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⑤] 국세청 직원에 뒷돈 주니 문제 해결 ‘척척’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 달후는 당황했다. 한 달 전 처음 토미가 찾아왔을 때 계약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다시 전화하여 그자가 원하는 가격이 얼마인지 물어보게 했더니, 잠시 후 리나가 수화기를 든 채 말했다.

“토미가 대당 12만 페소에 계약할 수 있다고 해요.”

12만 페소면 300만 원 정도 밖에 안 되는 가격이었다. 송 회장에게는 400만 원에 팔 수 있다고 장담했었다.

“에잇! 그럼 그 가격에 50% 선금을 달라고 요구해!”

“네……”

리나가 토미와 따갈로그어로 통화하는 동안 달후는 그녀의 낯빛을 초조하게 살폈다. 하지만 좀체 밝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한 달 전에 얘기했듯이 30% 이상은 절대로 안 된다며 단호한데, 어떡해요?”라고 리나가 지친 목소리로 말하자 그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러고선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금으로 받은 72만 페소를 송 회장의 계좌로 송금했다. 잔금은 6개월 분할로 받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송 회장은 극히 사무적이고 퉁명한 목소리로 “알았다!”고만 했을 뿐, 사업계획을 세울 때 예상했던 가격보다 25%나 싸게 판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한편, 달후는 체류비용이 많이 늘어나는 것에 짜증이 났다. 리나의 15살짜리 여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마닐라에서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만 신세를 지겠다면서 그의 콘도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 부모와 형제들의 생활비와 병원비를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리나가 동거하기 전에 매달 집으로 보냈던 돈보다는 조금 더 많이 보냈다. 그래서 그의 동거생활비와 리나 가족의 생활비 지원으로 나가는 돈이 크게 늘어 한 달 체류비는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가 넘어버렸다.

3월 25일. 이날은 지난달에 차 스무 대를 사 갔던 토미가 약속했던 6개월 분할의 첫 번째 납부 마감일이었다. 오후 늦게 은행에 다녀온 리나가 뿌루퉁한 표정으로 사무실에 돌아와서 아직 입금이 되지 않았더라고 보고했다. 그가 그녀를 엄하게 쏘아보며 말했다.

“뭐라고? 아니 어제와 오늘 아침에 입금했는지 토미에게 확인해보지 않았어?”

“당연히 했지요. 그 사람의 사무실에서는 토미가 계속 외근 중이라고만 해요.”

그는 할 말을 잃었다. 계속 토미하고 연락을 취해 보면서 내일 다시 은행에 가서 확인해보라고 이르는 수밖에 당장에는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리나가 몹시 반가워하며 기뻐했다. 토미의 전화였다. 그런데 잠시 후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기 시작하면서 말 속에 긴장감이 묻어 나왔다. 상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부탁하고는 달후에게 보고했다.

“토미인데요…… 우리가 팔았던 차 스무 대가 모두 고장 나서 수리하고 있는 중이래요…… 계약서에 의하면 한 달 보증이라면서, 잔금을 지불할 수 없다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춘 다음, 아랫입술을 깨물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은 듯 얼굴 가득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만 있는 사무실 안에는 에어컨 소리만 요란할 뿐 침묵과 긴장감이 흘렀다. 그녀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토미가 전화를 끊어 버렸어요.”

이튿날 그는 리나를 시켜서 승합차 스무 대를 돌려줄 것을 토미에게 요구했다. 토미는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이미 지불했던 선금 72만 페소와 수리비로 지출했다는 비용까지 포함하여 85만 페소를 돌려달라고 오히려 리나에게 요구했다. 이 말에 달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속이 초조해지고 겁이 났다.

그때 송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잔금회수가 되었는지, 언제 송금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는 당황한 나머지 얼떨결에 회수했노라고 거짓말을 해 버렸다.

그날 저녁 그는 승호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승호는 여유 있는 미소를 머금고 그를 다독거렸다. 짤막한 상황 설명이 끝나고 나자 승호가 문제 해결을 위한 착수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승호는 발갛게 피가 오른 눈으로 달후의 지갑에 있는 돈을 모조리 훑은 다음, 회수하는 금액의 10%를 커미션으로 달라고 요구했다. 달후는 손끝을 떨었다.

며칠 후 승호는 여자친구의 친척인 국세청 직원 한 명과 함께 토미의 사무실에 찾아가 달후를 대신하여 담판을 지었다. 차의 상태와 수리비에 대한 문제를 다시는 거론하지 않기로 하고 잔금은 3분의 1값인 56만 페소에 일괄 정산하기로 했다. 사무실을 나오는데 승호와 공무원에게 토미가 봉투를 하나씩 건넸고, 세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달후는 마닐라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감추고 자신이 입 밖에 낸 거짓말이 진실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승호가 회수했던 금액 중에서 한 달 치 잔금을 송 회장 구좌로 송금했다. 6개월 분할금 중 첫 달치라고 보고했다.

두 번째 잔금은 4월 25일까지 송금해야 했다. 나머지 잔금을 다른 방법으로 마련하든지 아니면 그럴 듯한 핑계를 대어 빠져 나가야 했다. 왜냐하면 송 회장이 지난해에 보냈던 초기 투자금 1억 원은 정비소 인수대금과 일 년치 임대료, 차량 통관비용 그리고 그 동안의 정비소 운영경비와 체류비로 써 버려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물론 그가 한국으로 빼돌린 2천만 원은 고려하지 않았다. 일단 그의 통장으로 들어간 돈은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되는 그의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중에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달후처럼 자기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일단 모면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임을 깨달아 즉시 바로잡지 못하는 경우, 이미 내뱉은 거짓말을 덮기 위해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어진다. 사기꾼들의 유형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사기를 칠 의도가 없이 시작했던 일이 중도에 꼬였을 때 그것을 솔직하게 공개하여 풀지 않고 은폐하는 경우, 꼬인 실타래는 더욱 복잡하게 꼬이게 되어, 결국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사기를 치려했던 사람과 거의 정확하게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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