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필리핀 사람 채용하려면···

2010년도 자료에 의하면 전체 필리핀 해외취업자 수는 147만명이었으며 송금액은 188억달러였다. 1970년대 내내 한국사회의 구호가 ‘100억달러 수출 달성, 1000달러 국민소득’이었음을 기억하는 필자로서는, 맨손으로 해외에 나가 벌어들이는 현금만으로 200억달러에 육박한다는 사실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느 책에 의하면 2006년 3300만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해외에서 일하며 고국에 보낸 송금액이 200억달러였다 하니, 필리핀의 해외 취업 노동자들은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해외취업 노동자들과 맞먹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해외 취업 노동자들이 국가경제에 큰 보탬이 되었지만, 그 당시의 한국인들보다 요즘의 필리핀 해외취업 노동자들이 필리핀 경제에 이바지하는 비중은 훨씬 크다. 해외 취업자들 중에서 육상 취업자는 112만명에 38억달러, 해상 취업자는 35만명에 150억달러를 송금했다. 육상 취업자의 평균 송금액이 3393달러이고, 해상 취업자의 평균 송금액은 4먼2857달러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육상 취업자들이 일하는 지역은 중동 지역이 68만여명으로 가장 많고, 홍콩,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지역에 28만명, 유럽에 5만여명, 미주와 아프리카 지역에 각각 2만5천여 명, 오세아니아 지역에 1만여명으로 조사되었다. 필리핀의 해상 취업자들은 영어를 구사하고 성격이 온순하며 부지런하여 세계의 선원 시장에서 가장 선호되는 노동자들이다. (세계 선원시장의 1/3을 필리핀 선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2010년도 수출 실적은 필리핀 514억달러, 한국 4664억달러였다. 한국의 수출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영업이익률은 5~6% 정도라 한다. 두 나라 모두 수출로 벌어들이는 이익을 5.5%로 보았을 때, 필리핀은 28억달러, 한국은 257억달러의 이익을 낸 셈이다. 그런데 그해 필리핀 해외 취업 노동자들이 국내에 공식적으로 송금해온 돈은 188억달러였다. 비공식적으로 들여온 돈은 20% 정도일 것이라 하니 해외취업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총 금액은 226억달러 정도 된다. 즉, 한국의 수출 전체로 벌어들인 이익과 비슷한 금액을 필리핀의 해외취업 노동자들이 해마다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이들이 필리핀 경제에 기여하는 공로는 어마어마하다.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한국에서의 생활과 비교하여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 중의 하나가, 필리핀에서는 저렴하고 착한 인력이 흔하다는 것이다. 특히 가정부와 운전사를 월 급여 10만~20만원 정도에 고용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24시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최상류층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혜택이다.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시간적 여유가 있는 주부들이 골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취미 생활과 영어공부 등 자기계발을 할 수 있어서 필리핀 체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 많은 사람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가정부와 운전수의 존재이다. 그래서 이런 직업에 종사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한국에서 고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까지는 한국 정부에서 공장 등 산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외에는 허가하지 않고 있다. 가정부들이 외국에 취업하는 경우 월 급여는 300~500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고, 필리핀 정부에서는 최소 400달러 이상 되어야만 취업을 허용하는 쪽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다.

10여년 전에 어느 중소기업 사장이 자녀들 영어를 지도해 주면서 가끔 자기 아내의 집안일을 도와줄 수 있는 제대로 교육받은 필리핀 여자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필자 주위에서는 거의 한달 동안 한 사람도 구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들은 서민층 중에서도 상위 그리고 중산층 이상인데, 중산층 이상은 외국에 노동자로 취업 나갈 이유가 없는 잘사는 사람들이어서 제안 자체를 할 수 없었고, 서민층 중에서도 상위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이것저것을 고려해 보더니 (특히, POEA를 통해 정식으로 계약되어 외국으로 취업하는 경우가 아니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관광비자로 입국한 후 잠시 체류하는 경우이니, 그것만으로 현재의 직장에서 받는 급여의 5배를 받는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취업보장이 되지 않는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마 후 다른 지인을 통해서 필리핀 거래처의 직원 중 한 명을 설득하여 보내게 되었다. 한국에서 돌아오면 언제든지 그 회사에 복귀하게 해준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고 했다. 2개월짜리 관광비자를 받아 그 사장의 집에서 숙식을 하게 되었는데, 일주일 후에 필리핀 직원이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오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중소기업 사장으로부터도 불만을 전해 들었다.

