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일벌백계, 시행착오는 싫어요”
어느 한 사람이 저지른 죄 또는 잘못에 대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엄한 처벌을 줌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일벌백계를 필리핀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면 거센 반발을 사게 된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모욕과 창피를 준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격모독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반성이나 경각심은커녕, 오히려 신체적 보복을 당하거나 제소당할 수도 있다. 필리핀 사람들끼리는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상관 또는 사장이 조용히 불러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장소에서 꾸짖고 징계를 내린다. 회사 규정을 어겨서 징계 위원회에 회부되더라도 잘못한 당사자에게만 통보하며 소문 없이 징계 위원회를 소집하여 결정된 징계 사항도 본인에게만 통보한다.
한국의 문화처럼, 잘못이나 실수한 부하 직원을 상사가 사무실 내에 있는 여러 직원들이 보고 듣고 있는 상태에서 질책하게 되면, 필리핀 직원은 큰 수치감을 느끼게 되고 만일 앙심을 품게 되면 흉기나 총기에 의한 보복을 당할 수 있다. 훈계란 현명하게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가르침인데, 필리핀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르침 받는 것을 거부하고, 그렇게 하는 경우 자신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것으로 간주한다. 특히 가벼운 손찌검이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되며, 팔이나 신체의 일부를 밀거나 당기는 행위만으로도 폭행죄가 성립되니 조심해야 하며, 이러한 경우에 흉기로 보복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돈을 써서 성공하고 싶다면 아이템보다 경험을 구매하라”라는 말이 있듯이, 시행착오는 값어치가 있는 것이며 이를 통해 발전하고 성공에 이르기까지 한다. 자신의 착오뿐만 아니라 남의 착오를 통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잘못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지적하거나 훈계하지 못하게 하는 문화는 다른 사람들에게 간접 경험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 버린다. 그리고 잘못한 사람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문화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비슷한 업무를 하는 여러 직원들에게서 비슷한 잘못이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회사 업무에 대한 실수와 잘못은 공적인 것이기에 여러 직원들에게 그 사례를 알리고 공개적으로 책임을 묻고자 해도, 해당 직원은 사적으로 받아들이며 반발한다. 무언가를 성공시키는 방법을 체험으로 얻어내려면 실수와 책임지는 자세를 통해서 가능하다. 시행착오 없이 또는 혼자서 모든 실수를 경험하며 성공하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에 간접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간접 경험은 책을 통해서나 주위 사람들의 실수를 통해서 배워야 하는데 필리핀 서민들은 거의 책을 읽지 않고 (독서 인구가 너무 적어서 출판이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의 실수와 책임지는 모습들도 알려지지 않는 문화이니 필리핀 서민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요원할 뿐이다. 서민들을 책임지는 자세와 동떨어지게 만드는 이러한 문화도 식민지 통치자들과 지배층들이 서민들의 지적, 경험적 성장을 지연시키고 방해하려는 목적에서 심어놓은 게 아닌 가 의심된다. 안창호 선생은, “책임이 있는 사람은 역사의 주인이요, 책임이 없는 사람은 사의 손님이다”라고 말했다. 필리핀 지배층들이 지난 수백 년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자신들만이 책임 있는 주인 노릇을 하기 위해서, 서민들에게는 책임 없는 역사의 손님으로 세뇌시키며 책임지는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주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자신과 극히 일부의 상관(사장)만이 아는 여러 가지 다른 실수들이 누적되어 해고되는 서민들이 더러 있다. 다른 직장에 고용되어서도 역시 똑같은 실수들을 반복한다.
새로운 상관(사장)들과 동료들은 여태까지 그들이 어떤 실수들을 해왔었는지 소문나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실수나 잘못에 대해 지적당했을때 즉시 사과하거나 책임지려 하지 않고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는 서민들은 비슷한 실수를 꼭 다시 저지른다. 마음속 깊이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거나 이미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의 실수는 시행착오이지만 두 번의 똑같은 실수는 습관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실수나 잘못을 하고서도 진심으로 사과하기를 망설이거나 비슷한 실수를 재발하는 직원이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해고하되, 심하게 훈계해서는 안 된다. 직장을 구하고자 하는 서민들은 아직도 많으므로 다소 시일이 걸리겠지만 만족할 만한 직원을 찾을 때까지 계속 바꿔보면 된다.
한국인들이 필리핀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요인 중 하나는 시행착오로 많은 것을 배우고, 실수나 잘못을 주위 사람들에게도 알려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