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③] 달호의 거짓 사랑놀음에 걸려든 바기오 출신 여대생 ‘리나’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송 회장 마음에 쏙 들어갔음을 감지한 달후는 사업 아이템을 제안할 수 있는 적당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송 회장이 하고 있던 일들은 속임수와 폭력이 가미된 어두운 그늘 속의 사업들뿐이었다. 재산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모아 두었겠다, 이제는 명함에 근사하게 드러낼 수 있는 떳떳한 사업이 하나쯤 있었으면 했다.

기대를 걸었던 기장군의 토지개발건도 쉽게 추진하지 못한 채 주저하고 있었다.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송 회장을 꼬드겨 해외로 나가기로 했다. 해외 사업을 한다면, 어두운 곳에서만 돈벌이를 하고 있는 송 회장이 느끼기에도 뭔가 근사할 것이고, 뒷골목에서 양아치 행세를 하면서 늙어버린 건달 친구들로부터도 국제적으로 노는 송 회장은 부러움과 존경을 받을 것이다.

김영삼 정권 시절이던 당시는 많은 국민들이 해외로 싸돌아다니며 외화를 낭비하던 시기였다. 심지어 유치원생들까지 외국으로 소풍을 다니며 돈지랄을 해 대었다. 갑자기 쌓인 부를 외국에 과시하고 싶었던 정권이 외화 소비를 부추기기도 했다. 그때 송 회장은 63살의 기혼자였고, 달후는 29살의 미혼자였다.

6월 중순 어느 날 밤, 진로그룹에 이어 한신공영그룹도 부도가 났다는 소식에 나라가 뒤숭숭하던 때 달후는 송 회장의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송 회장은 친하게 지내는 경찰과 함께 초저녁부터 술을 마셔서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다. 그가 백미러로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있는 송 회장의 표정을 살피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저, 회장님! 친구 하나가 지금 마닐라에 있는데요, 좋은 사업 아이템을 발견했다고 얼마 전에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게 뭔지 살펴도 볼 겸해서 잠시 바람 쐬러 다녀오시면 어떨까요?”

백미러에서 송 회장이 눈을 번쩍 떴다.

“어떤 사업?”

“한국의 중고차를 수입해서 팔면 대박이라고 합니다. 필리핀은 폐차제도가 없고, 워낙 후진국이라 한국 차 인기가 아주 좋다고 하네요.”

“그래? 그럼 당장 가자! 비용은 나한테 맡기고, 일정 잡아!”

달후는 송 회장의 호탕한 성격이 맘에 들었다.

6월 말, 마닐라에 도착한 송 회장과 달후를 승호가 반갑게 맞았다.

이튿날부터 승호는 그가 일하고 있던 어학원에 휴가를 내고 매일 송 회장과 달후의 가이드가 되었다. 그들이 체류하는 일주일 동안 중고차 수입판매와 정비소에 대한 시장조사는 단 이틀 만에 끝내 버렸다. 왜냐하면 15년차 연식의 고물차가 무려 15만 페소에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거의 400만 원이었는데, 한국에서는 100만 원에도 팔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폐차하기 위해 돈을 지불해야 할 것 같은 차량들이었다. 그러한 폐차들을 수입하여 적당히 수리할 정비소만 차려놓으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일정의 나머지 닷새는 바기오와 라오뉴온 해변, 헌드레드 아일랜드에 놀러 다녔다. 일정의 마지막 날 저녁, 세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두 시간에 걸쳐 사업계획을 짰다. 매달 200대의 중고차 수입과 판매를 목표로 삼은 그들의 사업 계획서는 온통 장밋빛 색깔로 도배되었고, 사업은 이미 성공하여 몇 년 후 그들 모두 갑부가 되었다. 송 회장은 주체할 수 없이 불어나는 재산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통령수출훈장을 받는 꿈을 꾸었고, 부산 시내 모든 건달들이 그를 대부로 모시는 몽상에 젖기까지 했다.

기분이 거나해진 그들은 술집에 가서 각자 아가씨 두 명씩을 골라 양 옆구리에 끼고서 성공 축하주를 마셔 댔다. 필리핀 아가씨들은 언제 누구에게 배웠는지 송 회장에게 팁을 받을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고 송 회장의 지갑에서 현금이 절반으로 줄어들 즈음에는 여섯 명 아가씨 모두 알몸이 되어 테이블 위에 올라가 춤을 추었다.

남국의 작부들은 돈에 환장했고, 성공에 만취한 세 명의 대한 건아健兒들은 그녀들이 따라주는 계곡주에 환호하며 광분했다. 그렇게 마닐라의 밤은 깊어갔다.