직원 “한국에 와 보니 자녀의 영어 공부 지도는 거의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애들은 자정 무렵에 돌아오자마자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 후 곧바로 학교에 가버렸다. 집 안주인은 애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거의 매일 외출을 하는데, 설거지와 집안 청소를 하지 않는 것을 보니 ‘가정교사’가 아닌 ‘가정부’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나(직원)는 가정부로 일하려고 한국에 온 게 아니며, 돈을 더 많이 준다 해도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돌아가겠다.”

한국인 사장 “한국에 온 후 2~3일이 지나면서부터 식사도 거의 안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도 않는다. 말도 거의 없고, 집안일도 돕지 않는다. 아내에 의하면 식사도 차려놓고 모시러 가야하고, 이것저것 챙겨줘야 하고, 그야말로 ‘상전을 모셔놓고 사는 기분’이라 한다. 용돈을 많이 줘 봐도 밖에 나가지 않고 종일 우울해 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또는 무슨 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상황을 이해한 필리핀 사장은 즉시 직원을 돌아오도록 조치하였고, 그 여직원은 지금도 그 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필리핀 사람 가정을 꾸려 부부가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필리핀 가정부가 집안일과 애를 돌보고 있다. 가정부를 두고 살 정도로 제대로 교육받은 상위 서민층을, 한국에서 애초의 목적과 달리 ‘가정교사’가 아닌 ‘가정부’로 부릴 생각을 했으니 마찰은 당연한 것이었다. 돈으로는 ‘가정교사’를 ‘가정부’로 바꾸기 힘든 서민들도 꽤 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다. 수년 전부터 미국과 캐나다 등 서구 국가들에 필리핀 간호사들이 많이 취업되어 떠나고 있고, 중산층에 진입하지 못한 많은 서민층 의사들도 간호사 면허를 취득하여 해외에 취업되기도 하여 ‘두뇌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져 왔었다. 그러한 간호사(필리핀 의사) 중에 안타까운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하였는데, 한밤중에 실려 온 응급환자를 돌봐줄 의사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자 간호사로서 취업되어 일하고 있다는 현실보다는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필리핀)의사로서의 양심과 사명감을 우선시하여 집도하였다가 환자는 살렸으나 그 나라 법을 위반하였다 하여 추방되어 돌아오곤 한다는 것이다. 현지법을 위반하여 추방당할 위협에 처하더라도 ‘환자의 건강과 생명이 최우선’이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키고자 했으니, 서민층 사회에는 이렇듯 보수적(도덕과 원칙과 생명 우선)이면서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많다.

필리핀에는 해외취업 노동자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국가기관 POEA(Philippine Overseas Employment Administration)가 있는데, 외국회사와 필리핀의 민간인력 송출 대리점들 간에 계약을 하고, POEA에서는 계약 내용, 출국 관련 서류들을 심사하며 관리할 뿐만 아니라, 인력 송출 대리점들의 인·허가권도 가지고 있다. 한국 내에서 일하는 육상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5~6년 전부터 산업인력관리공단과 POEA가 직접 계약하여 민간 인력 송출 대리점들의 개입을 차단해 버렸다. 한국 내에는 14여개국에서 약 40만명의 해외 노동자들이 산업인력관리공단을 통해 고용되어 일하고 있다고 하며 이 중 약 4만~5만명이 필리핀 노동자라 한다. 필리핀 노동자들의 성실성과 영어 구사 능력이 한국 고용주들을 만족시켜서 산업체들로부터 더 많은 노동자들을 요청받고 있지만, 정작 필리핀 주무관청인 POEA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추가로 필요했던 인력을 다른 나라 노동자들로 대체했다 한다. POEA에서 일하고 있는 공무원들의 서민들에 대한 봉사 정신이 한국의 공무원들보다 훨씬 미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외국에 취업을 나가는 경우에는 반드시 POEA로부터 면허를 발급받은 업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면허 없이 불법적으로 해외취업을 알선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취업을 대가로 사례비 또는 경비를 받으면 보다 확실한 범죄 행위로 인정되는데, 돈을 받지 않고 좋은 의도로 소개만 시켜주었어도 그 필리핀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고) 돈을 주었다고 진술해 버리거나, 취업나간 해외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면허가 없는 업체 또는 사람들과 필리핀 사람들이 해외취업을 상의하는 자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공범자로 몰려 (능숙한 변호사의 도움으로 형벌은 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곤욕을 치룰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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