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①] 가난한 자에게 큰 정의를 바라지 말지어다
제1부 대항해 시대 1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16세기와 17세기까지는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라 불렸다. 후세 유럽인들이 듣기 좋은 말로 대항해시대라 명명했지만 실제로는 기독교 유럽국가들이 비기독교 아시아와 아메리카 국가들을 약탈하고 식민지화하던 포악무도한 시대였다. 유럽인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선량한 아시아,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정복하고 착취하던 시대였다. 땅이 없어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군인들과 선원들, 그리고 이단으로 박해를 받아 가난했던 신교도들이 정복과 착취의 선봉에 섰다.
시인詩人들은 시대를 앞서 느낀다고 한다. 일찍이 프랑스의 시인이자 방랑자인 프랑수아 비용(1431-1463)이 도리가 무너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예언했다.
가난한 자에게 큰 정의正義를 바라지 말지어다.
비용의 ‘가난한 자’는 재물에 국한하지 않고 영혼이 빈곤한 자들까지 포함하여 일컬음이었으리라.
대항해大航海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가장 일찍 나섰고 가장 열성적이었다. 몇 십 년이 지나자 다른 유럽 국가들도 이들 두 나라가 먼 곳에서 강탈해오는 재물을 시기하여 앞 다투어 상선대商船隊를 조직하여 정복과 약탈경쟁에 뛰어들었다. 1588년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침한 후에는 국가에서 노골적으로 지원하는 해적들이 상선들에서 탈취한 보물과 화물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사건도 크게 증가했다.
백년 이상의 강탈로 가난한 수많은 유럽인들이 부자가 되었고, 이미 거부巨富의 반열에 오른 유럽의 왕들과 상인들은 정복과 착취와 약탈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서로 결탁하여 동인도회사東印度會社를 설립했다. 1600년 영국, 1602년 네덜란드, 그리고 1604년에는 프랑스가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여 누가 더 강탈을 잘 하는지 경쟁했다.
먼 대륙의 귀한 물건들을 대규모로 약탈하여 유럽까지 가져오는 데에는 선박이 가장 유용한 수단이었다. 당시의 선박들에 대해 알아보자면 이렇다. 1500년에는 까락이라 불린 범선이 주로 활약하였고 1600년대 들어서는 카락에서 발전된 형태의 갤리온 선이 주도했다. 갤리온 선은 카락에 비해 폭은 비슷했지만 배의 길이가 길었다. 그래서 보다 많은 화물을 싣고도 더 빨리 항해할 수 있었다.
해적 왕 드레이크 선장이 세계일주 항해에 사용했던 초기 갤리온 선 골든하인드 호는 1577년 건조되었는데, 배의 길이는 31m, 폭은 6m였으며 대포 22문을 포함하여 총 약 300톤의 화물과 무기를 적재할 수 있었다. 비교하자면, 드레이크보다 85년 전인 1492년 신대륙을 탐험하기 위해 대서양을 횡단했던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 호는 150톤 규모에 길이 19m, 폭 5.5m에 불과했다. 1580년에 활약했던 조선의 거북선은 150톤 규모, 길이 35m, 폭 10m였으니, 초기 갤리온 선과 비슷한 크기와 규모였다.
서구의 여러 나라들은 속도도 빠르고, 적재량도 높고, 또 포격전에 적합한 갤리온 선을 더욱 크게 건조하여 군함과 대형 상선으로 운용했다. 1600년에 들어서서는 갤리온 선의 규모가 500톤급에서부터 2000톤급까지 건조되었다.
이 중에서 1500톤급에서 2000톤급의 대형 갤리온 선을 일명 ‘마닐라 갤리온 선’이라고도 불렀는데 그 이유는 이와 같은 대형 갤리온 선들이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마닐라와 멕시코를 오가는 항로에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갤리온 선들은 1565년부터 1815년까지 무려 250년간이나 이 항로를 지배했다. 그래서 이 무역을 ‘갤리온 무역’, ‘갤리온 선 무역’ 혹은 ‘마닐라 갤리온’이라고 일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