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성이 읽고 밑줄 긋다] “네 인생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 맡기지 말라”

김연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너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 대통령 선거에 함몰된 대한민국. 그 속에 사는 우리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묻고 있는 김연수 작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장편소설, 문학동네, 2007

p.116~124

1991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나는 서울 시내를 하염없이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말고사를 보기 위해 학교까지 갔다가 좀체 교문 안으로 들어갈 마음이 생기지 않아 학교 앞 OB케이브에서 오백 시시 생맥주를 두 잔 연거푸 들이켠 뒤, 무작정 학교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그 다음날에도 그런 일이 반복되더니 결국에는 매일같이 서울의 변두리 골목을 걸어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걷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서울이라곤 그저 학교 부근과 중심가뿐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는 그때까지도 서울이 얼마나 큰 도시인지,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 북적대며 살아가는지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내 두 발을 통해 새롭게 발견한 서울이 넓고도 큰 도시라는 사실은 당시의 내게는 정말 다행한 일이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나는 얼마든지 걸어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 종일 걸어다녀도, 며칠 동안 걸어다녀도 서울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사당동, 북가좌동, 신길동, 왕십리, 방배동, 정릉, 미아동, 갈현동, 목동, 화양리, 신림동 등 나는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키는 대로’라고 했지만, 거기에도 원칙은 하나 있었다. 신촌과 퇴계로와 종로 등 중심가만은 늘 등을 지고 걸어야 했다. 부득이하게 그런 곳을 지나쳐야 할 경우에는 늘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문득 보게 되는 ‘신촌’이라든가, ‘종로3가’, 혹은 ‘충무로’ 따위의 지명이 나오면 눈을 감았다.

그러면 보이는 것은 오직 어둠뿐이었으나, 그 어둠이 내게는 차라리 나았다. 그곳들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았다. 그건 지도가 필요한 도보여행이 아니었으므로, 또 시간을 정해두고 집 근처를 걷다가 돌아오는 산책도 아니어서 한참 걸어간 뒤에야 거기가 어디인지 알게 된다거나, 푸른색 도로표지판을 보고서야 바로 옆동네를 며칠 전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수없이 많았다.

그 일을 통해 나는 서울이 얼마나 낯선 도시인지 알게 됐다. 물론 이방인에게는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모든 대도시가 낯설다.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대학 진학과 함께 서울에 올라온 내게 한없이 이어지는 변두리 골목길이 익숙할 리 없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낯섦이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예컨대 그렇게 걷기 시작한 지 닷새쯤 지났을 때였다. 하루 종이 걸어다니다가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낮은 언덕길로 접어들었는데, 그 길의 좌우로는 똑같은 모양의 붉은 벽돌 다세대주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걸어오면서 몇 번 상가 계단이나 공원 벤치에 앉아서 쉬었음에도 발바닥은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일렬로 늘어선 다세대주택들을 바라보니 다시 내 하숙방이 있는 학교 근처까지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거기쯤 이르자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언덕을 다 내려와 오른쪽으로 난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 언젠가 후배들을 이끌고 한번 가본 적이 있다고 생각한 식당에서 순댓국밥과 소주를 시켜 먹었다. 처음에는 허겁지겁 순댓국밥을 먹었으나, 순댓국밥은 생각보다 훨씬 양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소주는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나는 어스름이 시장 골목 구석구석까지 호비작거릴 때까지 혼자서 소주 두 병을 비웠다. 세병째 소주를 시키자, 주인아줌마가 너무 취해서 안된다며 소주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제가 취한 건 아는데요. 제가 집이 진짜 가깝거든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금방 들어가서 자면 돼요.”
“그래도 안 돼. 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그렇게 술이나 퍼마시면 쓰나.”
탁자에 놓인 빈 소주병을 들고 주방 쪽으로 걸어가는 주인아줌마를 향해 내가 소리쳤다.
“하지만 어떡해요? 순대가 너무 많이 남았잖아요. 이것 봐요. 아깝잖아요. 아직 두 병은 더 먹을 수 있는 순대란 말예요.”
“아이구, 참. 순대가 소주 마시나? 순대 남는다고 소주 먹는 인간은 이날 이때까지 학생이 처음이네. 순대에 맞춰서 소주를 마실게 아니라, 소주에 맞춰서 순대를 먹으면 됐잖아. 옷 찢어졌는데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 내일 학교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지. 어여 남은 순대 다 먹고 들어가. 객지 생활은 자기가 하는 것 같아도 밥이 하는 거니까.”
“팍 엎어지면 코 닿는 데가 학굔데, 아줌마가 무슨 상관이에요? 아줌마가 우리 엄마라도 돼요? 빨리 소주나 주세요.”
탁자 위에 엎어지는 시늉을 하면서 내가 말했다.
“저 정신머리하고는. 학교가 코앞이긴 무슨 코앞이야. 여기서 차 타고 한 시간은 가야겠구만.”
“지금 제 마음이 그래요. 코앞에 있는 학교 간다고 집 나온 지가 벌써 닷새째인데, 아직 강의실 구경도 못 했어요. 그러니까 딱 한 병만. 소주 딱 한 병만 주세요.”
“코앞이긴 개코가 코앞이냐고!”

