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 소설 ‘더미’①] 바콜로 한인 총격 피살 예고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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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kma@newsis.com

연재를 시작하며

필리핀에서 한국인 남녀 3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숨진 사람 중 한명은 손발이 결박된 채 발견돼 주 필리핀 한국대사관 영사가 현장에 급파됐다. 13일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11일 필리핀 산페르난도의 바콜로 북쪽 도로변에서 한국인 2명과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사람 1명이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며 “남성 2명, 여성 1명으로 여성 피해자는 나머지 2명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이 가운데 1명은 손발이 결박된 채로 발견됐고 다른 1명은 손에 테이프로 묶인 흔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주 필리핀 한국 대사관 영사가 12일 오후 현장에 출동해 현지 경찰 측을 상대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들어 필리핀에서 한국인 피살자는 이번까지 모두 6명이다. 지난 5월 장모씨와, 선교 활동을 벌여온 심모 목사가 사흘 간격으로 각각 피살된 채 발견됐다. 필리핀에서 살해된 한국인은 2012년 6명, 2013년 12명, 2014년 10명, 2015년 11명이다.(10월 13일 오전 <세계일보> 보도)

필리핀은 두테르테 대통령 등장 이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마약 사범 등이 대폭 줄어들고 있다. 이같은 때 한국인 피살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필리핀에서의 한인 피살사건은 상당 부분 사업관계에 의한 것이 많으며 그 가운데 이른바 ‘더미’와 관련된 것이 많다. 먼저 필리핀의 ‘더미 방지법’(Anti Dummy Law)을 살펴보자.

1. 위반자(명의를 빌린 자와 빌려준 자 모두)는 5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투자금은 몰수된다.?2. 제보자에게는 위반자로부터 징수한 벌금액의 25%를 포상금으로 지불한다. 더미인 필리핀 사람이 자수하는 경우 처벌을 면제 받음과 동시에 법을 위반한 외국인으로부터 징수한 벌금액의 25%를 포상금으로 지불한다. 

<필리핀 바로알기> 저자인 문종구씨가 최근 자전적 소설 <더미>(좋은땅출판사)를 냈다. <아시아엔>은 <더미>를 연재해 독자들께서 필리핀 한인사회의 속살을 들여다보는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 <편집자>

작가들은 보통 특이한 사람들에게 본능적으로 마음이 쏠린다. 옳고 그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사악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오히려 예술적인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솔직히 말하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도 옳고 그름보다는 호기심이 먼저 발동하곤 한다. 사악한 인물은 세상의 질서와 법을 파괴하지만 작가들에겐 더없이 매력적인 존재다. 작가는 인간 본성의 옳고 그름을 심판하기보다는 인간 본성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서머싯 몸, 1874-1965)

1997년 2월 12일, 북한의 고위급 인사 황장엽이 남한으로 망명했다는 뉴스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달후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매서운 바닷바람 탓에 감기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온종일 가슴은 거북하고 머리에는 열이 올라서 정신이 맑지 못하고 어질했다.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국제전화였다.

“어? 승호구나. 오랜만이다. 아직도 필리핀이지?”

이승호와 김달후. 두 사람은 같은 동네에서 자란 불알친구 사이다. 하지만 공부도 못하고 머리가 나쁘다며 달후가 승호를 은근히 무시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군 제대 후 달후는 곧바로 복학했다. 가정형편이 좀 더 나았던 승호는 필리핀에서 6개월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대학 졸업 후, 달후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승호는 예전에 공부했었던 어학원에서 일하기로 했다며 다시 필리핀에 들어갔다.

“그래. 여기는 너무 좋다. 술값 싸지, 아가씨들 싸지, 놀러 다닐 데 많지, 천국이 따로 없다! 하하하!” “그렇게 좋은 데라면 나도 좀 데려가주지 그러냐. 이 의리 없는 자식아!”

“그래서 내가 전화한 것 아니냐. 근사한 사업 아이템을 하나 발견했으니 빨리 들어와! 같이 동업하자!”

“그래…? 그게 뭔데?”

“중고 자동차 수입 판매. 그리고 자동차 정비업. 이 나라는 폐차제도가 없어서 10년, 20년 이상 된 고물차들이 엄청 비싼 값에 팔리고, 그런 오래된 차들 정비하는 사업이 호황이다. 자세한 것은 네가 여기 들어오면 말해줄게.”

“아 그래? 그런데, 너는 아직도 어학원에서 일하고 있어?”

“응. 조금 더 배워가지고 나중에 적당한 때가 되면 내가 직접 어학원 차려서 해볼 생각도 있어. 그런데 지금은 중고차 사업이 돈 벌기 훨씬 좋을 것 같아서 전화해본 거야.”

“그렇구나. 솔깃한데, 내가 사업할 만한 돈이 있어야 말이지.”

돈 얘기가 그렇지 않아도 바늘로 쑤시는 듯했던 달후의 머릿속을 더욱 욱신거리게 만들었다.

CCTV 모니터에 그랜저 승용차가 텅 빈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달후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다시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다. 1997년 4월 17일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한국의 대법원이 전두환에게 무기징역과 2천억 원의 추징금을, 노태우에게 징역 17년과 추징금 2천 6백억 원을 선고했다는 뉴스가 하루 종일 메인 뉴스를 도배하고 있었다.

2천억 원이라…. 가만있자, 내 월급 100만 원을 몇 년 모으면 그 정도가 될까? 달후는 얼른 계산기를 두들겼다. 2천억 원을 일 년 수입 1,200만 원으로 나누면 뭐야, 이게! 16,666년이나 걸려? 뭐 이런 도독 놈의 새끼들이 다 있어!

그의 입 속에서 쌍욕이 철렁거리고 있을 때,

“방 있어?”

넙데데한 얼굴에 환갑은 되어 보이는 늙은 사내가 카운터 앞에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사내의 등 뒤에 살짝 비켜서 젊은 여자가 고개를 숨기며 서 있었다. 그는 방에 앉은 채로 목을 빼서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네. 숙박인가요? 대실인가요?”

“대실은 얼마?”

“만오천 원입니다.”

“뭐가 그렇게 비싸? 부산 시내에서도 만 원밖에 안 받는데. 만 원이면 되지?”

“아, 네. 그렇게 하시지요, 뭐.”

그는 사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마지못해 오천 원을 깎아줬다. 목요일 밤에는 손님들이 뜸하기 때문에 조금 깎아 주더라도 방을 채우라는 삼촌의 지시를 받은 터였다. 사내는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둥근 안경알에 그의 헤헤 웃는 얼굴이 거울처럼 비치었다.

키를 받아들고 가는 사내와 동행인에게 그의 눈길이 뒤쫓았다. 늙은 다리를 제법 의젓하게 끌고 가는 사내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다부진 어깨 위로 꽁지머리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날씬한 몸매에 목덜미를 살짝 덮는 생머리가 파란 물방울 무늬 원피스와 잘 어울렸다. 빨간색 하이힐을 신고 있는 종아리가 갸름하여 예쁘다고 그는 생각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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