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⑨] “박사장님 사모님 하고 지분의 30%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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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잠시 후, 인채는 직원이 받아 온 SEC 서류에서 마리셀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투자계약서에는 마리셀이 30%의 지분을 소유한 주주로 등기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는 넉 달이 지나도록 그 계약조건을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인채는 마리셀에게 대강의 문제점을 설명한 후 그녀의 친구로 하여금 바이어인 것처럼 행세하며 리나에게 접근하도록 했다.

이틀 후, 마리셀의 친구가 JD정비소에서 실제로 판매하는 중고차 가격을 알려왔다. 달후에게 속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인채는 통장에 남아있던 금액 중에서 최저 잔액인 만 페소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블루오즈 계좌로 이체했다.

8월 25일, 달후가 한국에 송금할 수표에 서명을 요청해 왔다. 그 수표를 들고 인채가 달후를 만나러 정비소를 찾아갔을 때에는 오후 4시경이었다.

“김 사장, 한동안 얼굴 보기 힘드네?”

불쑥 사무실로 들어서는 인채를 보자 그가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이쿠, 형님! 어서 오십시요. 연락을 하고 오시지 그랬어요…… 미리 맛있는 과일이라도 좀 준비할 걸…… 하하하!”

“뭐 우리가 미리 약속을 해야만 만날 수 있는 그런 사이는 아니라고 보네만…… 급히 상의할 게 있어서 왔네.”

인채가 소파에 앉자 그도 자리를 옮겨 건너편 소파에 마주보며 앉았다. 리나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왔다.

“우리 가게에 급한 일이 생겨서 어제 통장에 있던 잔액을 옮겼네. 그래서 오늘 한국에 송금할 돈이 없네.”

달후는 순간 당황했다.

“네? 그러면 안 되는데…… 송금날짜를 어기면 안 된다고요.”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우리 투자계약서에는 분기별로 재정보고를 나한테 하기로 되어 있잖은가. 그런데 벌써 다섯 달이 다 되어 가도록 아직까지 한 번도 보고 받은 적 없었네.”

그 말을 듣자 달후가 어색한 미소를 띠웠다. 그는 인채의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

“그거야 형님도 보시다시피 저희가 몹시 바쁘지 않습니까! 리나 혼자서 경리 보랴, 영업하랴, 정비소 관리하랴…… 이달 말경에는 보고해 드리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네. 이달 말이면 다음 주 월요일이니 내가 오전 10시경에 여기로 다시 오겠네. 재정보고서 검토하고 나서 점심을 함께하세.”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님!”

“마지막으로, 리나 명의로 되어 있는 지분 중에서 30%를 내 아내 명의로 등기하기로 한 것은 어떻게 되었나?”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그가 허리를 펴고 몸을 뒤로 쭉 젖혔다. 그건 듣고 싶지 않은 불쾌한 질문이었다.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갑자기 머리를 돌려 리나에게 꽥 소리를 질렀다.

“리나! SEC에 박 사장님 사모님 이름으로 등기하라고 시킨 것 아직까지 안 된 거야?”

리나가 깜짝 놀라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낯빛으로 대꾸했다.

“뭐라고요? 등기라니요? 언제 그런 얘기 하셨어요?”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리나 곁으로 다가갔다. 겉으로만 침착할 뿐 속으로는 동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얼굴은 벌게져 있었다.

“이것 봐. 지난번 4월 달에 박 사장님 사모님하고 네 지분의 30%를 양도하는 계약서에 서명했었잖아. 그리고 그때 내가 분명히 말했지. 박 사장님 사모님 명의로 30% 지분 SEC에 등기하라고. 깜빡 잊어 먹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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