그때까지도 나는 그 아줌마가 하는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참 딴소리를 늘어놓은 뒤에야 거기가 내 자취방이 있는 동네가 아니라 면목동이며, 그 식당은 내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 순간, 술이 다 깨는 것 같았다. 나는 몇 번이고 여기가 정말 면목동이 맞느냐고 아줌마에게 되묻다가 엄청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식당 밖으로 나와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어 다니다가 대로로 나가 표지판을 본 뒤에야 나는 거기가 정말 면목동이고, 내가 사는 학교 근처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거리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 그건 내가 하루 종일 멍한 정신으로 걸어 다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울의 변두리가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서울이 낯선 도시라는 걸 알게 됐다는 건 그 풍경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꿈속을 걸어 다니는 것과 같았다는 뜻이었다. 걸어 다니면 걸어 다닐수록 그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반소매를 입고 초록 그늘이 드리워진 남산 소월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추적추적 비 내리는 어스름에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줄지어 영동대교를 건너가는 자동차들과, 왕십리 어느 분식집 한쪽 낡은 14인치 TV화면에 등장하던 정치인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낯설어 걸음을 멈추고 망연자실 빤히 쳐다보는 일이 잦았다. 그 모든 것들이 언젠가 내가 보았던 꿈속의 풍경처럼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길을 걸어가거나, 아이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거나, 좌판에 들어붙은 파리들을 파리채로 내리치거나, 견고한 콘크리트 바닥을 향해 곡괭이질을 하거나, 먼지 낀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내뿜거나, 버스 손잡이를 움켜잡은 채 차창 밖을 멍하니 내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나처럼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건 너무나 분명했지만, 나는 그 사실이 좀체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걸어 다니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들을 붙잡고 “당신들, 정말 살아 있느냐? 정말 살아 있는 사람이 맞느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는 ‘지하를 거점으로 서울을 장악하라’는 슬로건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괴물과 같았다. 매순간 서울이라는 이 거대한 괴물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필사적으로 행동해야 했다. 모든 순간은 마지막 순간과도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우리는 삶과 죽음이 서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됐다. 거리에서. 다시 말하자면 가두에서. 그러니까 폭죽처럼 지랄탄이 터져나던 가두에서. 백골단에 쫓겨 정신없이 달려가던 퇴계로 어딘가 좁은 골목길에서. 백병원 바리케이드 너머로 보이던 그 새벽의 불길한 어둠에서. 우리는 그 누구라도 그 어느 곳에서든 죽을 수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죽음보다도 더 우연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해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 혹은 타의에 의해 생명을 잃었다. 학생들이 죽어갈 때마다 사람들은 그건 노태우 정권의 공안통치가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라고 떠들어댔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누구보다도 큰 목소리로 손을 흔들어가며 외쳤다. 누구라도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죽은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필연적인 결과에 비하면 내가 살아남은 건 너무나 우연에 가까웠다. 그 죽음이 필연이라고 떠들어대면 떠들어댈수록 내 삶은 점점 더 우연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가장 먼저 삶과 죽음이 서로 그 자리를 바꿨고, 그 다음에는 정의와 불의가, 진실과 거짓이, 꿈과 현실이 서로 뒤엉키기 시작했다.

김지하의 글과 박홍의 기자회견으로 시작된 그 혼란은 유서대필사건으로 절정에 이르더니 결국 정원식 총리를 향한 계란과 밀가루 투척사건으로 완결됐다. 그 모든 과정이 나만 모르고 있었던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과정에 개입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있는 곳과는 시간이나 공간이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라는 고전적 물음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그 모든 것은 나와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움직이는 유리창 저편의 세계처럼 보였다. 마치 반대편으로 움직이는 기차 속에 탄 사람들을 바라볼 때처럼. 거기에는 내가 관여할 정의와 불의도, 진실과 거짓도, 꿈과 현실도, 삶과 죽음도 없었다. 그건 전적으로 그들의 문제,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의 문제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골목들을 헤매고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화양리 일대를 걸어가다가 들어간 한 서점에서 신간서적을 들춰보다가 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어라. 그 반석이란 네가 스스로 말살시킨 고유의 천성이며, 자식에 대한 사랑이고, 아내의 사랑에 대한 꿈이며, 네가 열여섯 살 때 가졌던 인생에 대한 꿈이다. 너의 환상들을 약간의 진실과 바꾸어라. 너의 정치인과 외교관들을 짐을 꾸려 떠나보내라. 이웃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데, 올바르게 생각하고 주의를 부드럽게 환기시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

그제야 나는 그즈음 내가 공들여 지어온 집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반석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 순간 알게 되었단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자각은 그해 6월, 나를 향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차게 밀려들던 우울(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나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우울이 아니라 한 시대 전체가 느끼던 거대한 우울이었던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그 우울은 너무나 컸다)로부터 나를 구해냈다. 나를 구한 건 “자기 자신이 되어라”라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인생은 자기 자신이 지배하는 것이다. 너의 인생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라.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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