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성이 읽고 밑줄 긋다]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황인숙(시인) 저, 문학과지성사 2003.12.11

황인숙의시집 <자명한 산책> 중 ‘강’?

김형경 소설가의 에세이집 ‘사람풍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황인숙 시인은 표면적으로는 초연하고 관대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꽤나 많은 의존적인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외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등을 하소연하는 대상이 되었던 모양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한 영화잡지 편집자로 일하는 또 다른 친구가 이 시에 크게 공감한 듯 시 전문을 ‘편집자의 말’에 인용해둔 것을 보았다. 그 친구도 그릇이 크고 세상의 갈등이나 통념들을 훌쩍 넘어선 사람처럼 보인다. 의존성에 대해 생각하면 이 시가 떠오르고, 덩달아 그 두 사람이 떠오르고, 그들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라캉은 정신분석의 끝에서 피면담자가 느끼는 감정에 ‘고립무원의 느낌’이 있다고 했다. ‘아무한테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느낌. 그것이 바로 의존성이 극복되는 지점, 우리가 진정으로 독립할 때 갖는 느낌이 아닐까.

강?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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