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②] ‘호사와 비극의 극치’ 타지마할 무덤

제1부 대항해 시대 2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대항해시대의 유럽 땅에서는 부패한 로마 가톨릭에 대항하여 개신교도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1517년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시작되더니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130년 가까이 구교와 신교로 나뉘어 종교전쟁을 벌였다. 그 기간 동안 종교재판과 마녀화형식이 빈번했고, 종교로 인한 박해를 피하고자 또는 약탈에 가담하여 부자가 되고자 하는 많은 피기득권층 유럽인들이 식민지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무리들이 많이 섞여 있어서 기독교를 전파하고 신세계를 건설한다는 핑계로 수백만명의 토착민을 학살했다. 유럽 땅에서의 피해자들이 남의 땅 신대륙新大陸에 들어가서는 오히려 더 악랄한 가해자로 변신한, 모순과 거짓과 위선이 판치던 끔찍한 시대였다.

문화와 과학 면에서는 몽테뉴, 셰익스피어, 세르반테스, 갈릴레이가 활동하며 종교의 비이성적인 영역을 탈피하여 과학과 인간지성의 영역이 확대되던 시대였다. 그리고 왕과 교황의 절대 권력에 대항하여 국민들이 자유와 권리, 민주의식을 갖추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다.

1649년 영국에서는 크롬웰이 왕을 처형한 후 국민(의회)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공화국을 열었고, 이는 1689년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선언한 영국의 권리장전과 1789년 “인간은 나면서부터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프랑스 인권선언의 시발점이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때는 이미 인간의 지성이 해방되어서 세기 이전에 비하면 한층 넓고 한층 능동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있었다.

대항해시대의 아시아는 어떠했을까?

1615년과 1616년 중국에서는 산동지역과 만주 및 시베리아 지역에서 극심한 가뭄과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먹을 것이 없었던 굶주린 사람들이 사람을 잡아먹는 참담한 현상을 빚기도 했다. 1616년 만주를 통일한 누르하치가 후금(청)을 건국하여 세력을 키우더니 1627년(정묘호란)과 1636년(병자호란) 허약한 조선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냈다. 1644년에는 이자성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명나라는 망하고 청나라가 중국을 통치하게 된다.

조선에서는 유교사상과 계급제도의 모순으로 허례허식과 당파싸움에 몰두하여 세계가 급변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급기야는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그 후 7년 동안 지속되었으나 기득권층의 무능과 부패는 바로잡지 못했고, 유교사상과 세습된 신분제도에 세뇌된 백성들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지배계층에 분노할 줄을 몰랐다.

일본에서는 이순신 장군에게 패퇴한 토요토미가의 뒤를 이어 1608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으로 임명되면서 에도 막부를 세웠다.

인도에서는 징기스칸의 후예라고 자칭하는 바부르가 1526년 로디왕조를 격파하고 이슬람계 무굴왕조를 세웠다. 3대 황제인 악바르 대제의 시기(1556-1605년)에는 인도의 영토가 크게 확장되고 문화가 꽃피웠으나 5대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부인을 기리기 위한 궁전 형식의 무덤인 타지마할을 건축하는데 국고를 탕진하면서 국력이 급격히 쇠락했다. 타지마할은 2만명이 넘는 백성들을 동원하였고 완공하는데 22년이나 걸렸다(1632-1654). 그리고 공사가 끝난 후 공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손목을 잘랐다 하는데 그 이유는, 타지마할보다 더 나은 무덤이나 궁전을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다. 얼마 후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무덤을 일컬어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 ‘新세계 7대 기적 중 하나’라고 극찬하고 있다. 하지만 양식 있는 소수의 지성인들은, ‘절대 권력이 허영과 사치를 과시하기 위해 국가와 백성들에게 얼마나 크나큰 죄악을 저질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백성들의 피눈물을 뽑아내고 나라를 망하게 한 허영과 죄악덩어리를 보고 찬탄하는 인간들의 심성과 대비된다 하겠다. 유네스코는 단체는 허례허식과 끔찍한 착취의 상징인 이 건축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제1부 끝, 제2부 ‘유다양’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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