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성이 읽고 밑줄 긋다]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창비, 2011

흐물흐물한 ‘늙음’에 데인 것처럼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두 권의 소설집만으로 한국문단의 차세대 대표작가로 떠오른 김애란.

김애란 씨는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표현하고 싶은데 미처 못 하는 것을 포착하고 묘사하는 능력이 비상하다. 김윤식 문학평론가는 “일상을 꿰뚫는 민첩성, 기발한 상상력, 탄력있는 문체로 익살스럽고 따뜻하고 돌발적이면서도 친근함을 준다”고 평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사랑에 대한 반짝이는 통찰이 돋보인다.

p.132~135

[……]
“어? 아냐, 아냐. 그럼 이번에는 다른 걸 물어볼게……늙는다는 건 어떤 기분이니?”
“………”
어머니와 나는 서로를 빤히 쳐다봤다. 승찬 아저씨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 아마 내 증상과,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묻는다는 게 잘못된 표현으로 튀어나온 듯했다.
“그럼, 젊다는 건 어떤 기분인데요?”
“어?”
작가 누나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예요. 저는 제가 젊었을 때 기억이 없거든요.”
그녀는 콧잔등의 땀을 한번 닦아낸 뒤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어, 글쎄, 나도……잘 모르겠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저도 그래요.”
작가 누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근데……이런 말씀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병원에서 어떤 누나 둘이 하는 대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어요. 이제 막 스물하나? 아님 셋 정도 됐을까? 여하튼 그중 한 명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서 친구한테 뭔 고백 같은 걸 하더라고요. 그렇게 작은 목소리가 어떨 땐 더 선명하게 들린다는 것도 모르고.”
“뭐라 그랬는데?”
“교수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교수?”
“네, 전공이 뭔지, 결혼을 한 분인지 아닌지 그런 것은 모르지만, 그 누나보다 나이가 두세 배는 많은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어요.”
나는 세 사람이 내 얘기를 들으며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쟤가 무슨 엄청난 얘길 하려 저러나 조마조마해 하는 게 틀림없었다.
“사귀는 건 아니고, 누나 혼자 오랫동안 존경하고 짝사랑한 모양인데, 우연히 그 선생님이랑 살짝 스킨십을 하게 된 얘기를 하더라고요, 친구한테.”
이윽고 거실의 분위기는 말할 수 없이 어색해졌다. 어머니는 대체 쟤가 왜 저러나 하는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그랬는데?”
작가 누나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놀랐다고.”
“……….”
“술에 취해 우연찮게 한 손으로 그분 뺨을 만졌는데,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분 볼에 자기 손이 닿자마자 화들짝 놀랐다고 했어요.”
“왜?”
“너무 흐물흐물해서.”
“아……”
어디선가 괴로움에 가까운 탄성이 조그맣게 흘러나왔다. 곁에 있던 승찬 아저씨가 내는 소리였다.
“보는 거랑 만지는 거랑 달랐나봐요. 지금도 그 누나가 한 말이 또렷이 기억나요. ‘데인 것처럼……’ 맞아, ‘늙음’에 데인 것처럼 놀랐다고 했어요. 자기도 모르게. 그러곤 그날 이후로 더이상 그 선생님이 남자로 보이지 않게 됐대요.”
주위엔 일순 알 수 없는 정적이 돌았다.
“그런데 누나.”
“응?”
“저는 잘 이해가 안돼요.”
“뭐가?”
“나이 든 사람 피부에 탄력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렇지.”
“머리가 세는 것도, 이가 빠지고, 눈이 나빠지고, 주름이 느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래.”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다면서, 그 짧은 접촉 한번에, 마치 늙음이 자기에게 옮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정색하고 돌아설 정도면, 그 여자가 상상한 늙음이란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
“………”
“저는 아직도 그걸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생각을 하면, 어느 땐 한없이 슬퍼져요.”
“………”
그때까지 잠자코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작가 누나가 애써 밝게 받아쳤다.
“그래도 아름이는 열일곱살이잖아.”
“응, 맞아요. 여기서 제가 제일 어리죠?”
“그럼.”
“그래도 아마 이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을걸요?”
“무슨 뜻이야?”
“너무 아플 때는요, 우리 엄만 그걸 ‘지랄발광’이라 하는데, 그럴때면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져요. 일분이 한 시간 같고, 어느 때는 영원 같고. 그런 하루를 계속 살아왔잖아요, 저. 그러니까 주관적인 시간으로만 따지면 내가 아저씨나 누나보다 더 산 거예요.”
그렇게 말해놓고 왠지 머쓱해 나는 ‘하아’하고 웃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하나도 웃지 않았다.

