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성이 읽고 밑줄 긋다] “일상적인 폭력, 드러나지 않았다”

‘레이첼 커스크’ 장편소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친구에게 선물 받아 읽고 있는 소설. 살면서 문득문득 들었던 생각들과 절망감, 적나라한 상황들이 섬뜩하리만치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읽으면서도, 읽은 후에도 마음이 허하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첼 커스크 장편소설, 김현우 옮김, 민음사, 2006

p.55~56
그녀의 혈관 안에 매일 조금씩 납덩이가 쌓이기 시작했다. 자신이 장을 보지 않으면 집 안에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바나비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베네딕트가 다시 직장에 나가 버리고 자신이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리해야 할 집안일들이 너무 많아서, 베네딕트에게 부탁하느니 직접 하는 것이 더 편하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일에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그런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땐 그녀도 많이 놀랐고 거의 분노를 느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정의에 따르면 그런 일상적인 폭력의 흔적은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이고 가족들도 알아차려야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p.60
예컨대 에디와 보내야 하는 금요일 같은 시간들이 혼자서 힘들게 치워야 하는 길에 놓인 돌덩어리 같은 시간이었다면 자동차 안에서는 시간이 저 멀리서 흘러가는 것 같았다.

p.150
나갔다 들어오고, 나갔다 들어오는 생활, 솔리의 전동믹서처럼 같은 자리에서 회전하는 남편에 맞춰 그녀 자신은 거품처럼 점점 더 부풀어 갔다. 솔리는 자신을 멈추게 해 줄 한계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녀는 혈연관계에만 파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전에 자신과 세상 사이의 경계를 확인하고 싶었다.

p.177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삶의 여정이란. 밤낮으로 흔들리며 멈추지도 못하고, 의미도 모른 채 그저 이렇게 매달린 채 가야 하는, 절대 놓쳐 버릴 수 없는 여행길이었다.

p.225
…그녀가 튀지 않고 평범하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피는 사람들 같았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메이지는 세상이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그렇게 삶이라는 감옥에 갇혀 버린 것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면 오래된 과거에서 비롯된 용암처럼 뜨거운 감정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그 감정은-뜨겁고, 밝고, 단 몇 초 만에 단단하게 응고하는 감정이었다.-어느 순간 갑자기, 그녀의 본질을 향해 곧장 말을 걸어왔다.

p.241
가족이란, 정말 위험한 것이었다. 가족은 흐린 날의 망망대해처럼 혼란스러웠다. 오락가락하는 믿음이 있고, 잔인함과 미덕이 교차하고, 감정과 도덕이 요동치는 곳, 끊임없이 폭풍우와 고요함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미친 듯이 폭우가 내리다가 다시 햇살이 비치면 결국 둘 사이의 차이를 잊어버리게 되고,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무엇이 되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결국엔 그저 살아남는 것, 헤치고 나가는 것만 중요할 뿐이다.

p.277
돌을 다듬어 기초를 다지는 건 왜 항상 그녀여야만 하는 걸까? 언제쯤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쯤 사는 게 고된 노동이라는 느낌, 자신이 없으면 알링턴파크의 하늘이 무너지고, 거리가 어둠에 휩싸이고, 거기에 있는 집들이 다시 이름 없는 황무지로 되돌아갈 것만 같은 이상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p.295~296
지금은 그녀를 이런 상황에 빠지게 만든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냥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계속 같은 자리만 맴돌며 절대 그 궤도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지내다가 어느 순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마주치면, 그땐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그땐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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