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⑩] 겁장이 유다양 “해적질보단 해상 상인이 내 적성이야”
제2부 유다양 8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결국 몇 년이 지나도 해적질로는 한 푼의 재물도 쌓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천성이 탐욕스러우나 겁 많고 소심한 그의 가슴은 해적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욱 오그라들고 부자가 되고자 했던 욕구불만만 겹겹이 쌓여갈 뿐이었다. 순수하지 않았던 그의 영혼이 더욱 더러워지고 어두워지던 시기였다고도 할 수 있었다.
1588년(유다양의 나이 17살) 다른 해적선과의 전투에서 패한 뒤 생포되어 두 달 가까이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질흙같이 어두운 어느 겨울 밤, 포르투갈의 조그마한 해안도시를 약탈하는데 열중하여 해적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유다양은 노잡이 의자와 발목을 연결하여 묶어놓은 사슬을 풀고 육지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그 때 해적들의 자루 속에 숨겨놓은 금화 서른 냥을 슬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유다양은 결코 해적생활을 하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멀리 멀리 줄행랑을 쳤다.
유다양에게 해적선에서의 잔혹했던 경험은 그를 용맹하고 거친 선원으로 단련시켜 주기는커녕 오히려 겁 많고 비겁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천박한 인간성을 심어 주었을 뿐이었다.
남자란 약점을 감추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종족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유다양은 해적선에서의 경험과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약점(비겁, 잔혹, 탐욕, 위선 등)을 철저히 감추며 살아왔다. 그러나 그 후 거의 30년 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누군가 해적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움칠하는 버릇은 감춰지지 않았다.
마지막 해적선에서의 노예생활에서 탈출한 후, 유다양은 해적들의 눈에 띌까 두려워 항상 이탈리아, 그리스와 터키를 연결하는 지중해 북쪽의 항로를 다니는 상선들만 골라 타면서 항해와 무역에 대한 경력을 쌓았다.
지중해 남쪽인 북아프리카 연안에는 바르바리라 불리는 이슬람해적들이 자주 출몰했다. 하지만 1571년 스페인과 베니스의 연합함대가 레판토 해전에서 이슬람의 터키해군을 격퇴한 이후부터 지중해 북쪽 해상은 바르바리들이 얼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적들과의 전투에 대한 두려움이 덜했다. 그러다가 1600년 (유다양의 나이 29살)부터 멕시코와 마닐라를 오가는 갤리온 상선대가 인기를 얻게 되자 주로 이곳 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의 항해사로 고용되어 일했다. 카리브해 인근과 유럽연안은 해적들이 들끓었지만 태평양 항로에는 해적이 거의 없다는 것도 이 항로의 선박을 선택하게 된 큰 이유였다.
물론 태평양에 해적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특히 왜구라 불리는 일본해적들이 조선해안과 중국해안을 노략질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들의 해적선은 아주 작고 초라할 뿐만 아니라 속도가 느려서 유럽의 상선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유다양은 한때 드레이크처럼 한 탕 노략질로 평생 호강할 수 있는 재물을 쌓고 싶은 욕망을 품고 해적이 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전투 중에 겁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수치스러운 약점이었다) 실제로 재산이 모이지도 않아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다고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 없는 전투를 통해 약탈을 꿈꾸며 어두운 포구에서 떠돌이생활을 하는 대신 상인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꾸었다. 화려한 도시에서 신사로 행세하면서 잔머리를 굴려 폭리를 취하거나 불법적인 상거래를 통해 거부가 된 상인들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높았다.(제2부 유다양 끝, 3부 ‘리카르도와 애드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