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이슈&분석]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마약과의 전쟁’ 언제까지?
[아시아엔=마닐라/문종구 ‘아시아엔’ 칼럼니스트, <필리핀바로알기> <더미1> 저자]?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의 언행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두테르테는 6~8일 라오스에 열리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기간에 두테르테와 양자 정상회담을 갖고 필리핀의 인권침해 우려를 전달할 계획으로 알려진 오바마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두테르테는 지난 1일 종교행사 연설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이 나에게 인권문제를 지적하려고 한다”며 “하지만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엎드려도 총에 맞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두테르테는 또 아세안 정상회의 기간 동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만남 요청도 거절했다고 AFP통신 등이 보도했다. 반 총장은 두테르테가 취임 초 마약범죄 용의자에 대한 즉결처형을 옹호하자 “불법이고 기본권의 침해”라고 비판했다. 두테르테는 이에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하며 유엔 탈퇴를 경고하기도 했다.
두테르테가 과연 어떤 인물인가? 그리고 이곳 필리핀 국민들은 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두테르테는 취임 이후 네 가지를 핵심과제로 내세우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즉 △마약근절 △친서민정책 △공직자 부정부패 근절 △환경 및 자원보호가 그것이다.
두테르테는 ‘마약과의 전쟁’과 함께 친서민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다. 필리핀에는 파코(Pagcor)라는 정부기관이 필리핀 내 카지노·복권·도박장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350억페소(한화 7500억원) 이상 올리는 파코의 수입은 그동안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유용해왔다. 두테르테는 취임 두달째인 지난달 중순 파코 수입전액을 서민 의료와 교육지원에 사용하도록 내각에 지시했다.
그는 농민들이 해마다 부담해온 20억페소 상당의 관개수로 사용료를 폐지하고 정부 소유의 농기구를 무상 임대토록 했다. 그는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의 토지 경작 수익을 부자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천명했다.
두테르테는 20년 넘게 다바오시 시장 재직 중 청빈한 생활을 하며 부정축재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는 사회정의 실현에 자신의 직을 걸겠다고 밝히고 있다. 두테르테는 이를 위해 빈부격차 해소와 마약근절에 정책기조를 두고 있다.
필리핀이 직면한 치안불안의 원인은 대부분 마약과 관련이 있다. 두테르테는 “인간을 파괴시키는 마약 제작자와 판매업자는 악마”라며 “반드시 죽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들을 놔두고서는 마약 중독 서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결국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바오 시장 재직 시절 그는 “마약 범죄자들은 다바오 시를 수평으로 떠나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수직으로 떠나도록 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 후 다바오 시에서는 마약상으로 의심되는 2천명이 사법절차 없이 죽었다. 두테르테가 조직한 자경단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지만 다바오시는 20년간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 기간 중에도 마약상에 대해 초강경 입장을 밝혔다. 다음 발언이 압축적으로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내 자식이라도 마약을 한다면 내가 직접 사살할 것이다!”
두테르테가 지난 6월30일 취임하자마자 70만명 이상의 마약상이 자수했다. 정부는 “아직도 300만명의 마약 용의자들이 더 있다”고 발표했다. 그들은 대부분 가난한 서민들이다. 두테르테 취임 후 두달간 1500여명의 마약용의자가 사살됐으며 그 중 900여명은 경찰의 소탕작전 중에 사살되었다. 나머지는 조직 노출을 우려한 마약상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두테르테는 “검거에 반항하는 마약용의자들은 현장에서 사살하라”고 지시했다. 총을 가진 시민들에게도 마약상을 죽여도 좋다고 했다.
그러자 외국의 인권단체와 유엔 인권기구에서 “두테르테의초법적인 마약과의 전쟁은 인권유린이자 학살”이라고 규탄했다. 이에 두테르테는 “필리핀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든다”고 일축했다. 심지어 마약과의 전쟁을 방해하면 유엔을 탈퇴하겠다고도 했다.
필리핀 국내에서 두테르테를 비난하는 사람 가운데 여성 상원의원 데리마가 있다. 데리마는 상원에서 인권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 8월 중순 그녀는 “두테르테 정부의 인권유린 실태를 조사하겠다”며 피해자들과 경찰청장을 출석시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에 질세라 두테르테 대통령은 “데리마는 아퀴노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감옥 안에서 제조한 마약을 외부로 반출시켜 판매하는 것을 묵인하는 대가로 마약왕으로부터 막대한 검은 돈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공개된 ‘마약 매트릭스’에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마닐라 감옥에 수감 중인 마약왕과 데리마 상원의원, 데리마의 운전기사, 전 법무부 차관, 전 주지사이자 현 하원의원 등이 연루돼 있다. 데리마 상원의원과 관련자들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하원은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두테르테는 친서민 정책과 함께 그 자신 서민적 풍모를 갖고 그처럼 행동한다. 엘리트 법률가이면서도 서민들이 사용하는 거칠고 단순한 언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는 수면시간에는 경호가 필요 없다면서 대통령 경호원 숫자를 줄였다. 그는 임기 중에 암살당해 국민들의 가슴에 영원히 ‘서민들 친구’로 남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그와 가까운 한 기자는 전했다.
필리핀 정부는 두 가지 유형의 반군 즉 공산반군과 이슬람반군과 수십년 전투 중이다. 공산반군과는 최근 평화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때 공산주의 활동을 했던 두테르테는 공산당에 정부고위직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런데 이슬람반군들은 그의 평화협상 제안에 응하지 않고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다.
지난 8월 두테르테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 지역에서 이슬람반군과 전투 중 사망한 병사들에게 달려갔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이다. 그는 병사들 주검 앞에 거수경례를 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 휴대폰 번호까지 알려주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경우 가령, 정부기관에서 자신이 유족들에게 한 약속과 지시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직접 전화해 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이 TV화면을 통해 전해졌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필리핀 국민들이 천국과 같은 삶을 누릴 수만 있다면 나는 지옥에 떨어져 불타는 형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한다. 두테르테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 91%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이 표출된 것이다. 그의 취임 전 그토록 흔했던 소매치기·강간·절도·강도·납치·살인 사건 등이 눈에 띄게 줄었다. ‘두테르테 신드롬’이 동남아를 넘어 아시아 각국으로 퍼져나갈 날이 그리 멀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