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성이 읽고 밑줄긋다] “욕망의 목표는 소유 아닌 대상의 변화”

모든 것을 소중히 하라, 존 버거, 김우룡 역, 열화당, 2008

존 버거의 ‘모든것을 소중히하라’

이 책은 ‘생존과 정의에 관한 긴급보고서’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중동 이슈의 중심을 차지하는 팔레스타인에서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멀리 떨어진 이곳의 삶은 조금 더 나은가. 2012년 절망스러웠다면, 2013년 희망이 있어야하지 않겠나. 모든 것을 소중히 하기를.

p.12~13
오늘날, 정의에 대한 욕구는 아주 다양한 방면에 걸쳐 있다. 따라서 부정의에 대한, 생존과 자존을 위한, 그리고 인권을 위한 투쟁은, 눈앞의 요구사항이나 조직만을 고려하거나 또 그것이 가져올 역사적 결과물만을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 투쟁들은 ‘운동’의 차원으로 축소될 수 없다. 운동이란,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그것이 성취되든 못 되든 집단적으로 움직여 나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운동’이란 단어 속에서 고려되지 않거나 무시되고 있는 것은, 엄격히 말해 그 운동 자체보다는 덜 중요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에서 비롯된 그 헤아릴 수 없는 개인적인 것들, 이를테면 개개인이 맞게 되는 선택, 만남, 각성, 희생, 새로운 욕망, 슬픔 들이며 그런 후 이윽고 남게 되는 기억들이다.

운동은 먼 미래에 쟁취될 승리를 약속한다. 반면, 사소한 순간들에 이루어지는 소박한 행동은 그때그때의 성취를 약속한다. 삶을 고무하면서, 때로는 삶의 비극적인 면을 들추면서, 자유를 향한 경험이 구체적으로 행동화하는 때가 바로 그 순간들이다. (행동화하지 않는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순간들은 인간의 통상적 이해를 뛰어넘어 초월적이며 -공식적인 역사적 ‘결과물’은 결코 이렇게 될 수 없다.-, 스피노자가 이름한 영원성을 지니고 있으며, 또 그 순간들은 저 광대한 우주의 별들만큼이나 아주 다양하다.

모든 욕망이 다 자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유란 하나의 욕망이 인정받고 선택되고 추구되는 과정과 경험에 다름 아니다. 욕망의 목표는 대상에 대한 소유가 결코 아니다. 욕망의 목표는 대상의 변화다. 욕망은 바라는 것이다. 바로 지금 바라는 것이다. 그 바람에의 성취가 모두 자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는 그 바람이 지고(至高)함을 확인해 준다.

p.29
사람은 여러 순간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발견되는 어떤 시간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 시간이란 ‘되어 있음’ 이전에 존재하는 ‘되어 감’의 시간이다. 그런 ‘되어 감’의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패배를 모르는 절망에 거듭 맞서야만 하는 위험을 무릅쓰게 한다.

p.50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분리시켜 놓은 여러 ‘영역’들을 한데 묶어서 볼 수 있는, 영역 제휴적 시각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그런 시각은 반드시 정치적(이 말의 원래의 뜻으로)이기 마련이다. 이러한 정치적 사고를 지구적 단위로 하기 위해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불필요한 고통들을 통합적으로 보는 일이 그 전제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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