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바로알기] ②유목민족 vs 도시민족의 투쟁?
선지자 모하메드가 세계사 전면에 등장하기 직전인 서기 620년 전후까지의 아라비아 반도 주변상황을 살펴보면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어느 지역 문명사도 마찬가지지만 아라비아 반도 주변지역의 문명사는 대체로 유목민족과 도시거주 민족 간의 투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14세기 튀니지 출신 역사학자이자 근대 사회학의 시조로 알려진 이븐 칼둔의 저서 <무깟디마>(‘개설’ 또는 ‘입문서’라는 의미)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정착 농업민족은 관개수로와 관련 농업시설을 건설하여 마을과 도시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린다. 유능하고 강력한 파워를 휘두르는 지도자가 나타나 종교지도자와 손을 잡고 도시국가를 하나의 정치단위로 통일시켜 왕국이나 제국을 세운다. 그러나 그동안 외부에서 찬밥신세였던 유목민족이 쳐들어와 왕조를 멸망시키고 왕국이나 제국이 그간 쌓아온 부와 문화를 이어받는다. 그러나 이들 유목민족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화로운 생활에 젖은 도시거주자로 변하고 또 다른 유목민족에 의해 정복당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영어원문에서 필자 번역)
이런 유목민족과 도시거주 민족 간의 길항관계는 아랍민족의 발흥 당시뿐만 아니라 그 훨씬 이전 시대부터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예를 들어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 수메르시대 부터 아카디아, 사르곤,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찰디아, 페르샤(싸이러스 또는 키루스대왕의 아케미니드제국)에 이르기까지 그런 패턴은 계속되었다. 페르샤제국은 기원전 6세기에 지중해권 전역을 지배하면서 다리우스왕과 크세르크세스왕 재위 당시 2차에 걸쳐 약소국이라고 얕보고 그리스 정벌을 나섰다가 큰 코를 다치게 된다.
그로부터 150여년 후 알렉산더는 페르샤와는 반대방향인 동쪽으로 정벌에 나서 결국 페르샤제국을 멸망시키고 지중해세계와 중동지역을 하나로 아우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동서문명 통일의 꿈은 그의 사후(死後) 금세 깨져버리고 그의 부관들이 이집트, 셀루시드 등 몇개 지역으로 나눠 통치하기 시작한다. 과거 페르샤 제국이 자리잡았던 지역에 새로 들어선 파르티아왕조(247 BC~224 AD)는 로마제국과 팽팽하게 맞섰고 로마의 동진(東進)을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서기 3세기 들어 파르티아왕조의 영토변경에서 밀려있던 또 다른 유목세력이 왕조를 전복하고 사사니드왕조를 건립하기에 이른다.
그런 한편 로마제국은 점차 쇠퇴기미를 보이기 시작했고 서기 293년 디오클레시안 황제는 제국 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동서 두개로 분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는 동로마 쪽에 집중되어 있었고 얼마 가지 않아 서로마제국은 동쪽과 북쪽으로부터 밀려들어오던 ‘야만인’들의 침입에 못 이겨 멸망(476년)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서유럽은 문화적 암흑기에 접어든다. 단지 유일하게 남아 있던 문화도시라고는 기독교 주교(나중에 교황)가 관리하던 로마에 불과하게 된다. 한편 콘스탄티노플(오늘날 이스탄불)에 자리잡은 동로마제국은 분리 이후 오토만제국에 의해 멸망(1453년)하기까지 1000년 넘게 생존하게 되며 나중에 비잔틴제국으로 불리게 된다.
서기 6세기에서 7세기 초까지 비잔틴제국은 사사니드왕조와 더불어 이 지역을 통치하는 2대 제국의 하나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 한편 이 두 제국의 사이에 끼여 있으면서도 기후와 토양 조건이 열악하여 이들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아라비아반도에서 새로운 세력이 급속하게 발흥하게 된다. 아랍세력의 대두 또한 이븐 칼둔의 유목민족 대 도시거주 민족 간의 투쟁 패턴에 꼭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