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루키]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 정직성 화가

큰 키에 생각많은 모범생 같은 정직성 작가.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14일까지 그의 작품전이 열린다.

김종영미술관이 선정한 ‘2012년 오늘의 작가’ 정직성(36 본명 정혜정) 화가. 조각전문 미술관인 김종영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회화 분야의 작가를 선정해 의미가 남다르다.

김종영미술관 이지희 학예사는 “정직성씨는 건축적 구조를 드러내고 있는 회화 작가 중 탄탄한 조형성을 바탕으로 단단한 자기세계를 구축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작가”라고 말했다.

2008년작 신림동 연립주택. 집 위에 집이 있는 서울의 빼곡한 주택가를 건축물 구조와 형태로 재배열해 전면에 배치하는 그의 그림은 후기 입체파의 모습처럼 보는 사람들의 뇌에 공감각적 영역을 자극한다.

박이소가 부른 ‘어니스티’ 번역곡에서 이름 따

5월30일 김종영미술관에서 만난 정직성 씨는 이름처럼 정직해 보였다. 정직성이란 가명은 설치미술가 故박이소 작가가 빌리 조엘의 ‘어니스티(Honesty)’를 번역해 ‘정직성’이라고 부른 노래에서 따왔다고 했다.

“포럼A라는?웹사이트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단어 하나하나가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어요. 나중에 만나면 ‘내가 당신의 노래를 듣고 장난삼아 이름을 바꿨노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일찍 가셨어요.”

정 작가가 그림에 대해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5살 무렵. 거울 너머 보이는 고야의 다큐멘터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화가 고야를 다룬 다큐멘터리였어요. 시리즈로 방영됐던 것 같은데 ‘거인’이란 그림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어머니가 TV를 못 보게 해 거울을 통해 훔쳐봤는데, 그림들이 거꾸로 보이잖아요? 그래서인지 더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2009년 작품. 박혜성 서울대 학예연구사는 "기계는 무정형 구축의 매커니즘에 대한 작가의 긍정적인 시선과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무질서에의 확신과 고집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5살 때 고야의 ‘거인’ 보고 그림에 관심 생겨

이후 외삼촌이 사준 화집을 보고 학원도 다니며 그림에 더욱 흥미를 느꼈다. 평범한 집안의 아이였던 정 작가는 본격적으로 미술을 전공하고 싶어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잣집 아이들이 많이 다닌다는 선화예중고를 들어갔다.

“반 아이들과 제가 쓰는 색깔도 차이가 나더라고요. 중간 톤의 색깔을 쓰는데 참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경제적 차이가 문화적 차이를 만드는구나. 계급에 따라 선호하는 색깔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됐죠.”

계급에 대한 인식은 대학교에 오면서 더욱 심화됐다. 계급차이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 그림에 대한 회의도 오기 시작했다. 그림이 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신동아에서 한 보도사진을 접하면서 사진이 그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학년 때까지 사진에 빠져 살았죠. 당시 역사, 사회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재개발 현장에 출사도 자주 다녔고요. 졸업할 때가 가까이 오니까 그래도 그림이 내 전공인데 계속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어요. 또 그림으로도 충분히 이 사회를 향해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죠.”

정직성 화가의 최근 작품. 김종영미술관 이지희 학예사는 "삶의 불확정성에 대한 수용을 선 형 색의 유기적인 흐름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고 평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향해 질문 던지는 그림

그는 서울 망원동, 신림동 등 연립주택가, 기계, 재개발 건축 현장, 항만 등 늘 지나가며 보면서도?관심 갖지 않던 공간에 주목한다. 이해하기 쉽거나 일반적 의미의 예쁜 그림은 아니다. 그 안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확대하거나 재구성해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볼 것을 권유하는, ‘개념 회화’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 참여 작가로 볼 수 있다.

“가끔 제 그림들이 사회비판적으로만 독해돼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건물들이 그렇게 지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 어지럽게 쌓여있는 적재물 속 질서, 긍정적 가치의 훼손 등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형식적인 면에서는 선, 면, 색깔, 구도 등 순수 회화 요소를 다루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작품에서는 흘리기, 뿌리기, 겹치기 등의 새로운 기법으로 작품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이 사회의 마지막 감각기관으로 문화적 발언을 끊임없이 해나겠다는 그는 “예술가들의 활동이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라며 “베짱이의 노래도 가치 있음을 인정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현재 서울대와 서울여대에 출강하며 ‘공간의 문제와 추상의 관계’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작품 활동은 영은 아티스트 레지던시 8기로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에서 하고 있다.

2008년 <기계>, 2009년 <정직성 전>, 2010년 <가로지르고, 멈춘다>, 2011 <흐르는 기계>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 신진예술가 성장프로그램지원 선정, 2009년?63스카이아트미술관 New Artist Project 신진작가 선정, 2012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 지원 프로그램에?선정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경기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제주도미술관과 신세계백화점, 현대자동차 등의 기업체에 소장돼 있다.

P.S. 정직성 작가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독자는 그의 블로그(http://honesty.egloos.com)를 방문해 볼 것을 권한다. 2004년부터 읽은 책과 그 속의 밑줄 그은 내용을 볼 수 있고, 그에게 영향을 미친 철학 에세이, 논문 등을 볼 수 있다. 남다른 시선으로 찍은 정감어린 사진과 담담한 일기는 가슴 찡하다.


그의 이름에 영향 준 박이소 씨의?’정직성(HONESTY)’ 가사 전문

따스함을 찾기는 어렵지 않아. 그냥 사랑하며 살면 돼.
진실을 찾는다면 그건 힘든 일이야. 너무나 찾기 힘든 바로 그것.
정직성, 정말 외로운 그 말. 더러운 세상에서.
어니스티, 너무 듣기 힘든 말. 너에게 듣고픈 그 말.
그 누군가는 나에게 이해한다고. 내 진심을 보여 줄 때만.
그럴듯한 말하는 그럴듯한 얼굴. 그 누구를 믿어야 하나.
정직성, 정말 외로운 그 말, 혼탁한 이 세상에서.
어니스티, 너무 듣기 힘든 말. 너에게 듣고픈 그 말.
사랑을 찾아서, 친구를 찾아. 안정을 찾아도 끝내는 헛된 것.
달콤한 약속으로 날 편하게 해도. 난 알아, 난 알고 있어.
깊은 생각에 잠길 땐 모른 채 해줘. 많은 것을 기대하진 않겠어.
내가 진실을 찾을 때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너만 내게 말할 수 있어.
정직성, 정말 외로운 그 말. 더러운 세상에서.
어니스티, 너무 듣기 힘든 말. 너에게 듣고픈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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