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성이 읽고 밑줄 긋다] 바람의 화원
문체가 가벼워 후딱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소설.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설정은 과도한 것같지만, 그림을 수수께끼 풀듯 읽어내는 후원자의 감식안이나 그림에서 제자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는 스승의 아이러니한 심정같은 것들이 실감나게 묘사돼 있다.
무엇보다도 같은 주제를 다르게 그린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들이 풍성하게 수록돼 있어?보는 즐거움이 솔솔.
아래는 김홍도와 신윤복이 나눈?가상의 대화 중 일부. 실체의 혼이니 하는 부분은 좀 낯간지럽긴 하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발췌.
<2권 p26~27>?
“그때의 일을 모두 다시 기억하라 하는 것이냐?”
“기억은 왜곡되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선 기억을 통해 진실에 접근해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벽에 비친 그림자를 그림으로써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림자와 실체 생도청에 있을 때 너는 그림자놀이를 즐겼지.”
그때 계절은 초여름이었고, 햇살이 가위로 오린 것처럼 교당 안으로 비쳐들고 있었다. 모든 생도들이 수묵 실습에 빠져 있을 때, 아이는 저 혼자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에 손가락과 붓, 연적을 이리저리 움직여 그림자를 만들었다. 홍도는 기억을 되새기며 질문을 던졌다.
“넌 어째서 그림을 그리라는 화선지에 쓸데없는 그림자만 비추었더냐?”
“종이 위에 그린 그림은 사물의 실체가 아니라 화인의 눈을 통해 비치는 상을 그리는 것일 뿐이니 그 또한 그림자가 아닙니까?”
“화인은 보이는 것을 그리는 사람이다. 비치는 상이 아니라 그 실체를 말이다.”
“실체를 그릴 수 있는 화인은 없습니다. 단지 눈으로 보고, 마음에 비친 상을 종이에 옮길 뿐이지요. 화인의 눈을 통과하는 순간, 실체는 그리고자 하는 화인의 욕망에 투영된 그림자가 될 뿐입니다. 그러니 화인이 아무리 있는 그대로를 그리려 해도 그것은 이미 실체가 아닙니다.”
“그러면 고도로 정교하여 털 한오라기도 다름이 없는 인물화는 어떻게 된 일이냐?”
“화인의 손으로 그려진 그림은 실체의 그림자일 뿐이니 아무리 정확한 초상도 껍데기일 뿐입니다.”
“그러면 화인은 영원히 실체를 그릴 수 없다는 것이냐?”
“다만 그 실체의 그림자를 그릴 수 있으니, 그림자를 보아서 실체를 짐작할 뿐입니다.”
“해괴하다. 실재하는 대상을 어찌 그릴 수 없다 하는가?”
“화인이 그리는 것은 실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식된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면 존재하는 모든 것이 허상이란 말인가?”
“존재하는 대상은 실상이지만, 우리가 눈으로 인식하는 대상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빛을 받은 물체가 종이 위에 그림자로 비치듯, 실체가 우리의 경험과 생각을 통해 투사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화인은 어떻게 실체를 그림 속에 발현시킬 수 있느냐?”
“뛰어난 화인은 그림자를 통해 실체의 혼이 엿보이게 합니다. 인간의 눈은 너무도 불완전하여 보고도 못 보는 것이 많고, 보지 않은 것도 본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므로 뛰어난 화인은 불완전한 눈으로 보이지 않는 실체의 정수를 담아내는 것입니다.”
“그림자를 보아서 그 실체의 혼을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