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퀴아오 선수! “당신이 진정한 승자, 꿈을 주는 영웅입니다”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왼쪽)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에 회심의 주먹을 날리고 있다.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왼쪽)가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에 회심의 주먹을 날리고 있다. <사진=AP>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파퀴아오 선수,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메이웨더와의 미국 경기 후 이틀이 지난 오늘?이미 평소 모습으로 돌아와 있겠지요?

당신은?메이웨더에게 경기에선 분명 패했습니다. 심판 3명이 모두 그의 손을 들어줬고 당신은 깨끗이 승복했습니다. 이번 경기 전까지 당신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우리 아시아엔에서 1년 이상 연재한 당신의 조국 필리핀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 ‘HaniShip’ 문종구 대표가 쓴 <필리핀 바로알기>를 통해서입니다.

언론들은 당신과 메이웨더와의 경기를 앞두고 ‘세기의 대결’이라고 하더니 경기 후엔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들 보도한 곳도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당신들의 경기는 세기의 대결이었고, 또 시합은 내내 밋밋했습니다.

그러나 경기는 잠시지만, 여운은 오래 남는 법. 당신은 진정한 승리가 무언지 세계인들에게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바로 당신이 대전료로 받은 1000억원 가운데 절반을 사회에 기부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예전에 나온 당신에 관한 언론보도나 블로그를 보고 나는 “역시 파퀴아오다운 결정이야”라고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의 경기를 위성 중계방송으로 지켜보고 있는 필리핀 마닐라 마리키나의 어린이들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38·미국)와 매니 파퀴아오(37·필리핀)의 경기를 위성 중계방송으로 지켜보고 있는 필리핀 마닐라 마리키나의 어린이들 <사진=AP/뉴시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청소년기 온갖 고생을 다한 당신얼굴에서 그늘진 구석을 찾을 수 없는 이유를 나는 오늘 아침 찾아냈습니다. 전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부호들과 하루 한끼도 제대로 못 먹는 가난한 이들이 공존하는 당신의 조국에서 당신이 가장 많은 세금을 낸다는 보도가 한국신문에서 나왔더군요. 지난 3월 한국의 한 경제신문은 “최근 필리핀 국세청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2013년 개인 납세자 순위에 따르면 파퀴아오가 2013년 한 해 동안 납부한 세금은 총 1억6384만페소(약 40억원)로 필리핀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2위(후아니토 알칸타라, 사업가)와의 납세액 격차가 무려 15억원이 날 정도로 그가 낸 세금은 독보적이었다.”

물론 당신은 2008, 2009년 번 22억페소(543억원)에 대한 소득세와 관련해 “미국정부에 세금을 냈으며 미국과 필리핀은 이중과세 방지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필리핀 정부에 추가로 낼 의무가 없다”며 필리핀 국세청과 맞서고 있더군요. 만일 필리핀 조세당국 주장대로 당신이 탈세를 했다면 이번에 번 돈을 사회에 기부하는 대신 납세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보다 상식에 부합하겠지요.

파퀴아오씨.

당신은 2007년 고향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했지만 지역정치 가문출신인 달레네 안토니오 쿠스토디오에게 패한 후 3년 뒤 32살 나이로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의 고향인 사랑가니 지역구에서 당선됐더군요. 극심한 빈부격차와 일부 가톨릭 사제들의 내세관 중심의 오도된 가르침에 순응하며 체념의 일상을 살아가는 필리핀 국민들에게 거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Isumbong Mo Kay Tulfo” (IMKT)의 로잘린 기자가 전해주더군요. 저는 15명의 기자들로 구성된 IMKT를 ‘필리핀 로빈훗기자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파퀴아오 선수.

당신은 경기에선 졌지만 진정한 승자입니다. 6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 한국에도 복싱 세계챔피언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헝그리정신’(hungry spirit)으로 경기에 임하면서 국민들, 특히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꿈을 심어줬습니다.

