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아로 대표되는 수피즘은 정의를 얘기하고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기를 요구하는 딱딱하게 꽉 막힌 듯한 주류 이슬람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이슬람의 전통이 얼마나 다양한 지를 잘 보여준다.

라비아로 대표되는 수피즘은 정의를 얘기하고 두려움과 경외심을 갖기를 요구하는 딱딱하게 꽉 막힌 듯한 주류 이슬람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이슬람의 전통이 얼마나 다양한 지를 잘 보여준다.
이번엔 수피전통은 어떤가 알아보자. 어떻게 보면 이슬람의 수피전통은 정통이슬람의 엄격한 율법주의에 대항해서 나온 영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수피즘은 기독교, 힌두교, 불교,? 이슬람시아파, 페르샤마니교
아랍인들은 9세기에 그리스철학과 과학에 접하고 그후부터 유럽의 르네상스, 과학혁명, 계몽시대에 맞먹는 문화적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 시대에 ‘팔사파흐’(여기서 유럽 중세시대의 ‘필로소피’가 탄생)라고 불리는 학문이 생겨나고
지금까지 모하메드 출현에서 몽골의 아바시드왕조 멸망에 이르기까지 6세기에 달하는 시간을 숨차게 달려왔다. 여기서 역사에 대한 서술을 잠시 멈추고 대관절 이슬람이 뭔지 중세의 신학자나 철학자, 신비론자들이
몽골의 침략을 겪은 후 이슬람권의 지식인들은 상당한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 이들이 철석같이 믿어왔던 역사관에 따르면 무슬림 커뮤니티를 세계 방방곡곡에 전파하고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지난 회엔 8세기 초부터 15세기까지 약 700년에 걸쳐 스페인을 지배했던 이슬람 왕조 시대에 대해 언급했다. 이번에는 다시 시간을 200년 넘게 거슬러 올라가서 스페인에서 동쪽으로 4000km
전편에서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일어난 이슬람 세력이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모로코까지 휩쓸어버린 뒤 이번에는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까지 차지하고 그로부터 50여년 만에 압둘라흐만이라는 구
지난 번 글에서 알리와 후세인의 사망, 그리고 라쉬둔 시대의 종막과 우마야드 왕조의 창건까지 얘기했었다. 이번엔 그로부터 수십 년을 건너뛰어 우마야드왕조 치하에서 이슬람 세력이 서진(西進)에 서진을
지난번 에피소드에서는 이슬람의 창시자 모하메드가 사망한 때까지 서술했다. 이번에는 모하메드 사후 그가 세운 종교커뮤니티를 뒤이어 이끌어가게 된 소위 ‘라쉬둔’(rightly guided ones) 칼리페이트시대(632-661)에 대해 설명하고 이
일곱 번째 얘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나가기 전에 요즘 일부 국내 이슬람 학자들이 주장하는 ‘모하메드’의 올바른 한글표기에 대해 잠시 시비를 걸어보기로 하자. 일부 학자들은 ‘모하메드’가 영어식 표기를
모하메드가 그의 동조자들과 함께 메카 지배세력들의 탄압을 피해 메디나로 본거지를 옮긴 서기 622년 ‘헤지라’에 대해 지난 글에서 소개했다. 이번에는 그 후 무슬림들이 코레쉬족의 공격을 번번이
40대로 접어든 그는 요즘 표현으로 일종의 ‘중년의 위기’에 접어들게 된다. 그는 “인생이 과연 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메카 사회 전체가 대상무역 호황으로 잘 살게 됐으면서도
지난 글에서?이슬람종교가 창시된 서기 620년대 이전의 아라비아 반도와 주변지역 상황에 대해 살펴봤다. 이번에는 모하메드의 탄생으로부터 그가 40세 때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 듣고
한때 히자즈사막에서 들쥐나 잡아먹고 살던 미천한 민족이던 아랍인들이 순식간에 힘을 모아 아라비아반도를 통일하고 한 세기도 안 되는 기간 내에 스페인에서 오늘날의 카자흐스탄까지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선지자 모하메드가 세계사 전면에 등장하기 직전인 서기 620년 전후까지의 아라비아 반도 주변상황을 살펴보면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어느 지역 문명사도 마찬가지지만 아라비아 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