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⑮] 리카르도 선장, 런던항 입항 당대 문호 셰익스피어를 찾다
<3부>리카르도와 애드문 5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납치되어 강제로 노잡이를 하고 있던 노예 스무명을 해방시켜 주었는데 그 중에서 전투 중에 해적들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며 공을 세운 다섯 명의 젊은이들은 리카르도 선장의 선원이 되기를 원하여 엔젤호에 남았다. 가련한 두 여인들과 나머지 노예들은 충분한 금전을 주어 가까운 육지에 내려주었다.
노획한 보물들의 배분은 당시 관례대로 1/3을 스페인 황제에게 바치기로 하여 남겨두고, 나머지는 엔젤호와 브릭호의 선원들과 나누었다. 선장이 많은 몫을 차지하는 것이 또한 관례였으나 리카르도 선장은 이 관례를 제멋대로 어기고 두 상선의 모든 선원들과 공평하게 나눠가졌다.
이러하니 엔젤호의 선원들이 리처드 선장을 존경하고 따르지 않을 수 없었고 해적들과의 전투에서도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에릭손 선장은 자신의 생명과 배 그리고 화물의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달려와 해적을 물리친 리카르도 선장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기 몫으로 분배된 보물들을 모두 리카르도에게 양보했다. 그러나 리카르도는 끝내 에릭손 선장이 받기를 청했다. 해상에서 위험에 처한 선원들을 구하는 것은 엔리케 항해학교의 교칙이었고 항해사로서의 가치관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 해적선에서 얼마나 많은 보물들을 노획하였던지 리카르도 선장과 선원들은 그 때까지 벌었던 전 재산보다도 많은 이득을 취했다.
이러한 리카르도 선장의 영웅적 행동은 삽시간에 드레이크 선장의 졸개였던 해적들에게 소문이 널리 퍼졌고, 교황청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해적들은 리카르도에게 반드시 보복하겠다고 공언했고 교황청에서도 리카르도 선장을 체포하여 조사하기로 비밀리에 결정했다. 그러자 엔젤 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개의 선명船名을 바꿔가며 무역활동을 하였다.
드레이크의 졸개 해적들을 소탕하고 그들과 함께 있었던 신부를 처벌한 지 10여 개월이 지난 1599년 9월 20일, 선명을 다이애나호로 위장한 엔젤호가 런던항에 입항했다.
리카르도 선장은 평소에 그와 동시대에 살면서 많은 걸작을 남긴 셰익스피어를 존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출판될 때마다 돈을 아끼지 않고 사서 읽었다. 이 번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공연되는 것을 보기 위해 런던으로 향하는 화물들을 저렴한 운임으로 실었던 것이다.
마침 입항한 다음 날 셰익스피어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의 첫 공연이 시작되었다. 리카르도는 화물의 하역작업을 일등항해사에게 맡겨놓고 공연장인 글로브 극장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