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대통령, 필리핀 상류층의 부패·부도덕과 ‘전쟁 불사’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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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거주 사업가] 필리핀 지배층들 사이의 세력 및 권력 다툼은 이국인으로 눈으로 보면 그야말로 살벌하기 짝이 없다. 대표적인 몇 사례를 소개한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검사와 바기오 시장을 지내며 이같은 장면을 수없이 목도해 왔다. 그의 마약과의 전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파딜랴(Moises Padilla)와 락손(Rafael Lacson)의 대결

경찰이 지방 정부의 통제 아래(under the sway)에 있던 시기인 1951년, 파딜랴는 시장 후보를 철회하라는 경쟁 후보 측(주지사 락손의 측근)의 요구와 살해 위협을 무시하고 그 해 11월 예정된 Magallon 시장선거에 출마했다. 선거가 끝난 이틀 후 (개표가 끝나는 데까지 보통 한 달 가량 걸린다) 파딜랴는 락손 측 경찰과 사병들에게 일방적으로 체포되어 구금되고 고문당했다.

이튿날 일단의 파딜랴 측 경찰과 사병들이 구치소에 도착하였으나 락손 측 경찰과 사병 수에 압도되어 파딜랴를 구출하지 못하고 철수하였고, 그 날 오후 구타와 고문 끝에 사살되었다. 부검 결과 15발의 총상을 입고 살해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당시 파딜랴는 20여명의 경찰과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던데 비해 락손은 1000명 이상의 경찰과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다.

?라모스(Ramos)와 미트라(Ramon Mitra)의 권력 투쟁

코라손 아퀴노 정권 말기, 1992년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집권 여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아퀴노 대통령이 지지하는 라모스 당시 국방장관이 미트라 당시 하원 의장에게 패배했다. 라모스는 탈당하여 새로운 당을 만들어 대통령 출마를 고수했고 아퀴노 대통령도 여당을 탈당하며 라모스 지지를 선언했다. 8명 이상의 대통령 후보들이 출마한 상태에서 여론 조사에서는 줄곧 미트라 후보가 앞서고 있던 어느 날, 정부 소유의 인쇄소에서 미트라 후보의 홍보물을 인쇄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라모스 후보 측이 한밤중에 다수의 중무장한 군인, 경찰, 사병들을 언론인들과 함께 인쇄소에 침입시켜 증거물을 압수하였다.

다음 날 아침 미트라 후보의 불법 행위는 신문과 방송에 대서특필 하였다. 당시 미트라 후보 측에서는 라모스 후보 측의 무력 행위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였으나 충돌을 회피하였다 하고, 이는 미트라의 나약함과 라모스의 강인함을 극명하게 대비시켰다 한다. 이 사건으로 미트라 후보 측에 있던 대다수의 지배층들이 라모스 후보 쪽으로 돌아섰고 결국 라모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큰 요인이 되었다.

?Joson family 대 Perez

Eduardo L. Joson은 일본 점령기에 게릴라 부대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필리핀이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1959년부터 1992년까지 마닐라 북쪽 Nueva Ecija 주에서 33년간이나 주지사로 재직하며 그 지역을 통치하였다. 그 주에서는 최고 권력자이자 필리핀 역사상 최장기 집권 정치인이었다. Nueva Ecija 주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농경 중심의 지역이다.

1992년 아버지 Joson이 물러나고 난 뒤, 장남 Tomas Joson이 주지사직에 당선되었다. 아버지 Joson은, 젊은 시절에 보좌관 중 한 명인 Honorato Perez의 부인을 첩으로 삼고, Perez는 대신 새 부인(Bing)과 동거하게 되었으며, 아버지 Joson의 배려 하에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Cabanatuan 시의 시장으로 1980년 이후 줄곧 당선되어 정치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벌어진 일들을 열거하면 필리핀 상류층간 세력다툼의 실상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1980년, 대낮에 Cabanatuan 시청에 중무장한 괴한들 침입하여 청사에 불을 질러 9명이 사망하고 십 수 명이 부상당하였다. Perez 시장은 화장실 창문을 통해 탈출하였다.

2)1990년, 11월 30일, 아버지 Joson의 막내아들이자 Cabanatuan시 부시장이었던 34살 Eduardo Danding Joson이 암살 되었다. 주요 용의자(A)는 사건 2주 전에 암살당한 Perez 시장의 보좌관 Alex Quibuyen의 아들이었으나 검거하지 못하고 용의자(A)는 잠적하였다. 살해된 부시장은 당시 Cabanatuan시의 노숙자들을 거리 청소원으로 고용하는 등 여러 가지 정책을 시도하였었는데 시민들의 인기가 높아져서 다음번 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당선될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었다.

