 선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선생님의 작품들을 흥미롭게 읽고 있었습니다. 공연은 오늘 처음 보았는데, 책에서 느낄 수 없었던 큰 감동이 있더군요.”

리카르도의 칭찬에 셰익스피어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수줍음을 타는 성격인 듯 했다.

“과찬이십니다, 리처드 선장님! 저의 졸작을 좋아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두 사람이 미처 서로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다 마치기 전에 커피점에 들른 신사숙녀들도 셰익스피어를 알아보고는 너나 할 것 없이 다가와 인사를 하고 그날의 공연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았다.

셰익스피어도 오랫동안 준비했던 공연이 호평을 받자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기분이 불콰해졌다. 손님들이 제각기 자리를 잡고 나서야 커피점의 분위기가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커피향을 음미하며 서로간의 사소한 일상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이윽고 리카르도가 맘속에 품고 있었던 의문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시저를 살해하기로 했던 블루투스와 공화파들의 행동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계시나요?”

셰익스피어가 미소를 띠며 오히려 되물었다.

“제 작품에서는 어떻게 비춰졌습니까? 선장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블루투스를 옹호하는 듯하기도 하고, 시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듯하여 선생님의 진정한 평가가 무엇인지 애매했습니다. 저는 공화파입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저도 맘 속 깊숙이 블루투스의 공화파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상황에서는 절대 권력이 다수파이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저를 끔찍이도 아껴주시니 황제를 꿈꾸고 절대권력을 꿈꾸었던 시저에게 동조하는 듯한 표현도 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작품을 어느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독자들과 관객들은 블루투스쪽 또는 시저쪽으로 평가할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화파이신 선장님을 만나 뵙게 되어 저로서도 반갑고 영광입니다. 그리고 절대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저의 가치관을 자신 있게 드러내 놓지 못한 비겁함을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셰익스피어가 공손히 사과하자 리카르도 선장이 그의 두 손을 꼭 쥐었다. “무슨 말씀을요! 선생님 작품들은 인류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후세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더구나 내용 중에 간간이 드러나 있는 불의에 대한 복수와 응징, 자유와 인권, 평등 그리고 공화주의 사상은 깨어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불태울 것입니다. 그들이 머지않아 선생님이 진실로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마주보는 두 사람의 눈빛이 동지同志의식으로 한층 빛났다. 리카르도가 <햄릿>에 나오는 구절을 조용히 읊조렸다.

“미혹迷惑은 늘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고

그래서 선명스러운 우리 본래의 결단은

사색의 창백한 우울증으로 해서 병들어 버리고“

그러자 셰익스피어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화답했다.

“하늘이라도 찌를 듯 웅대했던 대망大望도

잡념에 사로잡혀 가던 길이 어긋나고

행동이란 이름을 잃고 말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들은 생전 처음 만났지만 금세 친교의 문을 텄고 그들의 깊은 생각은 서로의 문턱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셰익스피어와 리카르도가 커피점에서 담소하고 있던 그 시각, 교황청의 밀령을 받은 1백여명의 비밀 기사단 병사들이 리카르도 선장을 체포하기 위해 엔젤호를 습격했다. 그들이 어떻게 하여 다이애나호로 위장한 엔젤호를 찾아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엔젤호 선원들은 병사들의 강제 승선에 저마다 무기를 들고 강력히 반발했다.

결국 한 시간여 동안의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기사단측에서 7명이 사망했고 선원들은 3명만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엔젤호 선원들의 무술실력에 깜짝 놀란 비밀 기사단 병사들은 엔젤호 안에 리카르도 선장이 없음을 알고 나자 서둘러 철수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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