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바로알기] ⑭이슬람철학 집대성한 이븐시나 “하나님 존재 이성으로 이해”

아랍인들은 9세기에 그리스철학과 과학에 접하고 그후부터 유럽의 르네상스, 과학혁명, 계몽시대에 맞먹는 문화적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 시대에 ‘팔사파흐’(여기서 유럽 중세시대의 ‘필로소피’가 탄생)라고 불리는 학문이 생겨나고 이를 연구하는 이들을 ‘파일라수프’라고 불렀다. 이들 이슬람 철학자들은 지구와 우주를 다스리는 법칙에 따라 이성적 삶을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고 처음엔 자연과학에 집중하다가 그리스 형이상학으로 옮겨가고 이들 원리를 이슬람에 적용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초기에 이성주의가 종교의 가장 발달된 형태라고 믿고 개인적 신앙차원의 하나님(personal God)을 더 높은 개념으로 승화시키려 시도했다.

이슬람철학자들은 그 출발점이 그리스철학이긴 했으나 문제는 그리스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토니스 등)이 생각하던 하나님은 성경이나 코란에서 말하는 하나님과는 매우 달랐다는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하나님은 인간의 일상사에 개입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세상을 창조하지도, 심판의 날에 세상을 파괴하지도 않는 극히 ‘무관심한’ 하나님이었다. 이들의 하나님은 어떻게 보면 근대에 들어와 생긴 범신론(pantheism) 또는 유신론(theism)의 전통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범신론자였던 아인슈타인의 다음 발언을 음미해 보면 범신론이 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개인신앙 차원의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세상의 오묘한 구조에 경외심을 갖고 그런 아름다운 우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지금의 터키에서 태어난 4세기 기독교신학자 베이질(330-379)은 케리그마(kerygma)와 도그마(dogma)를 구분하고 이 두가지 접근법이 모두 종교훈련에 중요하다고 말했던 바 있다. 여기서 케리그마란 교회에서 성경에 근거해 공적으로 행하는 가르침을 말하는 것이고 도그마란 그보다 더 깊이가 있는 신학연구를 가리킨다. 베이질 이후의 신학자들은 도그마는 상징적인 형태로만 표현되고 이해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와 유사하게 이슬람신학자들 또한 일반신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코란의 가르침과 특수한 방식으로 코란을 읽어서 거기에서 숨은 진리를 찾아내는 접근방법(tawil)을 구분했다.

이슬람철학의 전통은 9세기의 알킨디에서 시작해서 10세기 알파라비 등으로 이어지지만 이븐시나(980-1037)때 와서 집대성된다. 이븐시나는 서양철학자들에게는 아비센느(Avicenna)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신의 존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법에 근거해 논리적으로 입증했고 이는 이후 중세시대 이슬람 및 유태교학자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븐시나를 포함한 모든 이슬람철학자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일체의 의심을 갖지 않았고 인간의 이성이 신의 존재에 대한 궁극적 이해에 도달하는데 최선의 방법이라는데 대해서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븐시나는 지적 능력이 충분치 못한 보통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것이 지식인들의 의무라고 생각했고 그래야 몽매한 대중들이 미신을 믿고 하나님의 인격화를 하는 것을 막을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이븐시나보다 2-3세대 늦게 태어난 알가잘리(1058-1111)는 젊은 나이에 바그다드의 니자미야 모스크교수 책임자가 되어 이슬람철학 원리에 대해 깊이있게 연구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몇 년이 가지 못해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결국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그만 두고 수피교단에 가입하게 된다. 나중에 그는 교수직에 복귀했지만 수피생활 경험을 떨치지 못하고 후세 이슬람추종자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결론을 내린다. 즉 하나님의 존재는 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입증할 대상이 아니고 영적으로 신비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보통 알가잘리 이후 이슬람철학은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스페인 코르도바의 이븐루시드(유럽식 이름은 아베로스 Averroes, 1126-98)는 팔사파흐 전통을 부활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울레마들은 항상 철학자들의 신(神) 개념에 대해 의심에 찬 눈으로 바라봤으나 이븐루시드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신의 개념과 보다 전통적인 신개념을 통합시키는데 성공했다.?그는 “종교와 이성간에는 어떠한 모순도 없다. 두 방법 모두 같은 진리를 표현하는 다른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븐루시드는 이슬람전통에서는 부차적인 인물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서구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공헌을 한 학자로 칭송을 받게 된다. 실제로 생존시에도 자신의 철학관 때문에 몇 년에 걸쳐 귀양살이를 하고 사망직전 복권되긴 했으나 그의 저서는 사후에도 계속 금서로 취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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