3)1995년 4월, Perez 시장, 여당(라모스 정권)의 공천으로 장남 Joson의 주지사직에 도전 하였다. 선거 16일 전인 4월 22일 토요일 오후, Tomas Joson 주지사와 보좌진들, 수십 명의 군인, 경찰로 이루어진 선거 유세 차량들이 고속도로에서 용의자(A)를 붙잡았다. Perez시장(주지사 후보)과 병력이 A의 도움 요청으로 현장에 도착했고, 양측 병력은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였다.

장남인 Tomas Joson 주지사와 Perez 시장이 고속도로 한 가운데에서 설전을 벌이다 갑자기 Joson 주지사가 Perez 시장과 경호원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Perez 시장과 경호원은 각각 열 발 이상의 총탄을 맞고 즉사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총격 후 Joson 주지사가 “이것은 Boss들끼리의 문제이니 너희들은 관여 말라!”고 선언하여 양측은 교전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4)4월23일, 주지사 Joson은 재판을 받겠다며 스스로 주 구치소에 들어갔다. 라모스 정권은, Joson 가문의 영향력 하에 있는 그 주에서는 공정한 재판이 이뤄질 수 없다며 대법원의 유권 해석을 받아 Joson 주지사를 마닐라에서 재판받도록 하기 위해 4월 25일 장갑차를 포함한 200여 명의 중무장한 경찰 병력을 파견하였다.

주 측의 검사, 판사, 변호사 및 Joson 지지자들은 주청사를 에워싸고 법대로 사건 관할구역인 Neuva Ecija 주에서 재판 받아 야 한다며 시위하였으나 Joson 주지사는 마닐라에서 재판받겠다며 호송에 반대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스스로 호송 장갑차에 탑승하였다.(당시 필자의 비서 여동생이 주청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문에 보도되지 않았던 내막들까지 비교적 소상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5)주지사 후보 두 명중 여당 후보는 살해되고 재선에 도전한 한명은 마닐라 구치소에 수감되자, 살해된 Perez의 동거인 아내 Bing Perez가 여당의 공천을 받아 상복을 입은 채 출마했고, Joson 주지사의 또 한명의 남동생 Endo Joson이 하원 의원 출마를 접고 형 대신 주지사에 대타로 출마하였다. 5월 8일 선거에서 Joson의 동생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6)1998년 에스트라다 대통령 당선 후 장남 Tomas Joson은 사면되고 재판은 기각 처리되었다. 사면된 후 Tomas Joson은 1998년도부터 2007년까지 주지사를 역임하였다. Joson의 동생들과 사촌들은 그 주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도시와 지역들의 시장, 하원 의원, 군수 등에 당선되어 큰 위세를 떨쳤다.

7)2007년 이 주에서 두 번 하원 의원에 당선된 바 있는 Aurelio Umali가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현재 이 주에서는 세 가문이 세력 다툼 중이다. 즉 Joson family(10명의 정치인 포함. 하원 의원, 시장, 군수 등), Violago family(3명의 정치인 포함. 하원 의원, 시장 등), Umali family(2명의 정치인 포함, 현 주지사, 하원 의원 등)이 그들이다.

? Maguindanao 학살

2009년 11월 23일, 민다나오 섬의 남쪽에 위치한 Maguindanao주에서 발생한 학살사건으로 Maguindano 주는 이슬람교도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며 경제적으로 심하게 낙후된 지역이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주지사 Andal Ampatuan Sr.는 EDSA 시민 혁명 후 아퀴노 대통령으로부터 민다나오 남부의 책임자로 임명된 후 유명해졌고, 1998년 도지사 선거에 당선된 이후 이 지역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해왔다. 아로요 대통령 재임기간(2001~2010) 동안에는 민다나오 섬에서 대통령의 중요한 정치적 협력자로서 활약했으며, 주지사직을 3번 이상 연임할 수 없는 법 규정 때문에 마지막 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예정이었고, 그의 아들이 주지사직에 당선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Datu Unsay 시장(Andal Ampatuan Jr. 주지사 아들로 아로요 대통령의 집권 여당 소속)과 Buluan 부시장(Esmael Mangudadatu, 아로요 대통령의 집권 여당 소속)이 등장하는 사건이다.

1)2010년 5월 10일 예정된 주지사 선거에서 주지사의 아들 Ampatuan Jr.와 Mangudadatu 경쟁하였다. 두 사람 모두 집권 여당 소속이었기에 세번의 회합을 갖고 조정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2009년 11월 23일 오전 9시 경, Mangudadatu 일행들이 주지사 선거에 후보 등록하러 가는 길에 주지사 측이 보낸 100여 명의 무장 세력들에게 납치당하여 58명이 살해되었다. 피해자 중에는 Mangudadatu의 부인과 두 명의 여동생, 변호사, 34명의 언론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섯 명의 여성 피해자들(네 명의 언론인과 한 명의 지지자)은 살해되기 전에 강간당하고 Mangudadatu의 막내 여동생과 이모는 임신 중인 상태에서 참수되었다 한다. 학살 후 시체와 피해자들의 차량들을 함께 매장하였는데, 매장하는 구덩이는 사건 발생 이틀 전에 주정부 소유의 중장비를 동원하여 미리 파두었다는 게 후일 조사 과정에서 밝혀졌다.