그로부터 보름 후, 달후가 다시 마닐라로 들어왔다. 그는 이미 기장군청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송 회장이 약속한 사업추진자금 1억 원 중에서 천만 원을 소지하고 있었다. 승호도 어학원을 그만두었다. 두 사람은 당분간 승호의 허름한 자취방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적당한 정비소 부지를 물색하던 중, 퀘존의 락손 애비뉴 도로변에서 임대한다는 500제곱미터 크기의 정비소가 눈에 띄었다. 리프트, 콤프레샤, 도장, 판금장비 등은 저렴한 중고 가격으로 팔 수도 있다고 했다. 정비소 안에는 조그마한 사무실도 갖춰져 있어서 정비공들 몇 명만 고용하면 당장에라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기가 시작되어 며칠 동안 계속 흐린 날씨에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그들의 가슴 속은 밝고 뽀송뽀송하기만 했다.

“처음에는 이 정도 규모에서 시작하고 나중에 수입차가 늘면 그때 더 넓은 장소로 옮기면 되겠다.”

“그래. 네 덕분에 임대료와 장비를 싸게 흥정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지?”

“저 땅 주인과 계약을 하려면 회사부터 설립해야지. 그런데 필리핀에서 주식회사를 설립하려면 외국인 지분은 40%를 넘으면 안 되고, 주주들이 최소한 5명은 있어야 돼. 게다가 그 중 3명은 반드시 필리핀 사람이어야 하고. 필리핀 사람들은 믿을 수 없고 나중에 회사를 빼앗길 수 있으니 여자친구를 이용하면 좋아. 여자친구와 친척들의 명의를 빌리는 것이 제일 안전하거든. 그렇게 명의를 빌려주는 사람을 더미라고 부르는데, 필리핀에서 사업체를 경영하는 외국인들은 다 더미를 쓰고 있어.”

“그래? 만약 더미가 딴 맘 먹으면 어떻게 돼? 회사를 뺐기겠네?”

“그렇겠지. 그러니까 여자친구가 마음 바꿔먹지 않도록 몸을 섞어야지. 흐흐흐. 필리핀 여자들은 순진해서 한 번 몸을 주면 좀체 마음을 바꾸지 않아. 내 여자친구도 그렇고.”

“너한테 필리핀 여자친구가 있었어? 왜 진작 얘기 안 했어?”

“어학원에서 일하는 튜터야. 집에 일이 있다고 한 달간 세부에 갔어. 다음 주에 오면 인사시켜 줄게. 내 여자친구 하고 가족을 더미로 쓰면 돼.”

“아…… 그런데, 나도 여자친구 한 명 만들면 안 될까?”

두 사람은 매일 밤 술집을 돌아 다녔다. 이번에는 술 마시는 것이 목적이 아닌 달후의 여자친구를 물색하기 위해서였다. 승호가 자기 여자친구에게 부탁해서 적당한 아가씨를 찾아봐 주겠다고 했지만 달호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찾으면 보인다고 했던가. 8월 말, 착해 보이고 어여쁜 아가씨를 발견했다. 바기오의 어느 이름 모를 대학에 다니다 휴학한, 리나라는 이름의 열아홉 살 처녀였다. 이날은 공교롭게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면서 온 세계가 시끄러웠다.

리나의 고향 바기오는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6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만 하는 유명한 여름 휴양지다. 그곳의 재래시장에서 그녀의 부모는 조그마한 야채 좌판을 하면서 네 명의 어린 동생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부모의 벌이로는 생활이 안 되어 그녀가 술집에서 번 돈을 거의 모두 부모에게 보냈다. 그녀보다 네 살이 많은 언니는 경비원과 결혼하여 마닐라에서 살고 있었다.

승호의 조언을 받아가며 그는 작업에 들어갔다. 매일 초콜릿을 사들고 리나가 일하는 술집을 찾아갔다. 통닭이나 피자를 사들고 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항상 2차를 거부했다. 그에게만 그러나 싶어 마담에게 확인해보니 그녀가 손님들과 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도 만날 때마다 팁을 후하게 주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서서히 그녀가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순진하거나 멍청하거나 둘 중의 하나겠지만 더미이자 성적 노리개가 필요한 그에게는 아무래도 좋았다.

달후와 리나는 낮에 만나 함께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러 다녔다. 밤에는 그녀가 일하는 술집에 가서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그녀가 일하는 술집 앞에서 그는 거짓 사랑을 고백했고, 거짓 결혼을 약속했다. 그의 고백과 약속이 진심이라고 믿은 그녀가 입술을 허락했다. 그의 축축한 혀가 자두처럼 벌어진 그녀의 입술 사이로 슬며시 들어왔을 때,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듯 그녀의 혀가 재빨리 휘둘러 감았다. 그녀의 탱탱한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감지하자 욕정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느낀 그의 손이 바짝 죄어진 그녀의 넓적다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우산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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