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갤리온 무역’③] 스페인 포르투항 가난한 소년 ‘유다양’ 못볼 장면 목격하더니···
제2부 유다양 1
[아시아엔=문종구 <필리핀바로알기> 저자] 16세기 후반, 스페인의 포르투라는 항구에서 유다양이라고 이름지어진 한 남자애가 태어났다. 그곳은 오늘날에는 포르투갈에 속하지만 당시에는 스페인이 통치하고 있었다. 유다양이 태어날 무렵, 유럽의 나라들과 거대 도시들은 십자군 전쟁 이후의 종교갈등과 지중해에서의 패권다툼으로 크고 작은 전쟁에 휘말리고 있었다. 유다양이 태어난 1571년에도 그리스의 레판토 앞 바다에서는 기독교 국가들의 연합함대와 오스만 제국의 투르쿠(터키)함대가 일대 격전을 벌였다. 이를 레판토 해전이라 불렀는데 연합함대의 승리로 기독교 국가들이 지중해 패권을 차지했다.
유다양의 아버지는 매일 고기잡이를 나가는 어부였고, 어머니는 부둣가 큰 거리의 여러 피복점에서 일감을 따와서 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보탰다. 유다양의 어머니는 유다양을 출산한 지 채 반년도 안 되어 둘째를 임신했으나 그 해 겨울에 닥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탓이었던지 봄이 오기 전에 사산死産했고 그 후로 다시는 애를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형제들이 득실거려 다툼이든 웃음이든 항상 시끌벅적했던 이웃집들과는 달리 유다양의 집은 조용했고 어딘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유다양은 동네의 또래 애들에 비해 힘도 좋았고 머리도 좋은 편이었다. 여섯 살 때부터 마을에서 소문난 부자인 호손 씨가 소유한 푸줏간에서 청소도 하고 잔 심부름을 하면서 밥을 얻어먹곤 했다. 그 푸줏간에는 레날도라는 젊은 청년이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잘 생긴 외모에 체격도 좋았고 맘씨 또한 좋아서 동네 처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자기를 좋아하여 졸졸 따라다니는 유다양에게 푸줏간의 영업이 끝나 문을 닫기 전쯤에 팔다 남은 고기를 조금 떼어 주곤 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했던 유다양은 푸줏간 뒤쪽 벽으로 쓰이던 나무판자들 중에 작고 헐렁한 부분을 찾아내어 밤중에 살며시 들어와 고기를 훔쳐가곤 했다. 겁이 많았던 유다양은 자신만이 아는 비밀통로를 통해 아주 소량씩 훔쳤기 때문에 레날도는 오랫동안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호손에게는 애들이 여럿 있어서 그의 집에 체류하는 젊은 여자 가정교사 메이가 매일 라틴어와 수학 그리고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다. 처녀였던 메이는 호손의 정부情婦이기도 했는데 그녀 역시 레날도의 외모에 반하여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푸줏간에 들르곤 했다. 유다양은 메이의 심부름까지도 도맡아 하면서 그녀로부터 라틴어를 배우고 싶어 했지만 상냥하지 못했던 메이는 유다양의 바램을 무시했고 유다양이 푸줏간에서 얼씬거리는 것 자체도 못마땅해 했다.
장맛비가 며칠 째 쏟아지다 그친 어느 후덥지근한 여름날 밤, 그날도 역시 유다양이 비밀통로로 푸줏간에 들어갔는데 그만 못 볼 것을 봐 버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레날도와 레이가 푸줏간 바닥에서 뒹굴고 있던 참이었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은 꼬마 도둑놈이 침입한 통로를 목격하고는 어이가 없어 빤히 쳐다보았고, 영악한 유다양은 생전 처음 보는 메이의 탱탱한 나신裸身에 눈을 떼지 못하고 넋을 잃었다. 두 사람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지 온 몸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어 있었다. 메이의 목덜미를 타고 가슴 양편에 밥공기를 엎어놓은 듯한 젖무덤의 꼭대기에까지 흘러내린 땀들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메이가 당황하여 허둥대며 옷가지를 챙겨 몸을 가렸다.
“유다양! 네 이 녀석!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거야? 무슨 짓을 하려고 했어?”
잔뜩 긴장하여 떨고 있던 유다양은 레날도의 꾸지람에 얼른 대꾸를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감정이 그를 압도했다. 그것은 반항이 섞인 날카롭고도 악한 감정이었다.
“메이 누나가 이러는 것을 호손 아저씨가 아시면···,”
그 말에 화들짝 놀란 메이가 “헉!” 하고 외마디 신음소리를 냈다. 순간 가리고 있던 옷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다양의 눈동자가 또다시 드러난, 잔뜩 긴장하여 딱딱하게 굳어진 그녀의 젖가슴으로 쏠렸다.
“뭐라고? 너 지금···.?”
원래 겁 많은 아이가 겁나게 용감한 아이보다 생각은 더 잘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두 명의 어른은 한 명의 겁 많은 꼬마 도둑놈에게 애원하느라 아까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진盡땀을 흘려야 했다. 소년 유다양은 그가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