[……]

p.156~160

[……]

촬영이 재개됐다. 작가 누나는 물을 한모금 마시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어머님 말씀으론 정확한 병명을 안 게 네살 때라고 하시던데요?”
“네.”
작가 누나가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는 아까보다 기가 빠져 보였다.
“괜찮다면 그때 얘기를 좀 해주시겠어요?”
“언제요?”
“아름이가 아프단 걸 처음 알게 되셨을 때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오랜 침묵으로 사람들을 긴장시키더니, 속으로 뭔가 결정한 듯 천천히 입을 뗐다.
“아, 그날 일이라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작가 누나가 다소 기대 어린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었다.
“네.”
“봄이었는데, 골목에서 추어탕 냄새가 나더라고요.”
승찬 아저씨 낯빛에 살짝 불안한 기운이 스쳤다. 하지만 아버지는 조금 전과 달리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예, 그날요. 그렇게 큰 병원은 처음 가보는 거라 애 엄마도 저도 잔뜩 긴장했었어요. 초행길은 그 자체로 엄청 피곤하잖아요. 길도 모르고, 병원 구조도 복잡하고,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시끄럽고. 그래도 동네 병원서 일년 돼도 모르던 걸 서울서 알았어요. 알고도 믿지 못했죠. 그래서 처음엔 별 느낌이 없었어요.”
“그러셨어요?”
“네, 내가 뭘 느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름인 옆에서 계속 침 흘리며 종알거리고. 일단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점심때가 됐으니 애 밥을 먹여야겠다는 거였어요.”
작가 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계속하세요.”
“애 엄마랑 병원을 나와서 밥집을 찾다, 그냥 근처에 있는 추어탕집에 갔어요. 신을 벗고 들어가는 데였는데, 우리가 좀 늦게 왔는지 손님이 거의 없더라고요. 그데 옆에 어린 아기랑 젊은 부부 한 쌍이 있었어요. 애가 기는 걸 보니까 한살쯤 된 거 같았는데, 이쁘더라고요, 통통해가지고.”
“………”
“예전엔 어린애들 보면 그냥 애구나 했는데, 낳고 보니까, 저만큼 키우는 데 얼마나 씻기고 입히고 먹였을지, 얼마나 혼났을 지가 다 보이더라고요. 아가씨도 시집가면 아마 그럴 거예요.”
작가 누나가 조그맣게 웃었다.
“네.”
“부모 얼굴을 보니까 애한테 홀딱 빠져 있더라고요. 멀찍이서 애한테 자꾸 컵 굴리고, 애가 컵을 밀어내면 다시 주워 또르르르 굴리고. 그렇게 계속 장난치며 웃더라고요.”
나는 아버지가 왜 내 얘기는 않고 딴 아이 얘기만 자꾸 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생각보다 아버지가 말을 잘한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어른이었구나, 우리 아버지……’
승찬 아저씨도 그때서야 조금 안심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계속 말을 이었다.
“아름 엄마랑 저는 검사결과도 있고 해서, 별말 없이 음식만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아름이는 수족관에 코를 박고 있고. 평소처럼 쓸데없는 질문 막 해대고. 근데 자꾸 신경쓰여, 옆에 가. 이상하더라고.”
“왜요? 아버님?”
“그게, 우리도 나중에 알았는데, 그 부부가 말을 못하더라고요. 한참 뒤 둘이 수화하는 거 보고 나서야 알았어요.”
“아……”
“그리고 그때 알았어. 애 아버지가 왜 자꾸 애한테 컵을 굴렸는지.”
카메라 주위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작가 누나가 적극적으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 것 같으셨는데요……?”
“말을 걸고 싶었던 거지. 얼마나 부르고 싶겠어, 자기 애 이름을. 내가 그 농아 부부였대도 불러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살면서 한 번이라도, 소리내서 말이에요. 그때그때 반응해주고. 이야기도 하고. 애기 땐 더 하지. 안 그렇겠어요? 애들은 자기 이름 듣고 자라는데.”
작가 누나는 긍정하듯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다 곧 주문한 음식이 나왔어요. 우리 식구는 묵묵히 밥을 먹었고요. 그리고……그게 다예요.”
“네?”
“아름이 병을 처음 안 날, 어땠냐고 물어봤잖아요. 그때 생각하면 이상하게 다른 건 잘 모르겠고, 그냥 우리 옆에서 조용히 병 굴리던 남자 모습이 떠올라요. 우리가 더 낫다는 안도감도 아니고, 무슨 동질감 같은 것도 아니었는데, 지워지지가 않더라고요. 어쨌든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그게 답니다.”
작가 누나는 좀 당황한 듯했다.
“아버님 말씀은……”
아버지는 서둘러 말을 잘랐다.
“근데 이거 편집하면 안되나요?
“왜요, 아버님?”
“아니, 그냥 내가 생각하기에도 쓸데없는 말 같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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