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성이 읽고 밑줄 긋다] ‘소설 속, 공간산책’
<소설 속, 공간산책>은 소설 속에 나오는 공간묘사들을 발췌하고, 그 묘사와 관련된 공간에 대해 지은이가 건축공학자의 입장에서 간단히 해설한 얇은 책이다.
해설부분은 고만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에 발췌된 소설들의 공간묘사 중 일부는 매우 생생하였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해서, 이 책에 발췌된 공간묘사들 중 특히 나의 관심을 끈 부분들만 다시 발췌하여 탭을 붙여 보았다. 특히 연립주택을 묘사한 윤성희의 ‘이 방에 살던 여자는 누구였을까(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 소설)’의 부분은 내가 ‘신림동-연립주택’ 그림을 그릴 때 생각했던 것과 놀랍도록 흡사했다.
연립주택 : 윤성희, 레고로 만든 집, 민음사, 2001년 9월, 33~36 페이지.
…그림자를 삼켜버린 또 다른 그림자를 만난 다음에야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구겨진 도화지로 만든 집처럼 볼 품 없이 서있는 연립주택의 그림자였다. 과자 따위를 담아두었던 상자들을 겹겹이 쌓아놓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연립주택은 흠씬 비라도 내리면 물에 젖어 녹아 내려갈 듯 위태로웠다. 쳐다만 보아도 눈 안으로 하늘이 옮겨올 것 같은 맑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내 마음의 티끌 하나가, 그것이 정말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곤 했다. 그래서, 너무 파래서 저게 과연 하늘일까, 의문이 드는 오늘 같은 날 나는 나를 잊으려 한다. 이름이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인지. 그 비워진 공간만큼 나는 행복해지곤 했다. 텅 빈 마음속으로, 긴 세월을 살아 잔뜩 주름이 지고 만 연립주택이 무심히 끼여들었다.
강선배가 일러준 408호 앞에서 나는 숨을 한 번 가다듬었다. 초인종은 없었다. 약간 낡긴 했지만 사는 덴 별 지장이 없는 곳이라고 그녀가 말했을 때 나는 종달새 울음소리가 나는 초인종을 떠올렸었다…
집은 15평이 채 안돼 보였다. 방은 두 개였다. 작은 방은 현관을 들어서면서 왼편에 위치해 있고, 큰 방은 부엌을 마주보고 있다. 딱히 거실이라 부를 공간은 없었으나, 큰 방의 미닫이문을 열어두면 부엌까지 한 공간으로 이어져 거실이 되었다. 강 선배는 집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했다. 뜨거운 물이 잘 안나오니까 될 수 있으면 목욕은 목욕탕에 가서 해. 머리를 감거나 설거지할 정도의 온수는 나오니까 너무 걱정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