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⑨] 유다양, 드레이크 해적단 벗어나 ‘이슬람해적선’ 항해사로

제2부 유다양 7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오후의 길어진 태양이 서산으로 넘어가기를 머뭇거리는 찰나에 스페인 요새의 탑 꼭대기에는 드레이크 해적의 깃발이 휘날렸다. 그러나 도시와 요새 안 곳곳에 쌓아 두었던 보물들을 25척의 해적선에 옮겨 싣는 데는 꼬박 일주일이나 걸렸다.

드레이크 해적단의 성공적인 스페인 식민지 약탈로 인해 스페인 은행과 베네치아 은행이 파산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격분한 스페인 황제 펠리페 2세가 보복을 천명하여 전쟁을 준비하자 오히려 드레이크는 스페인을 선제공격하여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을 공격하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물자를 파괴해 버렸다.

이로써 스페인의 영국침공이 1년이나 미뤄지게 되었고, 1588년 드디어 스페인 황제의 무적함대가 영국을 침공하였으나 (교황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받음) 부제독으로 임명된 드레이크의 활약으로 무적함대는 참패당하고 말았다.

한편, 수에그라호에서 버림받은 유다양과 다섯 명의 여인들을 태운 종선從船은 조류에 떠밀려 카르타헤나 남쪽 기슭으로 흘러갔다. 여인들은 뭍에 오르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제 살길을 찾아 나섰고 그 후로 아무도 그들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숲속으로 기어서 들어간 유다양은 찢어지고 터진 온 몸의 상처를 아무 잎사귀나 무작정 뜯어 붙였는데, 운이 좋았던지 얼마 후에 덫도 나지 않고 나았다. 그러나 등짝에 여러 갈래로 난 채찍 자국은 평생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유다양은 결코 남들 앞에서 자신의 알몸, 특히 등짝을 내보이지 않고 숨겼다. 그리고 그 때, 드레이크를 흠모하던 마음은 깨끗이 지워버렸다.

그 후 몇 년간 유다양은 캐리비안 해역에서 숨어 다니며 노략질을 일삼던 조무래기 이슬람 해적들과 합류했다. 해적들과 함께 상선과 해안 도시들을 약탈하면서도 항해사로서의 경력을 쌓고 있던 유다양은 전투에는 앞장서지 않고 눈치껏 뒤에 숨어 있다가 전세가 확실히 유리해 질 때에만 슬며시 나와 싸우는 척 했다. 그러나 전리품을 수집하고 분배할 때엔 항상 앞장서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습격에 성공했을 때마다 수많은 끔찍한 만행(살인, 강도, 강간)을 저질렀지만, 몇 차례는 실패하여 모아둔 재물을 모조리 빼앗긴 채 죽기 살기로 도망다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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