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 바로알기] 소매업, 외국인은 할 수 없어

수출과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필리핀은 소비와 내수 위주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해외 취업 노동자들의 송금이 국내 소비 시장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소매업 및 내수 시장 분야에서 크게 성공한 한국교민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중·상류층을 상대로 거래할 때에는 가격과 품질로 담당자를 설득하면 되지만, 서민들을 직접 상대로 하는 소매업은 대중인지도가 무척 중요하다. 아무리 값이 싸고 질이 우수하다 하여도 TV 광고의 지원이 없으면 서민들의 귀와 눈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평범한 상품과 영세한 가게 운영에 머물고 만다.

일부 교민들이 한국에서 성공한 체인점 상품을 가지고 필리핀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TV 광고로 막대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 것으로 여겨진다. 우민화(愚民化 the ignorant masses) 정책으로 일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하루 종일 TV 앞에 앉아 있는 서민들은, 광고에 나오는 상품과 회사들만이 무조건 훌륭하다고 믿어버린다. 특히 유명한 배우나 정치인이 선전할수록 더 효과적인데, 그 이유는 그 유명인이 해당 상품과 회사에 대해 보증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 서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느 독재자가 말했듯이, 국민들이 우매할수록 선전을 통해 지옥조차도 낙원으로 바꿔버리기가 수월한 것이다. 누군가가 카톡으로 재미있는 글귀를 보내왔다. “TV와 많은 시간 동거하지 말라. 술에 취하면 정신을 잃고, 마약에 취하면 이성을 잃지만, TV에 취하면 모든 게 마비된 바보가 된다.”

필리핀에서의 소매업은 외국인 개인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자본금 250만달러 이상의 기업들에게 외국인 지분을 60% 허용하고 2년의 유예 기간 이후에는 100% 소유가 가능하다. 15년 전에 조그마한 소매업을 한 적이 있었다. 한국산 주방용품을 수입하여 판매하는 가게였었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큰길가의 버스와 지프니 정류소 근처에 위치했기에 가게의 절반 정도에는 약사를 고용하여 약국도 운영해 보았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자 소규모 약국 경영에 대해 심각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서민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예를 들어 비타민제를 사러 왔을 때 1000개들이 한 통을 사가는 게 아니라 5알, 10알 정도씩 사는 것이다. (한 알을 사가는 사람도 있었다) 매일 재고 확인하기 위해 알약 전체를 헤아리는 것이 (위생상 좋지 않거니와) 보통 짜증나는 일이 아니었으며, 매달 판매량과 재고가 일치한 경우도 거의 없었다.

필자나 필자의 아내가 자리를 비우거나 가게에 나오지 않는 동안에 약사 또는 주방용품 판매직원들이 약의 일부를 슬쩍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약의 품목과 제약사들도 너무 많아서 구색을 맞춰 놓기가 어려웠고, (손님들의 30% 정도는 그들이 원하는 약이 없다며 그냥 돌아갔다) 유효기간을 확인해서 관리하는 일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약사 급여와 가게 임대료, 관리비, 유지비 등을 제하고 나니 수익도 거의 나지 않아 약국은 6개월 정도 후에 포기해 버리고 주방용품 코너를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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