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대박이냐 사기냐?
필리핀에서 사업을 하면서 현지인들이나 교민들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사정을 들어보면 거의 대부분 이러한 단계를 밟고 있었다.
첫 단계 : “아직 발표되지 않은 대박 아이템이 있다. 아주 절친한 정부 고위관리하고 은밀히 추진 중이니 다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일이 어느 정도 진행되고 나면 가로채 버리곤 하여 그 쪽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대박 아이템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필리핀 오지에 있어서 한국의 중소기업들이나 투자가들이 확인하기 위해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지역에 있거나 대도시 가까이 있다 해도 의심 많은 투자가들이 현장을 방문하고자 할 때 미리 현지인 몇 사람과 공모하여 얘기를 맞춰 놓는다. 대신 절친하다고 하는 고위관리들과 마닐라 또는 지방도시의 고급 호텔에서 가끔 식사자리를 갖는다.
둘째 단계 : “워낙 부정부패가 심한 나라여서 원칙대로 하면 몇 개월(또는 몇년) 걸리지만 약간의 뒷돈을 쓰면 시일을 대폭 앞당길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하니 서두르자”며 착수금과 사업 자금의 일부를 미리 받는다.
셋째 단계 : 필리핀은 전국에서 총기 사고 및 반군들과 교전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대박 아이템을 추진한다는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소식을 신문기사와 함께 들려주며, 또는 다른 어떤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사업의 진행속도에 문제가 있음을 알린다. 사업 관련 서류들의 준비과정에 시간을 끌며 사업자금의 나머지 부분을 송금하도록 독촉한다. 이 시점에서 투자가들이 의심하기 시작한다.
넷째 단계 : 투자가들이 대사관, 영사관, 코트라 또는 지인을 통해 소개받는 교민들을 통해 대박 아이템의 진실 여부를 탐문조사하기 시작한다. 이를 눈치 챈 ‘사기꾼’은 “당신이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약속을 저버리는 바람에 대박 아이템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고위 관리도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어 버렸다. 당신이 이 사태에 대해 책임지고 해결하지 않으면 당신과 함께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라고 오히려 협박하며 또 다른 해결 자금을 요구할 수도 있다.
위와 같은 예들은 우선, 두 사람 모두 잘못이다. 대박을 꿈꾸는 것 자체가 ‘도박꾼’의 기질이 있고 ‘사기꾼’의 사업 파트너로서의 자격을 적당히 갖추었다. 무모하고 비상식적인 큰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마음이 사기꾼의 말에 끌린 것이다. 투자금 대비 연 10~30%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상식적인 수준의 사업 아이템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투자금의 몇배, 몇십배의 이익을 낼 수 있다는 ‘대박 아이템’을 기대하는 사람들만이 당하는 경우이다. 사기꾼들과 도박꾼들은 불확실한 2개를 얻기 위해 확실한 1개를 던져버리는 사람들이다. ‘정직하고 합리적인 사람을 사기 칠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기꾼과 그의 피해자들은 서로에게 만족을 주는 공생적인 애증의 관계 형성 속에 같이 묶여 있다고 일부 정신병리 학자들이 보고한 적이 있다.
위의 예를 다시 분석해 보자.
첫째, 필리핀의 고위관리들은 중산층들이거나 지배층들이다. 그들은 스페인, 중국 또는 미국의 후손들이며 수백 년 간 필리핀을 지배해오고 있다. 한국인들보다 자본주의 역사가 훨씬 길고 많은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있어서 한국인들에 대해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자기 나라의, 특히 자기 관할 지역에 ‘대박 아이템’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다른 사람(외국인, 한국인 포함)에게 내줄 이유가 무엇일까? 고위관리들이 현금이 부족해서 외국자본을 유치하려 한다는 것도 거의 속임수이다. 그들은 부자들이다. 현금이 없는 척 할 뿐이다.
둘째, 고위관리가 대박아이템을 협의하는 자리에 참석했다는 것만으로, 나중에 사업이 잘못되었을 때 그 고위 관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것은 전적으로 한국문화이고 한국식 사고방식이다. 필리핀에서는 고위관리들이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사업이 잘 되기를 빌어주고 격려해주고 추천서도 써준다. 고위관리의 책임이 명시되어 있는 계약서에 직접 서명하지 않는 한 고위관리의 책임은 없다는 것이 필리핀의 문화이고 실제 법적용에서도 그러하다. 만일, 계약서에 서명하지도 않은 그 고위 관리를 공식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비난하고 다닌다면 (해결사에 의하건 법에 의하건) 보복을 받게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셋째, 필리핀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절차를 따진다. 절차가 잘못 되었거나 건너뛰게 되면 최종 결정 또는 인·허가가 발급된 뒤에도 나중에 경쟁자들 또는 뭔가를 노리는 세력들의 문제제기에 의해 무효화되어 버리거나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이 소요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래서 어느 사업이든 인·허가에 드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뒷돈을 쓰게 되면 약간 더 빨라질 수는 있지만 나중에 발생할지 모르는 심각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정식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통상적으로 1년 걸리는 절차를 1~2달 만에 끝낼 수는 없다. 아마도 뒷돈을 많이 쓰고 열심히 (브로커나 변호사에게 전적으로 맡기지 않고) 직접 뛰어 다닌다면 7~8개월 안에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