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전당포와 사금융
전국 어디에서든 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재래시장이나 서민들 동네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는 여러 개의 전당포가 영업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 이후 거의 사라졌지만 필리핀에서는 아직도 서민들의 삶과 꽤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필리핀의 100대 가문 안에는 Tambunting 전당포 가문이 있을 정도이다. Don Ildefonson Tan Bunting이라는 중국인이 1906년에 필리핀에서는 최초로 전당포를 설립하여 고리 대금으로 돈을 모아 부동산을 사들였다 한다. 현재는 전국에 1000개가 넘는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의 대출 조건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서민들이 주로 귀금속이나 고가의 생활용품 등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유용한 수단이다. 하지만 너무 높은 이율로 고리대금의 대명사가 되어 있고 강도들의 범죄 대상이기도 할뿐더러 도둑이나 강도 또는 소매치기들의 주요 거래 상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당포가 많은 지역은 그만큼 강도와 소매치기범이 많다는 반증이 되기도 한다.
장물(贓物)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그 물건을 제 3자로부터 받았거나 구입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도둑 혐의자가 된다.
장물고매 방지법(Anti – fencing Law) : 강도나 절도, 사기 등의 범죄행위에 의하여 부당하게 취득한 타인 소유의 물품인 것을 알면서도 사고파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다. 어떤 물건을 사고자 하는 경우에는 항상 판매하는 사람의 신원과 판매권한이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물 매매죄로) 법정구속될 수 있다. 전당포에서는 보통 최대 6개월간 물건을 맡아 돈을 빌려주고 월 5%의 이율을 지불하는데, 주요 품목으로는 귀금속과 휴대폰 및 가전제품 등이다.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일부 중산층들은 담보로 맡길만한 물건이 없는 서민들에게 급전을 빌려주는 여러 가지 형태의 사채업을 하고 있는데, 가난한 동네마다 몇 군데씩 있다고 한다. 3000페소에서 3만페소 정도의 소액을 최대한 1년 기간으로 빌려주고 집안에 있는 가재도구나 전자제품 등에 대해 포기각서(voluntary surrender)를 쓰고서 매달 3~5%의 이자를 갚는 게 보통이라 하는데, 이자율이 월 10% 또는 그 이상 되는 업자들도 있다고 한다.
카지노 주위에는 하루 이자 2%의 고리로 노름에 미쳐있는 사람들(정신병자들)에게 자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들도 있다고 하는데, 범죄 조직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사채업을 하고 있는 한국 교민들 얘기도 들린다. 사채업이든 선의로 돈을 빌려 주었든, 필리핀에서는 사적인 돈거래를 하면 위험하다고 한다. 돈을 갚지 않는다며 함부로 상대의 집안에 들어갈 수 없고 행패 또한 부릴 수 없는데,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허락 없이 집안에 들어서는 사람을 ‘주거침입자’로 간주하여 사살해도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준 사람을 살해해 버리는 경우 돈을 갚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지, 돈을 빌린 사람보다 빌려준 사람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들도 많이 들린다.