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1986시민혁명’의 씁쓸한 뒷모습②
1986년 2월24일, 정부군과 혁명군 간에 간헐적인 교전이 시작되었지만 엔릴레, 라모스, RAM 지도자들의 설득으로 혁명군에 합류하는 병사들이 계속 증가하였다. 오후 늦게 아퀴노 여사가 시위현장에 도착했다. 그 무렵, 마르코스가 대통령궁을 떠났다는 소식이 시위현장에 전해지자 환호의 물결이 이어졌다. 1986년 2월25일 오전, 코라손 아퀴노 대통령 취임식이 정식으로 거행됐다. 취임식장 밖에서는 시민들의 환호와 노래 Bayan Ko가 울려 퍼졌고, 시내 일부에서는 마르코스에 충성하는 군인들과 혁명군들 간에 간헐적인 총격전이 벌어졌다.
오후 3시, 미 백악관과 상의한 후 마르코스 일가는 미군 헬기로 Angeles시에 있는 미 공군기지로 이동하였고, 그날 저녁 미군 비행기로 Guam으로 이동한 후 다음날 하와이에 도착했다. 미국 CBS방송국 뉴스진행자 Bob Simon은 “우리 미국인들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쳤다고 생각하길 좋아한다. 오늘밤 그들(필리핀 사람들)이 온 세계를 가르치고 있다.”(“We Americans like to think we taught the Filipinos democracy. Well, tonight they are teaching the world.”) 하지만 시민혁명을 통해 등장한 아퀴노 집권기간 의 문제점들도 많이 드러났다.
?6번의 쿠데타가 발생하여 외국인들의 투자심리를 극도로 위축시켰다.
?부유한 친인척과 상류층 친구들을 등용하여 집권층의 부와 권력이 집중되었고, 빈부격차가 확대되자 공산 반군과 이슬람 반군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350여 공기업에 특혜를 베풀며 집권층과 친인척들에게 매각하였다.
?전력수요 예측과 전력관리에 실패하여 집권 하반기인 1992년에는 전국적으로 정전사태를 겪었으며 수도권에도 일년 동안 거의 매일 8~10시간 정전사태가 벌어졌다.
?집권기간 내내 연평균 3.8%의 저조한 경제성장률과 15% 이상의 높은 인플레이션, 10% 이상의 실업률을 기록하여, 마르코스 시절의 정치, 사회, 문화가 거의 개선되지 못한 상태에서 경제부문에서조차 혁명으로 쫓겨난 마르코스정권보다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필리핀의 일부 지식인들의 자조 섞인 대화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마르코스 시절에는 탐욕스러운 한 마리의 거대한 악어가 우리를 괴롭혔는데, 마르코스를 쫓아내고 나니 똑같이 탐욕스러운 여러 마리의 작은 악어들이 우리들 삶을 여전히 힘들게 하고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하나의 큰 권력이 무너진 뒤에 찾아오는 것은 남은 세력들끼리의 단결이 아니라 작은 권력들로 분열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는 마르코스라는 독재자가 사라지자 그때까지 강력한 존재에 묶여있던 작은 지배세력들은 정권교체 시기마다 이합집산하며 자기들끼리 계속해서 부와 권력을 나눠 가지게 되었다. 마르코스가 1989년 9월 하와이에서 지병으로 사망한 후 미망인(이멜다)과 자식들이 필리핀 정부로부터 사면받아 필리핀으로 돌아왔다.
이멜다는 1992년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5번째로 많은 득표(약 234만표)를 획득했으며, 1995년 총선에서는 외아들 Bongbong Marcos와 함께 출마하여 이멜다는 자신의 고향에서, 아들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고향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다. 2010년 총선에서는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고향에서 도지사로 출마한 아들 대신 출마하여, 이멜다는 하원의원에, 아들 봉봉 마르코스는 도지사에 각각 당선되었다. 과거 독재자의 아내와 자식에 대한 고향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 현상을 보고 한국인들은 혀를 내두를 것이다. 하지만 각 지역의 유력한 지배층들은 서민들에게 (스페인 식민시대 이래로 지금까지 대대로 세습되어 오는) 영주 또는 왕이나 다름없다. 필리핀의 영웅 호세 리잘이 “노예가 없는 곳에 독재자는 존재할 수 없다”(There are no dictators where there are no slaves.)’고 했는데, 노예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수많은 서민들이 ‘왕의 귀환(the Return of the King)’에 열렬히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과 비교했을 때, 한국도 우수한 민족이 아니라는 외국인들의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3대째 독재자에 충성하고 있거나 저항하지 못 하는 노예 수준의 한국 민족이 북한에 존재하고 있고, 개발독재자의 자녀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한국 민족이 남한에도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든 필리핀 사람이든, 전제군주(왕)와 같은 독재적 권위 아래에서 안락함과 행복감을 더 느끼는 사람들은, 200여년 전 계몽주의시대 이전 또는 조선시대의 평민과 노비 수준으로 되돌아가 버린, 타인의 지도 없이는 살 수 없는 비이성적이고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