지금 당신은 스티브 잡스가 평소 즐겨 쓰던 대로 앞으로도 오랜 동안 ‘Stay Hungry!’ 하리라 믿습니다.

당신이 처음 권투장갑을 끼고 링에 오르던 순간처럼.

파키아오씨.

당신에 대해 한국에 가장 자세하게 소개한 글 중에 하나인 문종구 대표의 글 전문을 아래에 붙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15년 5월6일

아시아엔 발행인 이상기 드림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필리핀 사람들은 복싱에 열광한다. 마니 파키아오(Manny Pacquiao)는 필리핀의 대표적인 복싱 영웅이다. 그는 플라이급, 수퍼밴텀급, 페더급, 수퍼페더급, 라이트급, 라이트웰터급, 웰터급, 라이트미들급 등 8개급 챔피언을 따냈다. 2006년, 2008년, 2009년엔 세계 권위의 복싱연맹과 복싱매체로부터 ‘세계 최고의 복서’로, 2000년과 2010년에는 ’10년 주기로 선정하는 최고의 복서(Fighter of the Decade for the 2000s)’로 이름을 올렸다.

민다나오섬의 부키드논(Bukidnon)에서 1978년 태어난 그는 가난하여 고등학교(한국의 중학교)를 중퇴하고 15살 때인 1993년 고향을 떠나 마닐라로 옮겨와 노숙을 하였다. 국가에서 숙박비를 지원해주는 필리핀 아마복싱팀에 합류하여 복싱을 시작했으며, 아마추어 전적은 60승4패를 기록했다. 2007년 고교 검정고시에 패스한 후 대학에 진학하였으며, 하원의원으로서의 경력을 준비하기 위해 몇몇 대학의 연수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다.

2007년 고향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했으나 지역정치 가문출신인 달레네 안토니오 쿠스토디오(Darlene Antonino Custodio, 당시 34살 여성)에게 패했다. 당시 당선인은 부친이 그 지역구에서 3선을 했던 정치가문 출신이었기에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던 파키아오로서도 지역 정치권력의 벽을 못 넘었다. 그러나 2010년 32살 나이로 정치권력의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아내의 고향 사랑가니(Sarangani) 지역구에서 출마해 무난히 당선되었다.

그는 17살 되던 1995년 프로로 전향해 차트차이 사사쿨(Chatchai Sasakul)을 상대로 8회 KO승. WBC 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2001년 렐로호놀로 레드와바(Lehlohonolo Ledwaba) 상대로 KO승 해 IBF 수퍼 밴텀급 챔피언, 2003년 마르코 안토니오 바레르(Marco Antonio Barrer) 상대 11회 KO로 이겨 페더급 챔피언이 됐다.

이어 그는 2004년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 상대(Juan Manuel Marquez) 상대로 판정승을 거둬 WBA와 IBF 페더급 챔피언, 2005년 9월, 헥토르 벨라스케스(H?ctorVel?zquez)를 6회 KO로 이겨 WBC 수퍼페더급 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30살 되던 2008년 12월, 오스카 델라 호야(6체급 세계챔피언)와의 ‘꿈의 대결(Dream Match)’에서 8회 TKO로 이겨 복싱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1700만달러의 대전료를 챙겼으며 2009년 5월, 리키 해튼(RickyHatton) 상대로 2회 KO승을 거두며 복싱 사상 두 번째로 6체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듬해 11월엔 미구엘 코토(Miguel Cotto)에게 12회 TKO승을 하며 복싱 역사상 최초로 7체급 챔피언과 WBC 다이아몬드 챔피온 벨트를 받았다. 복싱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2010년 7월엔 안토니오 마르가리타에게 판정승하며 복싱 사상 처음으로 8체급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이후 2011년 5월과 11월, 셰인 모슬리(Shane Mosley)와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2세(Juan Manuel Marquez II)에게 판정승하며 챔피언 벨트를 유지했다.

하원의원 겸 불멸의 복서 마니 파키아오는 지금 필리핀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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