maguindanao 학살 희생자 발굴 현장

2)2010년 11월 26일, Ampatuan Jr.는 검찰에 출두하여 자신은 관련이 없고 이슬람 반군 소행이라고 주장하였다. 집권 여당은 Ampatuan의 가족들을 제명하였다. 11월 27일, Mangudadatu는 50여 대의 무장 차량 호위를 받으며 주지사 후보 등록하였다. 12월 4일, 아로요대통령, Maguindanao 지역에 대해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계엄군은 Ampatuan이 소유한 창고를 급습하여 장갑차와 여러 종류의 중화기, 총기, 수십만 발의 탄약을 압수하였다.

3)12월 13일, 계엄령은?해제됐으나 검찰은 Ampatuan Sr.(주지사)와 아들을 포함하여 198명을 기소하였다. 상원 의원 Joker Arroyo는 200여명의 피고인들과 300여 명의 목격자들에 대한 재판을 마치려면 200년은 걸릴 것이라고 하고, 검사 Harry Rogue는 최소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4)2010년 5월10일 주지사 선거에서 Esmael Mangudadatu이 당선되었다. 2010년 11월16일, 이번의 학살 사건 이전에도 Amptuan family가 지난 20년 동안 약 56명을 살해했거나 살해에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하였다.(국제 비정부 인권위에서 발표) 선거 관련 대형 사건들 중 언론에 보도 된 것 두 가지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2007년 6월 7일 밤, 마닐라 남쪽 바탕가스의 Taysan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교사를 포함하여 개표 감시 요원 등이 당일 개표 작업을 마치고 투표함을 지키고 있는데 무장 괴한들이 난입하여 총기를 난사하고 투표함에 휘발유를 끼얹어 방화하였다. 이 사건으로 3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하였으며 학교는 전소했다. (5월 14일 선거가 끝났으나 개표 작업에는 보통 한 달가량 소요됨). 사건 다음날 그 마을의 경찰관 두 명이 포함된 용의자들 중 일부를 체포하였다. 선거 개표 결과에 불리한 후보측에서 방화를 지시했다 한다. 경찰 집계에 의하면 2007년도의 총선에서는 130명 이상이 선거 관련하여 살해되었다 한다.

Hello Garci 스캔들(대통령의 선거 조작 의혹) 역시 필리핀 현대사에서 오점으로 기록될 사건이다.?2001년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밀어내고 당시 아로요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이어 받았는데 필리핀 헌법에서는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2004년도에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 아로요 대통령이 출마할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논란이 있었으나, 아로요는 대통령직에 출마하여 당선된 적이 없다는 논리를 고수하며 출마하게 되었었다. 개표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아로요 대통령이 선거 관리 위원장에게 전화하여 선거 결과를 조작하라는 지시를 하는 내용이 도청되어 선거가 끝난 1년 뒤 2005년 6월 언론에 공개되었다. 전화에서 아로요 대통령이 선거 관리위원장 Virgilio Garcillano(‘Garci’)에게 선거 조작을 지시하고 확인하는 통화 내용에 빗대어 Hello Garci 스캔들이라 불리었다.

“Hello? Hello? Hello Garci? So, will I still lead by more than 1M(million)?”
언론에 이 통화 내용이 진실로 밝혀지자 아로요 대통령은 “자신이 그런 협의를 한 것은 맞는데 선관위원장이 선거 결과를 조작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고 둘러대었고, 그 다음 날 한동안 잠적했던 선관위 위원장이 기자 회견을 자청하여 “대통령과 그런 통화를 한 것은 맞지만, 나는 선거 조작 같은 짓을 한 적이 없다.”라고 혐의를 부정했다. 비평가들은 당시 선거에서 아로요 대통령이 전자 투표 부정을 비롯하여 재래적인 수법의 부정 선거를 광범위하게 저질러서 당선되었다고 비난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당선 무효를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침묵하였고, 아로요 대통령과 여당 측에서는 통화자의 허락 없이 녹음한 통화기록이나 도청은 위법이므로 증거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야당 측에서는 탄핵을 준비했지만 선거 결과 조작으로 이득을 보았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여당 측의 방해로 무산되었다. 아로요는 부통령으로 당선된 2년 후 에스트라다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고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4년과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6년 동안, 총 10년 간 집권한 후 2010년 물러났다.

속임수와 거짓말은 가라오케보다 빠르게 이 나라 어디든 확산되고 있다. 결국, 협박에 대한 대중들의 경계와 선관위에 대한 분노가 없다면 속임수를 막을 수단들은 전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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