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성이 읽고 밑줄 긋다] 아이가 세 살까지는 죽었다 생각하라고?
신의진 <현명한 부모는 자신의 행복을 먼저 선택한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신의진(새누리당 원내대변인) 육아교육 전문가의 베스트셀러.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 사이에서는 꽤 영향력이 높다. 육아교육과 관련해 20권이 넘는 책을 썼으니 대단하다.
그러나 이 책, <현명한 부모는 자신의 행복을 먼저 선택한다> 중 ‘아이가 0~3세 때는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라’라는 문단에서 하는 말들, 한편으로는 사실이길 바라는 마음이 들면서도(지금 너무 힘든 사람에게 조금만 더 참으면 괜찮아진다,라고 하면 믿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한편으론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말, 굉장히 맘에 안 드는 말이다.
왜 사회가, 남편이 함께 책임져주지 않고 ‘엄마’라는 존재에게만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라’고 견디라고 말하나 싶어서.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어떻게 죽었다고 생각하라는 건지 싶어서. 그리고 과연 3년을 견딘다고 해서 이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육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인가 싶어서.
아이가 만 세 살이 넘어서 키우기가 좀 수월해지는 때가 온다는 것이 과연 진정한 육아의 봄날일까?
어쨌든, 그 외 내용은 매우 설득력있는 인상적인 분석이라고 본다. 신의진의 다른 책들도 읽어볼 만하다.
p. 44~50
당신은 ‘나르시스틱 인저리’로부터 무사한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이같은 과정을 겪게 된다. 누가 뭐래도 스스로는 예쁘고 잘났던 내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가는 과정이 바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이다. 이때 겪는 심리적 상처를 나는 ‘나르시스틱 인저리(Narcissistic Injury)’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까지 자기 본위의 삶을 산다. 어떤 일이든 내가 싫으면 안 할 수도 있고, 무엇이든 하고 싶으면 눈치 볼 것 없이 시작할 수 있다. ‘나도 어떤 면에서는 남보다 뛰어나’, ‘나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야’라는 둥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그런 긍정적인 평가는 서서히 힘을 잃어간다. 똑같이 귀한 자식으로 자랐지만 남편은 친정에 와서 손 하나 까딱 안 하며 손님 대접을 받는데, 나는 시댁에 가서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마칠 때까지 종종거리면서 시중을 들어야 한다. ‘그걸 내가 왜 해?’ 하고 거부했다가는 부부 관계, 가족 관계에 미칠 파괴적인 영향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면서 서서히 ‘나’를 잃어가게 된다. 최근 몇 년 동안 결혼 1년 이내 아이 없이 이혼하는 비율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그들 대부분이 나르시스틱 인저리를 견디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그건 단지 시작일 뿐이다. 아이가 생기면 나르시스틱 인저리의 폭탄 세례를 받는다. 임신 기간 동안 일어나는 몸과 마음의 변화는 아무것도 아니다. 분만실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되는 ‘동물이 되는 느낌’은 수유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적어도 아이가 세 돌이 될 때까지 이어지는 육아 과정은 말 그대로 ‘나’라는 사람이 죽고 ’00엄마’라는 사람이 태어나는 고통스런 과정이다.
밤잠을 설치며 수시로 깨는 아이를 달래고, 젖 먹이고, 빨래며 청소를 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오늘과 내일이 똑같고, 어떤 보상도 없으며, 24시간 아이를 위해 대기하느라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 단순 반복적이기만 해도 좋으련만 예기치 않은 일들이 시시때때로 벌어진다. 그야말로 고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다. 풍경 좋은 찻집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영화 한 편 보고, 친구랑 만나서 수다 떨고 쇼핑하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엄마들은 누구나 한번쯤 ‘이게 정말 사는 건가’, ‘내가 정말 이것밖에 못하는 사람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처럼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무능력감에 시달리다 보면 삶이 불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여자들의 이런 상태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여자는 가정에 묶이게 되고 그의 능력으로 보아 전혀 보람이 없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무수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보잘 것 없는 일들의 짓눌림에도 매력과 지성의 3/4을 잃지 않았다면 참으로 운이 좋은 여자다. 꼭 해야만 할 일을 해치울 뿐인데도 여자는 대부분 남편에게 재미없는 아내가 된다. 즉 여자는 가정에 있어서의 의무를 수행한 대가로 가족의 사랑을 상실한다.”
0~3세 아이를 둔 엄마가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
0~3세 아이를 둔 엄마들의 심리 상태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우선 영국에서 공무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한 연구에 따르면,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총책임자보다 병에 걸릴 확률이 세 배나 높게 나타났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걸까? 답은 삶의 통제권을 쥐느냐, 안 쥐느냐에 있다. 직장에서 총책임자는 일에 대한 통제권을 자신이 쥐고 있다. 그래서 언제든 자기가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움직이면 그만이다. 하지만 낮은 위치에 있을수록 일에 대한 결정권을 갖기가 힘들다. 그들은 일을 할지 말지, 하면 언제까지 해야 할지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 그것은 총책임자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내일까지 끝내라고 하면 밤을 새서라도 오늘 일을 끝마쳐야 하고, A를 하고 있는데 B를 먼저 끝내라고 하면 하던 일을 접고 B를 해야 한다. 주말에도 꼼짝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니 그 스트레스가 어떻게 건강을 해치지 않겠는가.
이처럼 자기 결정권은 사람의 건강과 행복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는 한 양로원을 상대로 재미있는 연구를 했는데, 노인들에게 일상의 사소한 일을 직접 결정하고 관리하게 했다. 그결과 삶에 대해 한결 만족스러운 태도를 보였으며 동시에 사망률이 반으로 줄었다.
0~3세 아이를 둔 엄마들이 힘들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를 나는 이 연구 결과들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예측 불가능한 일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그래서 24시간 내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런 날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생각해 보라. 어쩌면 미치지 않고 살아 있는 것만도 천만다행인지 모른다.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라
0~3세 아이를 둔 엄마들, 특히 첫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한결같이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정말 끝날까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다잡고 이렇게 말한다. “딱 3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참으세요.”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엄마 자신의 욕구를 완전히 제쳐놓고 아이만을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하지만 그 고통은 3년이면 끝난다. 어쩌면 2년 안에 끝날 수도 있다. 아무리 늦어도 3년만 지나면 아이는 스스로 작은 일상들을 처리해 나간다. 무엇보다 아이가 세 돌쯤 되면 말이 통하기 때문에 훨씬 돌보기가 수월해진다.
그러나 그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아이 돌보기를 외면하거나 우울증에 빠져 버리면 아이는 아이대로 병이 나고, 엄마는 엄마대로 더 불행해진다. 도둑질하기, 거짓말하기, 떼쓰기, 때리고 도망가기 등 부모를 속 터지게 만드는 아이들의 모든 행동은 첫 3년 동안 잘 돌보지 못해서 생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3년을 잘 견디면서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 낸다면 두 가지를 얻는다. 하나는 부모라는 이름이 주는 헌신의 기쁨과 행복이고, 또 하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고 헤쳐 나갈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다. 그것은 3년 동안 자신을 낮추는 경험을 온전히 해낸 부모에게만 주어지는 값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